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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슴속호수 Jul 13. 2024

아버지

인생택시

하늘은 아버지의 한을 위로하였다. 아버지가 떠난 후 천지는 바람에 휘청거리며 하늘은 파란색을 밀어내고 짙은 안개와 구름으로 뒤덮였다. 함박눈이 내리며 조용히 조문했다. 발등눈으로 땅을 소복으로 갈아입혔다. 상여는 숫눈길로 데려갔다. 


 중학교 마지막 겨울방학에 축구를 하던 중이었다. 아버지가 곧 돌아가실 것 같다는 전갈을 받았다. 머릿속은 하얘지고 눈은 흐릿해졌다. 집으로 달려가는 동안 공포도 함께 따라왔다. 아버지는 오 남매 중 장남인 나의 손을 꼭 잡으며 뭔가를 말하려는 듯 입을 움직였지만 아무 말도 못했다. 힘없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눈물을 흘리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아버지는 38세에 세상을 떠나셨다. 할 일이 많이 남았기에 아쉬움이 깊게 묻혔을 것이다. 가족과 함께한 소중한 시간들이 기억 속에 스며들어 가슴을 쥐어짜고, 이별에는 아픔이 가득했을 것이다. 이별의 순간에 모든 것이 사라지는 그리움을 아버지는 뜨거운 눈물로 남겼다. 


 부모님은 내가 태어난 해에 수저 두 벌과 이불 한 장만 가지고 시골을 떠나 대구로 갔다. 친구에게 빌린 돈으로 붕어빵 굽기부터 시작해 연탄배달까지 하였다. 울퉁불퉁한 비포장 길을 리어카로 배달하는 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의 짐을 지듯 이를 악 물어 이겨내야 했다. 연탄배달 중 한 장이라도 깨지는 날이면 한숨소리가 담을 넘어갔다. 그렇게 악착같이 모아 슈퍼를 열었다. 


 모든 것이 순탄한 것처럼 부푼 희망은 날로 커져갔다. 그 꿈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산산조각이 났다. 도둑이 들어와 가게에서 돈과 물건을 훔쳐간 일이 두 번이나 일어났다. 한 가족의 꿈과 희망을 모두 털어 갔다. 당시에는 은행을 이용하기보다는 집안 곳곳에 돈을 숨겨두었던 것이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허탈감이 아버지의 텅 빈 주머니 속에서 무력감을 더해주었을 것이다. 삶의 갈림길에서 아픔에 휩싸여 몸을 휘저어 오장육부가 뒤틀렸어도 가족을 위해 견뎌내야만 했다.


 삶이 막막해지자 부모님은 부산에서 카센터와 세차장을 운영하는 외삼촌댁으로 갔다. 그 곳에서 일을 배우는 동안 수많은 인연을 만났으며, 성실하고 정직한 아버지를 눈여겨보시던 분이 있었다. 그분의 도움으로 대한조선공사와 부품 납품 업을 시작하였다. 몇 년 후에는 작은 공장까지 운영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우리 가족은 큰 변화를 맞이했다. 단칸방에서 방 두 개 딸린 전셋집으로 이사하였고, 백색전화와 자동차가 생겼다. 집을 짓고 나의 방이 생긴 날, 입꼬리는 올라가서 내려올 줄 몰랐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색은 행복으로 가득한 내 눈 속에 담겼다.


 사업상 호텔에서 저녁 외식을 할 때는 종종 나를 데리고 갔다. 그때의 자동차 타는 경험은 너무 신나고 특별했다. 처음 보는 음식들이 가득 있어서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 먹었다. 신기하게도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죄다 내 앞으로 옮겨 주었다. 


 아버지는 낚시를 즐겼다. 낚시를 가기 며칠 전부터 밤마다 부엌에서 낚시추인 납 봉돌을 직접 만들었다. 신기하다는 듯 곁에서 지켜보는 나에게 봉돌의 크기별로 낚는 어종을 얘기해 주었지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명해 주는 것이 좋았다. 밤은 깊어가지만 아버지의 자상함에 흠뻑 빠져 내 눈은 초롱초롱해졌다. 


 호사다마라더니 아버지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어머니는 병원마다 다른 진단이 나와 정확한 병명을 알 수 없었다고 하였다. 그 당시에는 의학의 한계일지도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 같다. 결국 수술까지 받았지만 회복은 되지 않은 채로 일 년 이상 투병 생활을 하다가 돌아가셨다. 그 날부터 사흘간 하늘은 온종일 함박눈으로 아버지의 눈물을 대신하였다.


 그때는 너무 철이 없었던 것 같다. 날마다 친구들과 축구를 하러 나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 그런 내게 따뜻한 말씀으로 “우리 큰아들. 훌륭한 축구 선수가 되겠구나.” 하셨던 것이 왜 이제야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지를 깨달았다. 그 순간 아버지가 얼마나 자랑스러워하셨을까 생각하면 죄송한 마음이 든다. 일찍 돌아가실 줄 알았더라면 축구하러 다니는 즐거움보다는 단 하루라도 병간호를 정성껏 했어야 했다.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이었는가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가정을 꾸리고 아들이 생겼다. 아들의 젓가락이 자주 가는 반찬에 눈길이 닿는다. 은근슬쩍 반찬을 아들 앞으로 옮겨준다. 말없이 가르쳐 주었던 아버지의 사랑을 나도 모르게 가슴에 품고 살았나 보다. 


 구름을 멀리 보낸 높푸른 하늘을 쳐다본다. 청명한 하늘색이 나에게는 가장 행복한 물감이 되었음을 당신은 아시나요. 그날 당신이 내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라는 걸 아시나요. 단칸방 한 이불속에서 엄마에게 갔다가 아빠에게 갔다가 두 분 사이에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몸을 뒹굴며 잠들던 멈춰진 시간의 그리움을 아시나요.


 아버지, 당신을 한 번 더 불러보고 싶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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