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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레비엔 Aug 02. 2024

물 위를 걷다

 물 위를 걷다         

등대로 이어지는 좁은 길은은 좀 전만 해도 바위가 드러나 있었으나그사이 물이 들어와서 바다 위로 난 다리처럼 변해 있었다해지는 바다와 빨간 등대를 뒤로하고 이제 막 깔리기 시작하는 어둠 사이로 찰랑거리는 물소리를 들으면서 천천히 걸어갔다다리의 바닥과 바닷물 높이가 한 뼘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서 물 위를 걷는 것 처럼 보였다.


여기 물 위를 걷는 것 같지 않아요지금 너무 예뻐요그러니까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해지는 바다 풍경에 기분이 들뜬 듯한 강사랑이 물었다

지금은 아너 그룹에서 일 안 하시나요그냥 궁금해서요왜 이런 시골에 계실까 싶어서요.”

몸이 좀 안 좋아서 그만뒀습니다.”

아 그러시구나지금은 괜찮으신 거죠?”

괜찮습니다.”     


사실 나도 궁금한 것이 있었다,

저도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마음의 소리를 듣는 사람이 정말 이상형이신 건가요그냥 궁금하기도 하고소설을 쓸 때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해서요.” 

다른 사람의 진짜 마음이 듣고 싶다면 먼저 솔직하게 묻는 것이 좋다솔직한 질문을 한다고 솔직한 대답이 돌아오지는 않지만말은 진심을 숨겨도 마음은 숨기는 법을 모른다솔직하게 질문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듣는 것이 다른 이의 진심을 쉽게 알아내는 노하우다마음의 소리를 듣는 사람이 이상형이라는데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을 들을 필요도 없이 솔직하게 말해줬다.

음 책을 쓸 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하시니까자세히 말씀드려야겠네요부모님이 어릴 때 이혼을 하셔서 엄마 집 아빠 집을 오가면서 살았어요전 외동이라 형제도 없었고요엄마아빠모두 잘 살지 못해서저를 신경 쓸 여력이 없었는지 어릴 때부터 제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어요그러다가 엄마가 결혼을 하면서 연락이 끊겼고아빠랑 살다가 고등학교 졸업 무렵에 아버지도 사고로 일찍 돌아가셨죠


그러고 나서 어찌어찌 힘들게 살다가 강아지 훈련사들은 숙식이 제공된다는 거예요그래서 훈련사를 시작했죠강아지 돌보는 일이 힘들기는 했지만대표님이랑 강아지들이 모두 다 잘해줘서 한동안 행복하게 지냈죠그때가 갓 20살이 됐을 때고대표님이 사십 대 중반이었는데너무 잘해주시고공부할 수 있게 도와주시고 해서 믿고 따르다가 연인 사이가 됐죠그때는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때 훈련사님 따라서 아너 그룹 촬영장 따라간 거예요거기서 거의 4~5년 넘게 일했거든요촬영장에서 뵀을 때 엄청 멋있으셨어요그래서오래 지났는데도 알아볼 수 있었죠저희 훈련사님은 그때도 저를 내팽개치고서 여기저기 인사하러 다니느라 제가 밥을 먹는지 못 먹는지도 신경도 안 쓰는데제가 뒤치다꺼리 다 했죠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너무 어린 저를 여러모로 이용한 거였죠한참을 몰랐죠대표님이 아주 악한분은 아니라서 잘해주신 부분도 있지만사랑이라고 생각해서 모든 것을 다 맞춰드렸는데결국 제대로 돈도 못 받고 명의까지 빌려주는 바람에 빚까지 떠안고 세상 공부 제대로 했어요


기댈데 없는 어린 마음에 훈련소 대표님이 저를 구원해 준 구원자라고 생각했죠부모님도 형제도친구도 살면서 사랑해 준 사람이 하나도 없었는데직업도 주고애인도 돼주고집도 주고요

지나고 보니까 대표님은 저를 이용했고저도 대표님을 사랑한 것은 아니었더라고요사람이 그리워서 시키는 대로 했더라고요하고 싶은 것힘든 것 다 참아가면서요어디라도 기댈 곳이 필요했거든요.      살면서 저를 사랑해 준 건 강아지들 밖에 없어요


그래서마음의 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을 만나서마음을 숨기지 않고온전하게 표현하면서 예쁘게 살고 싶어요마음을 듣는 사람이라면 아마 잘 이해해 줄 것 같아요항상 양보하고 참지 않아도 이해해주겠죠?

사는 것이 좀 힘들었지만사람들 생각은 다 똑같지 않나요제가 좀 속물이잖아요오픈카 타고 오고 싶다고 했잖아요마음속의 치졸한 나쁜 마음아픔아름다운 것좋은 것가릴 것 없이 다 투명하게 봐주고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거죠가짜 구원자 말고 마치 예수님처럼 모든 것을 다 보고도 사랑해 줄 수 있는 진짜 구원자를 기다리고 있어요.”


마음의 소리를 듣는 사람이 이상형이라고 하신 이유가 이해가 됩니다.” 

어려운 지난 시간을 덤덤하게 이야기해 줘서 의외였다


ㅎㅎㅎ 매우 허황된 생각이죠성공도 그렇고사랑도 그렇고제가 다 꿈이 커요언젠가 다 이루겠죠.”

허황된 꿈이라고 말하면서도꼭 이루고 말겠다며 스스로에게 말하는 듯했다그러나마음의 소리를 숨기지 못하고 진실을 내뱉었다비싸고 화려하게 꾸미고 다니는 것과는 달리 강사랑도 사정이 좋지는 않은 것 같았다

보증금도 없어서 소상공인 지원사업으로 면접을 두 번이나 보고보증금 350짜리 사무실에서 한국 반려견 문화 센터」 하는데진짜 구원이 필요하다!’

마음으로도재정적으로도 기댈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어려운 시절을 보내셨군요괜한 질문을 했나 봅니다.”

아니에요이제 한참 지나서 괜찮아요어릴 때 정도만 다르지 다들 당하는 거니까요돈 못 받는 거 생각보다 흔하고요지나고 보니 다 별일 아닌 것 같아요.”     


사실 마음을 숨기는 사람들은 잘못이 없다어쩌면 마음을 듣는 내가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서로를 다 아는 것이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도 아니다몰라도 되는 재정 상황까지 듣는 바람에 괜히 미안해졌고별일 아니라고는 했지만과거를 들추는 것은 언제나 씁쓸한 맛이 났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미 어두워진 길을 자동차 헤드라이트로 간신히 밝히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차 한 대도 없는 해안도로는 깊게 어두워져 있었고강사랑은 세상과 혼자 맞서온 깊은 외로움에 어두운 길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흐느껴 울고 있었다그녀의 마음 한편은 항상 울고 있었던 것처럼울음은 끊기지도격해지지도 않고 시냇물이 흐르는 것처럼 나직하게 배경 음악이 되어서 흐르고 있었다그녀의 구원을 만나기를 나도 간절히 원하게 될 정도였다.


긴 해안도로를 빠져나와 마침내 집 앞에 도착했다.

오 역시 여기 사시는구나여기 비싸던데참 아까 만든 향초 챙겨 왔어요잘했죠글 쓸 때 책상 위에 올려놓으면 너무 귀여울 것 같지 않아요?”

나를 위해 챙겨온 향초를 건넸다

기사 쓸 때 연락드릴게요들어가세요.”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분명 마음속으로 낮게 흐느껴 울고 있었는데우리 집 앞에 도착하자마자 강사랑의 마음은 다시 바쁘게 나를 견적 내고 있었다


역시 아너 그룹 다니던 분이라 좋은데 사는구나자가인가시골 빌라를 사지는 않았겠지그래도 몇억 하던데근데 차는 왜 판 걸까?’

강사랑의 마음이 울음을 그치고 다시 바쁘게 계산을 시작하는 것이 다행이었다속물이라서 삶을 잘 이겨내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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