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인 줄 아세요? 저는 글쓰기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3가지 있어요. 뭘까요?”
수업을 마무리하고 한미숙 작가가 물었다.
“꾸준히 쓰기요!”
조그맣게 여기저기서 대답을 했다.
“정답이 빨리 나왔네요. 맞습니다. 나머지 두 가지는 뭘까요?”
여러 가지 대답이 나왔으나 정답은 없었다.
“글쓰기에서 가장 어려운 세 가지는 ‘솔직하게 쓰는 것’, ‘재미있게 쓰는 것’, ‘꾸준하게 쓰는 것’입니다. 저는 도저히 안 되는 것도 있고요. 영원히 해결해야 하는 숙제가 있고요. 이 중에 가장 어려운 것도 있어요. 일단 제가 도저히 안 되는 게 뭘까요?”
“꾸준히 쓰는 거요!”
누군가 단정적으로 대답했다.
다들 글쓰기에 무게에 짓눌려 있어서 다같이 웃었다.
“다들 꾸준히 쓰는 것 힘드시죠? 그런데, 제가 도저히 안 되는 것은 재미있게 쓰는 것이에요. 재미있게 쓰는 것은 타고난 기질도 맞아야 하고, 연령대도 맞아야 하고, 재능의 영역인가 봐요. 너무 어렵습니다. 제가 재밌는 사람은 아니 잖아요. ㅎㅎㅎ
작가라면, 영원히 해결해야 하는 숙제도 있습니다. 바로 솔직하게 쓰는 것이죠. 솔직하게 쓰는 것은 작가로 사는 내내 대면하게 될 문제입니다. 자신과 대면하고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것이 언제나 쉽지 않습니다. 저는 무척이나 신경질적인 성격인데, 왜 화가 나는지 진짜 이유를 모를 때가 많아요. 그런 거 있잖아요. 평소랑 똑같은 잘못을 했는데, 갑자기 더 화나는 날 있잖아요? 그럼 그동안 참은 것이 터진 것이죠. 그날따라 컨디션이 나빴거나,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마음을 잘 모르고, 더 큰 문제는 자기 마음을 살펴볼 생각을 잘 안 한다는 거예요. 특히나 가족이 있으시거나 아이들이 있으신 분들은 공감하실 텐데, 아이들 마음이나 생각, 배우자 생각은 알고 싶어 하는데, 자기 마음을 모르는 것은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글을 쓰는 것은 자기 마음의 이유를 찾는 것이고, 자신과 소통하는 것이죠. 그래서 솔직하게 쓰는 것은 영원히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면서, 글 쓰는 행위 자체가 자신에게 충실한 활동인 것이죠. 글 쓰면서 꼭 자신과 대면할 기회를 얻으시면 좋겠습니다.”
강의실은 그 어느 때 보다 진지해졌다.
“그럼 이 세 가지 중에 가장 어려운 것은 뭘까요? 맞습니다. 꾸준하게 쓰는 것이에요. 책 한 권을 쓰는 동안도 꾸준하게 쓰는 것은 쉽지 않죠? 벌써 인원이 줄고 있잖아요. 지금이 위기거든요. 이 몇 주만 잘 넘기시면, 끝까지 완성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에 포기하시는 분들이 가장 많아요. 다음 시간에는 열 명이 안 될까 봐서 노파심에 글쓰기에서 가장 어려운 세 가지를 말씀 드렸으니까 이번 주에 글 열심히 쓰시고, 다음 주에 꼭 뵙겠습니다.”
한미숙 작가는 사교성이 없어 보이는 뻣뻣한 태도치고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유명한 작가는 아니어도 글쓰기를 사랑하는 사람임에는 분명해 보였다. 당장 몇 주 뒤면 갈 곳이 없어지는 나 같은 사람조차 재미있게 쓰고 있는지, 꾸준히 쓰고 있는지, 자신과 대면하고 있는지를 묻게 만든다. 다음 주에 당장 쫓겨난다고 해도 책을 완성하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어차피 집에 있기도 불편해서, 다음날부터 도서관에서 매일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명도시에 부동산에 귀속된 씽크대, 샤시, 보일러, 신발장, 욕조, 변기(비데 포항), 현관문, 마룻바닥 등과 같이 벽이나 콘크리트에 부착되어 있는 것들은 모두 부동산에 귀속되어 있습니다.
(풀옵션의 경우, 가구와 가전을 포함합니다.) 부동산에 예속된 부착물을 파손 또는 이동할 경우 처벌 될 수 있습니다.
꼼꼼한 새 집주인의 퇴거 안내문에서 이 문구를 봤을 때부터 지금 살고 있는, 이 집. 정당한 돈을 다 내고도, 어쩌다 보니 불법으로 점유하고 있는 이 집이 손상될지도 모른다는 강박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이 집은 마지막 직장을 잃고도, 무일푼이 되었을 때조차,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위기를 맞은 것이 다행이라면서 위안이 될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집에 들어와서 신발장을 열 때부터 싱크대에서 설거지를 할 때, 화장실을 갈 때마저 남의 물건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도 명확하고 친절하게 알려주었기 때문에, 이 집은 더럽혀지거나, 상처를 내서도 안 되는 가장 불편한 곳이 되었다.
집을 손상시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재물에 손해를 입히는 행위다. 모든 것은 남의 물건이고, 조심히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 가족들 말대로 환청을 듣는 미친놈이 맞다. 자신의 집이 마치 공중화장실이라도 되는양 조심스럽게 쓰는 사람이 누가 있으며, 감옥처럼 갇혀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한 달이면 쫓겨나겠지만, 일단은 매일 도서관으로 탈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다른 주민들과도 마주치기가 싫어서 다들 출근하고 난 뒤 고요해지면 점심때쯤 도서관에 가서 늦게까지 있다 오기로 했다.
하루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해서, 늦잠을 자버린 날이 있었다. 오후 두 시가 다 돼서 일어났는데, 늦은 식사를 하고, 집 정리도 좀 하다 보니 4시경이 되버리고 말았다. 사람들이 밖에 돌아다니는 소리가 간간히 들리기 시작했다. 점심시간 전후가 이 건물이 가장 조용할 때이자 아무도 마주치지 않고 도서관에 나갈 수 있는 시간인데, 그 시간을 놓쳐버렸다. 택배가 도착하기도 하고, 이웃들이 드나들기도 하자 밖에 나가기가 두려워져, ‘도서관에는 내일 가야지’ 하면서 도서관 가기를 포기했다. 그때 할 일이 없어져 갑자기 퇴거 안내문의 명도 부분이 떠올랐다.
이 부동산에 귀속된 어떤 물건에도 손상을 입히면 안된다. 그날따라 강박이 심해져 화장실도, 싱크대도 무단으로 사용 중인 것을 깨닫고, 어느 것에도 손상이 없게 하려고 벽에 기대지도 못하고, 거실 가운데를 서성거리다가, 바닥도 새 집주인에 귀속된 물건임을 깨닫고 주저앉아버렸다. 내가 딛고 서 있을 세상이 사라졌다. 앉을 수도 서 있을 수도 없었다. 처벌이나 청구될 비용이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의 소유물을 아무런 대가 없이 무단으로 점유했다는 점을 견딜 수 없었다.
그날 이후로 매일 도서관에 가기로, 이웃을 마주치더라도 꼭 도서관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집이 삶까지 좀먹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새 집주인의 소유물이 소중한 것처럼 내게 남은 유일한 날들까지 선 채로 빼앗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도서관에 가지 못한 다음 날, 도서관에 도착했을 때 뭔가 달라져 있었다. 쓰려던 글은 열어보지도 않고, 퇴거 이후에 대해서 아무것도 대비하지 않던 무기력증에서 조금 벗어나 있었다. 너무 늦은 것을 알면서도, 방법을 찾고 싶었다. 그동안 밀렸던 단톡방의 대화들을 다 읽고, 필요한 절차들을 메모하고, 법률 구조 공단 상담 신청, 개인회생 절차, 구제받을 수 있는 방법, 소송 절차 등을 하나씩 알아보고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사람들 마음을 다 안다고, 세상을 다 아는 척하면서 살았는데, 가장 간단한 법률적인 단어조차 생소한 것이 많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으나 먼저 법적인 상담을 받는 것이 시급해 보였다. 무료 상담을 할 수 있는 법률 구조 관리공단에서 상담을 받으려면 최소 20일은 기다려야 했다. 한달이면 쫒겨나는데, 기다릴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갑자기 무슨 삶에 대한 의욕이 솟구치는지 지금까지 거의 일 년간을 아무 대비도 하지 않다가 잃어버린 전세금을 어떻게라도 받아봐야겠다는 생각이 왜 갑자기 들었는지 모른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단톡방을 꼼꼼히 살폈다. 우리 빌라는 소송을 한다 한들 돈을 받기 힘들었고, 돈을 받는다고 해도 나에게까지 차례가 돌아올 수가 없는 구조였다. 안타깝게도 거의 모든 사람들의 상황이 나와 다를 바가 없었다. 다행인 점이라면, 대부분이 어린 직장인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개인 회생을 통해 그나마 구제 받을 수 있었다.
도서관 테이블에서 개인 회생과 파산에 대해서 이것저것 검색을 하다가 갑자기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서 주위를 돌아보았다. 혹여 내 컴퓨터 화면이 보여서 비웃지나 않을까 걱정이 됐다. 반대편에 학생과 아주머니는 내가 뭘 하든지 관심도 없이 자기 할 일을 하느라 바빴다.
그래도, 파산, 회생을 검색해보는 것이 부끄러워 노트북을 놔두고 한참을 핸드폰을 꺼내 나머지 내용을 확인했다. 개인 회생을 하려면 꾸준한 수입이 있어야 하고, 여러 조건이 맞아야 했지만, 파산 신청을 한다면 채권 추심으로 인한 독촉 전화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무료 법률 상담을 포기하고 대신에 광고를 보고 몇몇 회생, 파산 전문 변호사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보기로 했다.
열람실을 나와 도서관 뒷마당의 아무도 없는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미리 알아 온 변호사 사무실 몇 그곳에 전화했다. 온라인 광고를 크게 하는 곳들이라 그런지 기계적으로 매우 친절해서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파산 상담을 하는 것이 아니고, 큰 돈을 쓸 고객처럼 대했다. 무료 상담을 해준다면서 사무실로 오라고 하기도 하고, 자료를 보내준다면서, 링크나 준비 서류 목록을 문자로 보내주기도 했다.
전화 통화로 알아낸 것은 유료 상담을 받거나, 착수금을 내야 회생을 할지, 파산을 할지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었고, 수임료는 200만 원 정도였다. 빚이 많을수록, 수임료가 올라가는 더 큰 고객이 된다.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 수임료 분할 납부도 가능하다고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다.
현실적으로는 파산한 것이 맞지만, 파산에 들어가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서, 파산할 수도 없다. 감히 200만 원이 넘는 파산을 가질 주제가 못 된다.
그늘이 없어 아무도 찾지 않는 도서관 뒷마당의 벤치에서 30여 분간 통화하느라 흠뻑 땀으로 젖었다. 눈부신 태양은 착수금도, 수수료도 없이 무료로 세상을 녹여버릴 듯이 달군다. 목을 뒤로 꺾어서 한참을 태양을 올려다보았더니 숨이 갑갑해지면서,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열람실로 돌아가서 녹아내린 마음을 에어컨 바람으로 다시 차갑게 굳히고, 전세 사기 피해 지원, 소송 방법 등 지난 반년간의 무책임을 하루 만에 다 회복하려는 듯이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다 알아봤다. 이번에는 누가 볼까 두려운 것도 잊었다. 한 달 만에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당연히 없고, 조건이 맞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도 하나도 없었다. 비용이 들지 않는 것도 없었다. 차라리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무 방법이 없다는 것만 확인했다.
6개월 넘게 무기력하게 아무 대비도 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아서 겨우 대책을 세우는 것을 보면, 가족들 말이 맞다. 병원에 다녔어야 했다. 설사 미친 것이 아니라고 해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듣느라, 내 삶에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직업도 없었고, 신혼부부도 아니었으며, 청년도 아니었고, 대출금 이자를 갚아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제 와서 아무리 절박한 마음으로 방법을 찾는다고 해도, 어디선가 돈을 빌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사업을 하면서 진 빚도 이미 많아서, 주변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명료하게 확인한 것이 오늘의 성과다.
가슴이 답답하고 시원하게 울고 싶었으나 그저 답답할 뿐 눈물이 나지 않았다. 집에 돌아가 남의 집에 갇혀 울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도서관 뒷마당으로 나갔다. 그사이 해가 져서 어둠이 짙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벤치에 앉아서 유튜브를 틀었다. 마음과 표현이 다르지 않은 순수한 아이들 영상을 보기 시작했는데, 문제 행동이 있는 아이들을 금쪽이라 부르는 프로그램이다. 아이들의 알 수 없는 문제 행동의 답은 항상 하나였다. 사랑 받기를 원하는 것, 이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그렇게 슬펐다. 영상을 두 개째 볼 때쯤에는 끊임없이 눈물이 흘렀다.
“아빠 저기 깜깜한데 사람 있어!”
“그럼 그쪽으로 가지 말고 이쪽으로 와!”
화들짝 놀라서 눈물을 닦는데, 아이들과 산책 나온 이명수가 강아지를 데리고 다가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명수가 알아볼 수 있도록 먼저 인사를 건네는데, 우는 바람에 코가 맹맹한 소리가 났다.
“아 글 쓰러 오셨어요? 깜깜한데 여기서 뭐 하십니까?”
“글 쓰다가 바람 쐬러 나왔습니다.”
“아니, 목소리가 왜 그래요? 울었어요?”
“아…. 아닙니다. 슬픈 유튜브를 봐서 그렇습니다.”
“하하하 유튜브 보다가 울었다고요? 글 쓰다가 너무 몰입하신 거 아닙니까?”
이명수는 나를 배려해서 유쾌하게 놀려주었다.
“아이들이랑 강아지 산책 나왔어요. 집이랑 가까워서 가끔 도서관으로도 산책 오거든요. 잠깐 기다려봐요.”
강아지를 맡겨두고 가더니 아내와 아이들을 먼저 보냈다. 가족들을 보내고 조금 멀어지자마자, 이명수가 사뭇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하셨었죠. 정말입니까?”
“정말이죠. 글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해주는 힘이 있으니까요.”
“아! 글쓰기 말이군요. 그렇죠. 말 되네요.”
“아니 말도 안 되는 농담을 설마 믿으셨습니까? 왜 이렇게 진지하게 반응하십니까? 하하하. 글쓰기 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고 생각을 못 했는데,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힘든 일이라도 있어요? 다 지나갑니다.”
아무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저는 앞도 잘 안 보이지 않습니까, 한쪽 눈은 거의 실명에 가까울 정도로 안 보입니다. 보이는 것만 보려고 하니까 사는 게 힘들었죠. 볼 수 없는데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사니까 얼마나 힘듭니까.
눈이 나빠진 것은 한참 됐습니다. 우리 둘째 딸이 생기기도 전이었으니까요. 익숙해질만 한데도 절대 익숙해지지가 않습니다. 힘들게 사는 것이 익숙해지는 사람이 어딨습니까? 눈이 나빠지기 전에는 아픈 게 뭔지 몰랐어요. 사는게 힘들어도, 긍정적으로 열심히 바쁘게 살았습니다.
나한테 그런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도 못 했어요. 열심히 돈 벌어서 집사고, 아이들 키우려면 젊을 때 사서 고생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 살았죠. 돈을 더 준다고, 핸드폰 제작 하청 업체에서 부품을 만드는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일하다가 구역질이 너무 심하게 나는 겁니다. 자질구레한 병치레를 모르는 사람이었는데요. 결국 응급실에 가서 검사를 받았지만, 원인을 알 수 없었죠. 건강이 나빠졌나보다 하면서 그대로 출근을 계속했습니다. 공장에서 생긴 문제라고는 생각도 못 했으니까요. 그러다가 다시 한 달 만에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 갔죠. 그때 이후로 한쪽 눈은 거의 안 보이게 되었고, 나머지 눈도 상태가 나빠졌죠.
아이들 얼굴을 못 볼 수도 있고, 먹고 살아야 하는데 한순간에 세상이 무너진 거에요. 아무 잘못이 없어도, 열심히 살아도, 힘든 일을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아무 잘못이 없어도 나쁜 일은 생깁니다.
한참 방황했죠. 결혼도 했지, 애는 어리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싶고, 치료도 받아야지, 소송도 해야지 고생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둘째가 생겼습니다.
둘째한테는 날 때부터 아빠는 눈이 안 보이는 사람, 도와줘야 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어서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가 우리 애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은 바로 제 눈입니다. 바쁘게 살 때는 저도 몰랐죠. 아무리 아름다운 날이 있어도 보지 않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남들보다 반밖에 보지 못하지만,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다 보고 있습니다. 열심히, 잘, 똑똑하게 살라고 배웠지만, ‘어떤 세상에 사느냐’는 ‘어떻게 세상을 보느냐’에 달려있더라고요.
우리 애들한테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눈을 물려주려고 글을 쓰다 보니, 글은 보이지 않는 세상을 보게 해주는 힘을 가졌더군요. 우리 아이들, 고생한 아내에게 어떻게 내 마음을 보여주겠습니까?글로는 제 마음속에 가족들을 다 불러서, 하나하나 다 설명해 주고 하지 못한 말도 다 들려줄 수 있겠더라고요. 저는 정말 내면까지 아름다운 사람이라, 제가 보는 세상은 무지갯빛입니다. 그래서 꼭 보여줘야 하죠. 하하하하”
“작가가 다 되셨네요.”
“어둠 속에서 절대 헤어날 수 없을 것 같아도, 야속하게 시간은 가고, 다행스럽게도 삶은 알 수 없이 흘러서 어둠 속에서 다시 우리를 꺼내줍니다. 헤어날 길이 없을 것 같을 때 우리 둘째가 태어났어요. 세상이 다시 보이는 것 같더라고요.
눈도 잘 보이고 열심히 돈 벌 때는 저녁에 강아지 산책시키는 이런 날을 꿈도 못 꿨어요.
눈이 안 보이게 되면서, 볼 수 없었던 것을 볼 수 있게 됐어요. 아마 별일 없었다면, 우리 애들 위한다고 한번 놀아주지도 못하고 일만 하면서 살았을 거에요. 지금은 우리 애들이 엄마보다 나를 더 좋아해요.
처음 직업도 잃고 눈도 나빠졌을 때, 살아갈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절대 아닙니다. 기운 내세요.”
깜깜한 도서관 주변을 강아지와 함께 걸으면서, 이명수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그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타인의 아픔을 보지 않고도 볼 수 있는 사람이었고, 따뜻한 위로를 건네주었다. 서로의 얼굴도 잘 보이지 않는 깜깜한 도서관 뒷마당에서 감출 수 없는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겨우 이 한마디 밖에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