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슴속호수 Oct 02. 2024

쯔쯔가무시

인생 택시


 가을이 깊어지던 그날, 죽음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보이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던 작은 존재가 어느새 내 삶을 서서히 잠식해 갔다.


 쯔쯔가무시라는 이름은 뉴스 속에만 있던 먼 이야기였다. 누군가의 삶에 침투해 생명을 앗아가는 일이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 이름이 내 삶을 흔들 줄은, 그날의 산행 전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햇살이 따사롭던 가을날, 아내와 함께 산에 올랐다. 맑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우리는 등산로를 벗어나 깊은 숲으로 발길을 옮겼다. 약초를 찾겠다는 욕심에 나뭇가지를 헤치며 걸어갔다. 바람에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자연이 내 품 안에 안겼다. 잔디가 잘 정돈된 무덤가에 누워 평온하게 떠도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아내는 걱정스러운 얼굴을 보였지만, 나는 미소로 답하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날로부터 2주가 지나자, 몸은 점차 고통의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흔한 감기인 줄 알았다. 미열과 기침, 몸살 같은 증상이 익숙했기에 약을 사 먹었다. 약을 먹어도 나아지지 않았다. 두통과 발열은 몸을 압도했고, 오한은 매일 찾아오는 일상이 되었다.


 아침이면 그나마 나아졌지만, 출근 후 두통과 근육통이 몰려와 온몸이 무거워졌다. 오후가 되면 발열이 폭풍처럼 몰아치고, 얼굴은 붉게 변했다. 신음을 참으려 했지만, 몸은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았다. 퇴근 후에는 오한과 전율 속에서 이를 덜덜 떨며 이불 속에 파묻혔다. 몇 겹의 이불을 덮어도 떨림은 멈추지 않았고, 이가 부딪히는 소리는 밤새도록 내 귀에 울렸다. 아침이 되면 다시 몸이 조금 회복된 듯해서 젖은 몸을 일으켜 출근했다. 매일 반복되는 고통 속에서 몸이 점차 지쳐가고 있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결국 동네 병원을 찾았다. 병세는 악화되었고, 얼굴은 검붉게 변해갔다. 12일 동안 약을 먹으며 버텼지만, 몸은 점점 무기력해졌다. 고통과 무력감이 파도처럼 밀려와 서서히 나를 잠식했다. 몇 번의 링거 주사에도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고, 의사 역시 해답을 찾지 못했다.


 며칠 후, 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그가 보인 걱정스러운 얼굴이 내 마음에 불안을 드리웠다. 가슴 한구석에 어둠이 차오르며 결국 그날 밤 혼수상태에 빠졌다. 몸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고, 의식은 서서히 나를 떠나가기 시작했다.


 나를 부르는 응급요원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몸은 젖은 종이처럼 축 늘어졌고 정신은 혼미한 안개 속을 헤매었다. 죽음은 무겁지 않았다. 오히려 고요하게 스며들며 내가 그것을 거부할 힘마저 잃었다. 사이렌 소리는 점차 멀어져 가고, 차가운 공기만이 남았다. 어둠 속에서도 살고 싶었다. 생명의 끈을 붙잡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희미한 빛은 손끝에서 멀어져만 갔다.


 살아남고 싶었다. 희망의 등불은 점차 희미해졌지만, 작은 불씨라도 붙잡으려 했다. 생명의 끈을 놓지 않으려 있는 힘을 다해 버텼다. 구급차 안에서 들리는 사이렌 소리에 맞춰 ‘삐우 삐우’를 외쳐보았다. 그 소리는 내 머릿속에서만 메아리칠 뿐,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직 젊었다. 40대 후반, 이 나이에 죽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살아야 한다고 스스로 다그쳤다. 그러나 의식은 깊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 더 이상 사이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부산백병원 응급실에 도착해, 다시 삶의 끈을 붙잡았다. 의사는 아내에게 그간의 경과를 묻고 발가벗긴 후, 몸을 구석구석 살폈다. 왼팔 팔꿈치 안쪽, 구부러지는 부분에서 작은 검은 딱지가 발견되었다. 털진드기의 흔적이었다. 초대받지 않은 작은 진드기가 내 몸속에 숨어들어 허락도 없이 피를 빨며 고통을 안긴 것이다. 의사는 쯔쯔가무시병을 진단하며 한 달 넘게 이 병을 버텨온 나를 보고 감탄했다. 이제 안심해도 된다는 말을 듣고 비로소 살았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버틴 나 자신을 뿌듯하게 여기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보름 가까이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몸은 서서히 회복되었다. 간 수치가 문제였지만, 급성질환이었기에 적절한 치료와 휴식으로 정상화를 기대할 수 있었다. 퇴원 후에도 몇 달간 통원 치료를 받으며 점차 본래의 상태로 돌아갔다. 패혈성 쇼크, 호흡 부전, 신부전, 의식 저하 같은 치명적인 합병증으로 사망에 이르지 않았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쯔쯔가무시라는 이름이 이제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농작업이나 성묘 때 주로 발생하는 병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이 병의 존재조차 몰라 그저 시름시름 앓다가 이유 없이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직접 경험하고 나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교훈은 단순한 질병을 넘어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주었다. 자연은 아름답지만, 그 안에 숨은 위험을 깨닫는 순간,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알게 된다.


 쯔쯔가무시는 작은 진드기에 불과했으나, 작은 존재가 내 삶에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몸소 겪은 이후로 매사에 신중해졌다. 산이나 들에 다녀오면 습관처럼 몸을 구석구석 살펴본다. 가끔 진드기가 발견될 때마다 작은 위험을 쉽게 간과했던 과거를 돌아보며 작은 생명체 하나가 얼마나 큰 위협이 될 수 있는지를 다시 떠올린다.


  가을바람이 뺨을 스칠 때마다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죽음의 문턱을 넘어 다시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은 이제서야 내게 깊이 다가왔다.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축복이다. 죽음을 마주했을지도 모를 그날을 떠올리면, 오늘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끼게 된다.


  산길을 다시 오를 계획을 세우며 가을의 냄새 속에서 삶의 소중함을 되새긴다. 나약했던 그때가 떠오를 때마다 숨을 깊이 들이쉬며 마음속으로 되뇐다. ‘오늘, 나는 살아 있다.’          

이전 13화 서리, 아득한 기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