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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레비엔 Aug 05. 2024

보호자

 보호자          

그날 밤 다른 날보다 늦은 저녁을 먹고 겨우 글을 쓰려고 앉았는데동생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몇 통이나 와있었다별로 좋은 일은 아니겠다고 생각하면서 전화를 걸려는데다시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오빠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전화 소리를 못 들었어.”

독촉 전화 때문에 전화기 소리를 꺼둔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겼어?”


아니괜찮은데엄마가 좀 다쳤어집에 좀 가봐 줘우리 지금 필리핀으로 휴가 왔는데집에 전화했더니 엄마가 발이 부러졌나 봐살짝도 못 짚을 정도로 통증이 심한데병원도 안 가고 이틀째 앉아서 돌아다니면서 밥 해 먹고 있데앰뷸런스라도 불러서 병원 가라는 데도 괜찮다고만 해

아무리 봐도 부러진 거 같으니까 오빠가 좀 가봐우리는 아직도 이틀이나 더 있어야 집에 가는데그때까지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다급하게 어머니를 부탁하고 있었지만잔뜩 짜증이 나 있었다


알았어지금 바로 가볼게지금 아홉 시 다 됐으니까지금 출발해도 집에 도착하면 1시나 되겠다바로 출발할게 걱정하지 말고.”

알았어그럼 내가 엄마한테 오빠 1시쯤 도착한다고 전화해 둘게.” 

알았어엄마 모시고 병원 갈 테니까 걱정말고 잘 놀다 와별일 없으면 따로 전화 안 하고 문자로 보낼게.”

알았어우리 이틀 있으면 집에 가니까 그때까지만 있어 줘.”

걱정하지 말고 잘 놀다 와 별일 아니겠지.”


오래간만에 떠난 휴가지에서 진이 빠졌을 동생을 위로하면서 전화를 끊었다급하게 몇 가지만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마지막 시외버스를 타려면 서둘러야 했다버스에 타고나서도착하기 전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어차피 동생이 전화를 해둬서 이미 나를 기다리고 계실 터였다괜히 가기 전부터 쓸데없이 더 기다리게 하거나 결론 없는 입씨름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머니는 자식들과 같이 병원에 가는 것을 싫어했다나이가 들어서 자식들이 보호자 역할을 하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했기 때문인데병원에서는 어머니가 받아들이든 말든자식들이 보호자로 불렸기 때문이다문제는 혼자 병원에 가는 것도자식도 없는 쓸쓸한 노인네 같다면서 싫어했다우리가 보호자 역할을 하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는 아바타처럼 자식들을 움직이던 어머니가 자신이 가진 유일한 권력을 빼앗긴 것이 드러나기 때문이었다어머니의 보호자 노릇을 할 것을 생각하니 벌써 살짝은 개운한 기분이 들면서 별일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창밖을 멍하니 바라봤다


차 안은 이상한 공간이다운전을 하거나운전을 하지 않거나 탁 트인 공간이라면 흘러가 버릴 마음의 소리가 차 안에서 반사되어서 몇 번이고 다시 돌아온다기분 좋은 날은 주체할 수 없이 행복하고우울한 날은 끝없이 고뇌하게 되는 것이 차 안이었다.


운전하지 않고 오랜만에 버스 안에서 장거리를 달리는 것은 운전할 때 보다 더 섬세하게 차 안에서 반사되어 돌아오는 마음을 펼쳐볼 여유가 생긴다심야의 불 꺼진 시외버스 안은 밖에서 들어오는 옅은 빛줄기가 쉴 새 없이 창가를 스쳐 가면서 몸을 타고 굴곡지게 흐른다마치 무수한 세월을 뒤로하고 달리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좋지 않은 소식을 듣고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자니불안에서 시작된 우울이 온갖 졸렬한 생각과 가족사에 얽힌 지난 기억들을 불러왔다어둠 속에서 밖을 바라보면서 성산시에서 어머니 집까지 오는 그 짧은 몇 시간 사이에 우울했던 지난 어린 시절을 다시 산 것 같은 찝찝한 기분마저 들었다지난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가 버린 것처럼 시외버스도 금세 목적지에 도착했다


서두른 덕분에 1시가 되기 전에 어머니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벨을 한 번만 누르고 문 앞에서 기다렸다아파트 계단에 센서등이 들어왔다가 꺼진 지 한참이 지나도 집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동생의 연락을 받았을 테니어머니가 잠들었을 리는 없다생각한 것 보다 다리를 많이 다쳐서 현관까지 오는 데 시간이 한참 걸리는 것이 분명했다센서등이 꺼진 어둠 속에서 미동도 없이 한참을 기다리자어머니가 문 앞까지 왔는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문을 여는 것이 쉽지 않은지 몇 번이나 손으로 문을 더듬는 소리가 나더니 딸각 문이 열렸다


어머니는 엉성하게 붕대를 감은 한쪽 다리를 쭉 펴고 다른 쪽 다리는 접은 채로 현관문 앞 바닥에 앉아있었다신발을 깔고 앉아서 간신히 팔을 뻗어 문을 열어주고는 나를 올려다봤다.

일찍 도착했네괜찮은데 왜 왔어내일 아침에 병원에 가려고 했는데.”

내가 들어갈 수 있도록 어머니가 문에서 비키려고 다친 다리를 팔로 들려고 했으나통증이 심한지 움찔거리면서도 비키지도 못하고 있었다


아니언제 다치셨어요바로 병원에 가셨어야죠일단 들어가요제가 옮겨드릴게요.”

어머니를 앉은 채로 조심스레 들어서 안방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아무 데도 닿지 않았는데안는 것만으로도 통증이 있어 보였다.

얼마나 안 좋으신 거예요붕대 잠깐 풀어봐요며칠이나 됐어요?”

아니야 별로 심하게 안 다쳤는데자고 일어나니까 부어서 심해 보이는 거야내내 괜찮았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통증이 심한지 혼자서 헐겁게 감아놓은 붕대도 풀지 못했다


제가 할게요.”

붕대를 풀자 발목까지 퉁퉁 부은 발이 드러났다발등에서 발가락까지 이어진 뼈를 다친 것인지 발등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라 있었고 시커멓게 피멍이 들어있었다

통증도 심하셨겠구만이걸 어떻게 참았어요지금 당장 병원 갑시다.”

아니야 지금은 못 가안 그래도 내일 병원 가려고 했어.”

당장 병원 가도 괜찮아요그래서 응급실이 있는데내일 아침까지 어떻게 참으시려고요.” 

다리가 이래서 삼일이나 못 씻었어지금은 못 가내일 아침에 대충이라도 씻고 가고 싶어.”

아휴괜찮으시겠어요?”

괜찮아진통제 찾아서 먹었더니 좀 괜찮아.”

알았어요그럼 주무시지 말고 좀 계세요나갔다 올게요.”


통증이 심각해 보여서 일단 가까운 편의점을 몇 군데 뒤져서 스프레이 파스를 사 와서 뿌려주고 빈방을 정리했다잠을 청하려는데 간간히 어머니 방에서 파스를 뿌리는 소리가 나는 것을 보니문제가 심각할지도 모르겠다집에서 잠을 잔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그나마도 명절을 빼고 나면 집에 와서 자고 간 적은 거의 없었다어머니랑 단둘이 집 안에 있었던 적도 어릴 때를 제외하고 나면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간단히 아침을 챙겨드리고 병원이 열자마자 가자고 재촉했다그러나 끝끝내 씻고 가겠다는 어머니를 도와주고 나서야 집을 나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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