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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슴속호수 Aug 04. 2024

잊지 못할 화투 놀이

인생 택시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의 일요일, 해가 저물어 가는 초저녁이었다. 대문 입구의 화장실에 있었는데, 다급히 누르는 초인종 소리와 함께 흥분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문을 보시던 아버지가 대문을 여셨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친구 광택이 어머니였다.


 친구들과 뙤약볕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축구하던 중 누군가가, “얘들아, 광택이 집에 가서 놀자. 오늘 엄마가 늦게 오신대.”라고 외쳤다. 중학교는 각기 다른 곳이지만 우리는 초등학교 단짝들이었다. 각자 구슬, 딱지, 용돈을 챙겨서 광택이 집에서 모이기로 하고 헤어졌다. 나는 집 계단 아래에 숨겨 두었던 구슬과 딱지가 가득 담긴 페인트 통을 양손에 들고 광택이 집으로 달려갔다.


 구슬치기로는 삼각형, 찍기, 구멍 넣기, 홀짝 게임을 하며 놀았다. 딱지치기는 종이로 접은 접이식 딱지와 문방구에서 파는 그림이 인쇄된 동그란 딱지가 있는데, 동그란 딱지를 가지고 놀았다. 딱지치기는 양쪽 손에 딱지를 쥐고 한쪽을 선택해 별이 많거나, 글자 수가 많거나, 사람이 많은 쪽이 이기는 방식이었다. 구슬치기와 딱지치기를 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 시절 아이들 세계에서는 구슬과 딱지를 화폐처럼 사용했다. 나는 동네에서 소문난 게임 고수였다. 아이들이 돈을 가지고 나에게 와서 문방구에서 파는 것보다 두 배로 구슬과 딱지를 받아 갔다. 친한 친구들에게는 세 배로 주었다. 그날도 구슬과 딱지를 싹쓸이하며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기쁨에 젖어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친구가 화투 놀이를 제안했고, 모두가 동의했다. 명절 때마다 어른들도 인정하고 화투를 챙겨주었기에, 어른들 틈에서 배운 화투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기에 민화투와 육백은 자신감이 있었다. 


 두 팀으로 이루어진 화투판에서의 승부는 뜨거웠다. 구슬과 딱지를 모두 잃은 친구는 돈으로 그것들을 교환하며 화투판에 사로잡혔다. 나 역시 오후 태양의 찬란한 빛이 가슴에 스며들며 기쁨에 도취하여 이미 이성은 화투판에 잃어버린 지 오래되었다. 다들 화투판에 빠져 있던 중 처음 제안한 그 친구가 또 다른 종류인 ‘섰다’를 하자고 했다. 처음 들어보는 놀이였다. 그때는 몰랐지만 ‘섰다’라는 어른들의 전문적인 도박판이었다. 구슬과 딱지가 번거로우니 돈으로 주고받기로 하며 본격적인 노름판을 벌였다.


 친구들이 대충 가르쳐줬지만 어쩔 줄을 모르고 우왕좌왕 헤맸다. 지금까지 거의 싹쓸이하다시피 했기에 차마 하지 말자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더듬더듬 따라 했지만 이해하기도 힘들었다. 처음 배운 것이라 잃기 시작하며 한 판도 이기지 못했다. 희열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인내가 필요한 시간이었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밤새는 줄 모른다는 속담처럼, 어머니가 돌아오실 시간도 까맣게 잊은 채 놀았다. 놀고 있는 광경을 목격한 어머니는 노발대발하셨다. 하나같이 모두가 노름판의 전 재산을 놓아둔 채 혼비백산이 되어 삼십육계 줄행랑을 놓았다. 그때는 어마어마한 후폭풍이 태풍급으로 다가올 줄 몰랐다.


 광택이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나를 찾는 아버지의 고함이 들려왔다. 화장실에 숨어 있던 나는 한여름의 열기를 고스란히 맞으며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결국 죽을 각오로 밖으로 튀어나왔다. 아버지는 놀라움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찰나의 정적 속에서 평생 느껴보지 못한 공포가 밀려왔다. 


 아버지는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팬티까지 다 벗어. 길가를 바라보고 손들고 있어.” 그렇게 대문 밖에 서게 된 나는 부끄러움과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러고는 대문을 잠가버리셨다. 이게 웬 날벼락인가. 꿈이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중학생이 되어 몸도 제법 성장하던 중이었다. 친구나 동창들, 특히 옆집에 살고 있는 초등학교 마지막 짝꿍이었던 여자 친구가 볼까 봐 두려웠다. 해거름의 태양은 무거운 침묵 속을 파고들어 더욱 뜨겁게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고 어둠이 찾아와야 나의 처참한 모습이 감춰질 텐데, 그 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사회생활 중 여러 모임에서 가끔 화투를 해 보았지만, 그날의 후유증 때문인지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그날의 경험은 혹독했으나, 노름과 놀이의 차이를 깨닫게 해주었다. 아버지의 지혜로 나는 선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화투를 볼 때마다 아버지 생각에 미소가 지어졌다. 이제는 아버지와 고스톱 한 판치는 추억을 남기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그날 이후 2년 만에 아버지는 병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움은 시간이 흘러도 희미해지지 않았다. 문득, 아버지 대신 아들과 고스톱을 쳐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의 실력이 궁금하다. 아들에게 물어볼까. 고스톱 칠 줄 아는가. 아버지와 함께했던 그 순간을 떠올리며, 아들과의 연결을 기대해 본다. 그때의 따뜻한 추억이 우리 가족의 새로운 이야기로 이어지길 바라며. 언젠가는 아들과 한판 벌여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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