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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슴속호수 Jul 27. 2024

아련한 기억, 40분

인생택시


가을을 지나 초겨울의 비 소식과 함께, 초등학교 시절 마지막 짝꿍이었던 소녀가 문득 떠오른다. 교실에는 책상들이 빼곡히 놓여 있었고, 맨 앞줄 창가에 있는 우리의 책상 한가운데에는 굵은 선이 그어져 있다. 학용품이 그 선을 넘을 때마다 우리는 다투며 그것을 빼앗곤 했다.


 6학년 학기 중 시험 기간의 어느 날, 나는 몸을 숙이고 한 팔로 시험지를 가로막았다. 짝꿍은 시험 때마다 내 답안을 흘끔거렸는데, 이날은 답안을 볼 수 없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날따라 내 팔뚝을 툭툭 건드리며 치우라는 신호를 계속 보냈다. 이어지는 짝꿍의 시선이 불편하게 느껴졌고, 왠지 모를 두근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그 아이는 나보다 훨씬 큰 체구를 가졌고, 강한 신체적 존재감이 때때로 나를 압도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날은 이유 모를 불편함이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짝꿍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투덜거렸다. 분을 못 이긴 듯 내 등을 툭툭 치며 뒤따랐다.


 여자아이는 사랑스러운 얼굴에 둥글둥글한 모습으로 나보다 키가 컸다. 우리는 이웃으로서 담을 넘나들며 함께 공부하던 추억이 많았다. 그 애의 부모님은 슈퍼를 운영하시며, 따뜻한 마음으로 내게 과자와 같은 작은 선물도 아끼지 않으셨다. 그분들의 배려는 나에게 큰 힘이 되었고, 우리의 관계를 더욱 단짝으로 만들었다. 그런데도 그날 왜 그런 불편한 감정을 느꼈는지 지금도 명확히 알 수 없다.


 과거의 잘못들이 떠오른다. 여자아이들을 괴롭히던 시절, 그 애가 즐겁게 노는 고무줄을 끊거나 공깃돌을 빼앗아 던져버렸다. 때로는 치마를 들치며 ‘아이스케키’라고 외치고 도망쳤다. 그런 장난으로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다. 함께 공부하던 사실이 친구들 사이에서 퍼지면서, 그 여자 친구를 좋아해서 괴롭힌다고 놀림을 받았다. 나는 그렇게 놀리는 친구들에게 아니라고 반박하며 자신을 변호했지만, 당시의 나는 그 감정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중학교 시절, 여자아이가 소녀가 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단발머리로 변신한 아이는 살이 빠지면서 더욱 예뻐졌다. 나보다 훨씬 크다고 여겼던 키도 작아졌다. 우리는 가끔 부모님의 초대로 함께 식사를 하며 왕래했다. 어른들이 담소를 나누는 동안 우리는 방에서 중학교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소녀에서 숙녀로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나의 작은 바람이었지만, 고등학교 입학 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하여 집안을 돌보던 어머니의 결정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전화가 흔치 않았던 시절이라 우리는 이후 연락이 끊겼다. 언제부터인지 소녀의 모습은 내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졌다.


 중년이 되어, 휴대전화로 각종 모임을 선도하는 네ㅇㅇ 밴드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오십 초반, 호기심으로 초등학교 동창생 밴드에 가입했다. 그때, 무의식 속에 소녀의 그림자가 숨어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랍게도 4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백여 명이 모여 있었다.


 반가운 친구들의 인사말이 쏟아지는 속에서, 나는 반갑다는 댓글 하나 달지 않고 졸업 사진부터 찾기 시작했다. 이사를 자주 다니면서 졸업 앨범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기억 속에서 사라진 것은 그 소녀뿐만 아니라 친구들의 이름과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놀랍게도, 친구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이름을 떠올리니, 함께했던 추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세월 속에 묻혀 있던 기억들이었다. 그 아이는 빛바랜 앨범 속에서도 보송보송한 얼굴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유 모를 가슴의 설렘이 일었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피하지 않은 채 한참 바라보았다.


 동창회 모임에도 참석했다. 초등학교 시절의 장난스러운 이야기들을 들으며 은근히 그녀의 소식이 궁금해졌다. 그러나 모임에서 그녀를 만날 수 없었고, 그녀에 관한 이야기도 없었다. 소식을 묻는 것도 민망했다. 밴드에서도 그녀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몇 개월 후,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서울 말씨의 부드럽고 가녀린 목소리. “나 연희야”라고 들렸을 때, 숨이 멎을 듯한 흥분이 몰려왔다. 서울의 대학에 다니며, 서울로 시집가면서 부산 말씨에서 서울 말씨로 자연스럽게 변했다고 했다.


 동창회 모임에 나가는 친구를 통해 내 연락처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컴퓨터 관련 일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그날 우연히 컴퓨터에 문제가 생겨 안부를 물으려 전화했다고 했다. 문제는 소프트웨어의 오류 같았고, 여러 번 설명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데 40분이 걸렸다. 그동안 그리던 소녀의 모습과 현재의 그녀를 상상할 시간 대신 엉뚱한 곳에 소비해 버렸다. 다시 통화하자고 약속하며, 서울 가면 만나기로 했다. 연희는 마지막에 “광웅아, 너는 그때나 지금이나 설명도 참 잘해준다.”라고 칭찬해 주었다.


 내 번호를 전해준 친구는 합천에 있는 우리 집을 방문해 연희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녀는 오랜 지병으로 인해 매년 반년을 강원도의 한 휴양지에서 보내야 하기에 동창회에는 참석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연희가 “그래도 광웅이는 한 번 보고 싶다.”라는 말을 했다고 전했을 때, 가슴이 짠하고 아려왔다. 눈시울이 촉촉이 젖었다. 


 아련한 40분의 통화 속에는 초등학교 시절 마지막 짝꿍이었던 소녀와의 마지막 추억이 담겨 있다. 그 소중한 시간은 마치 동화 같은 순간들로 엮여, 소년 시절의 그리움을 간직한 채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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