근처에서 가장 큰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웠다. 정형외과에 접수하고 대기실에 도착하자, 간호사가 사진을 찍고 오라고 여러 가지를 안내해 줬다. 휠체어를 밀고 방사선실로 가서 엑스레이를 찍을 수 있도록 어머니를 침상에 들어 올리고 내렸다가를 반복했다. 엑스레이만 찍는데도 금세 한 시간쯤이 흘렀다.
“네가 괜히 고생해서 어쩌냐.”
“괜찮아요.”
잠시 기다리다가 진료실로 들어갔다. 이미 의사는 책상 앞에 엑스레이 사진을 걸어두고 보고 있었다.
“어머니 언제 다치셨어요?”
“나흘 전에 다쳤어요”
“아니 그런데 왜 이제 오셨어요? 진작 오셨으면 이렇게 통증이 심하지 않으셨을 텐데, 많이 아프시죠?”
“네. 맞아요. 다리만 움직여도 아프다니까.”
“그러니까 바로 오셨어야죠.”
“첫날은 별로 안 아프더라고 그래서 나중에 가야지 하다가, 나중에는 너무 아파서 못 왔지요.”
“어머니 통증에 비해서 다행히 심각하지는 않아요.”
의사 선생님은 당연하다는 듯이 보호자를 향해서 설명을 시작했다.
“보호자님, 발등 골절입니다. 다행히 별문제는 없어서 깁스만 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이 부분이 회복이 더딥니다. 어머님은 연세가 있으셔서 더 오래 걸릴 겁니다. 깁스도 최소 8주는 해야 하고 첫 4주는 절대 움직이시면 안 되고, 최소 2~3주는 얼음찜질도 자주 해야 합니다.
수술을 안 해도 되는 상태라 다행이기는 한데, 연세가 있으셔서 회복이 잘 안 되면, 결국 수술해야 할지도 모르고, 수술하면 당연히 훨씬 고생하십니다.”
“아 그렇군요. 자세히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의사 선생님은 어머니를 향해서 다시 한번 설명을 이어갔다.
“어머니 들으셨죠. 다행히 수술은 안 해도 됩니다. 그런데, 여기가 진짜 잘 안 붙어요. 그러니까 절대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괜찮아졌다고 집안일 하시거나, 살살 돌아다니시면 안 됩니다. 잘못하면 수술하셔야 해요 아셨죠?”
“집안일은 해야 하는데, 어떡해요?”
“집안일 하시면 안 돼요. 그러다 수술하셔야 됩니다. 한 달은 절대 다리 짚으시면 안 됩니다. 아셨죠?”
어르신들을 많이 대해본 사람답게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네. 알겠어요.”
“깁스하고 가시면 되고요. 보호자님이 관리 잘해주셔야 합니다. 어르신이 못 움직이셔서 답답해하시면 휠체어 구입도 고려해 보시고요. 일단 다음 주에 다시 오시는 것으로 하죠.”
수술을 안 해도 돼서 다행이었지만, 만만한 상태는 아니었다. 깁스를 하고 처방약도 받고, 휠체어 구입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수납까지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 점심때가 훨씬 지나 있었다. 어머니는 깁스를 해서 통증이 훨씬 줄어들었는지, 식탁에서 같이 점심을 먹었다.
“차는 왜 안 가져왔니?”
어머니도 이제 겨우 한숨 돌렸는지 내가 차를 가져오지 않은 것에 대해 물었다.
“수리 들어갔어요.”
어머니가 궁금해하는 세단은 이미 판 지 오래였고, 중고차를 타다가 그마저도 빚 때문에 압류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나는 또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사고가 났거나….”
“아니에요. 쓸데없는 걱정 마시고, 잘 쉬시면서 회복하세요.”
그제야 동생에게 문자를 보내지 않은 것이 생각나서 문자를 보냈다.
‘어머니 골절인데, 깁스하고 쉬면 된대, 깁스하셨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잘 놀다 와. 그때까지 내가 집에 있을 거야. 너보고 가든지 할게, 돌아오면 그때 이야기하자’
“답답하시더라도 일단은 아무것도 하지 마시고요. 필요한 것 있으면 말씀하세요. 도와드리던가 사다 드리던가 할게요.”
“알았어. 이제 괜찮다. 아무것도 안 하면 되는 게 뭐 어렵다고 텔레비전이나 보고 있으면 된다.”
어머니는 침대까지 들어다 드린다는데도, 이제 괜찮다며 목발을 짚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온종일 어머니를 들었다 내리느라 피곤했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어머니는 며칠을 못 견디고 움직이시려고 할 것이 뻔했다. 그전에 휠체어를 준비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간호사가 말해준 대로 휠체어 대여 주문을 해두었다.
어머니 통장으로 전에 일했던 일당이 들어와 있었으나 오늘 병원비와 약값, 휠체어 두 달 휠체어 대여비까지 결제했더니 44만 원쯤이 겨우 남았다.
‘하~ 어떻게든 되겠지’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돈 계산을 안 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글을 쓰기 전에는 있지도 않은 돈을 매일 계산하느라 괴로운 나날을 보냈는데, 얼마만에 돈계산을 한 것인지 모르겠다. 정신을 다른 곳에 돌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책 쓰기 수업은 이미 충분한 효용이 있었다. 44만 원 남은 잔액을 들고도 전처럼 절망적이거나 슬프기보다는,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써야 할까를 자연스럽게 생각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바깥이 부산해서 나가보니 어머니가 목발을 짚고 음식을 하고 있었다.
“엄마, 왜 이러시는 거예요. 의사 선생님이 절대 움직이지 말라고 한 거 못 들으셨어요. 발등은 뼈가 잘 안 붙는다고, 관리 못 하면 수술해야 한다는데 왜 그러시는 거예요. 일단 앉으세요.”
“나는 또 의사 선생이 겁주는 줄 알았지. 깁스하니까 안 아프길래 살살 저녁만 해주려고 했지. 알았다. 알았어! 아무것도 안 한다! 안 해!”
“티브이 보고 계시면 저녁 해드릴게요. 기다리고 계세요.”
‘알았다. 의사 놈이나, 아들놈이나 지들만 똑똑하지, 지금껏 다 키워놨더니’
절뚝이며 방으로 돌아가면서 어머니는 생각했다.
답답한 지금 상황이 누구도 즐거울 리는 없다. 마음속으로 쓸데없이 트집 잡는 것은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자연스러운 해소 방법이다. 마음은 마음대로 움직이는 법이 없고 괜히 삐뚤어지기도 잘한다. 누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