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가끔, 그녀와 그의 목소리가 콜라보 되는 것을 상상하곤 한다.
지금의 내차를 만나지가 벌써 올해로 십여 년이 넘어섰다. 그래서인지 가끔 나도 모르게 친구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는데, 특히나 더욱 그런 생각이 드는 때는 기분 좋게 이른 퇴근을 하며 어느 라디오 방송을 들을 때이다. 그 방송은 'The Whistler's Song'이라는 경쾌한 시그널과 여자 진행자의 은은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노을 속에 흐르는 추억의 팝송'이라는 멘트로 시작되는 음악 방송이다. 지나간 팝송이 너무 좋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엄마처럼 포근한 그녀의 목소리는 집에 도착해서도 한참이나 차 안에서 방송을 듣게 하곤 한다.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어떤 상상을 하곤 하는데, 그것은 그녀의 목소리와 어느 디제이의 목소리가 콜라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것이다. 옆집 아저씨처럼 온화한 그의 목소리는 밤 10시가 되면 "Adieu, jolie candy" 시그널과 함께 나왔고, 그가 낭독하는 팝송의 가사와 시는 한 구절 한 구절 마음에 새겨지며 힘들고 고민 많았던 나의 학창 시절을 위로해 주곤 했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제는 더 이상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그 주인공인 이종환 아저씨는 몇 해 전 고인이 되셨기 때문이다.
얼마 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동창과 연락이 닿은 적이 있다. SNS에서 파도를 타고 넘고 넘다 연락이 되어 글로 안부를 나누게 되었다. 하지만 글은 글일 뿐이었기에 어느 날인가 SNS로 친구에게 전화번호를 물었보았다. 그가 알려준 11자리의 전화번호는 우리가 연락을 하지 않은 긴 시간만큼의 어색함처럼 생소했다. 하지만 발신음이 들리고 '여보세요'라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자 길게 늘어났던 고무줄이 오그라들듯 우리는 단박에 학창 시절로 되돌아 간 듯했고 그 사실이 너무도 반갑고 신기했다.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그의 말투와 억양과 목소리는 어제까지도 만났던 것처럼 특유의 웃음, 버릇, 그의 모습을 떠 오르게 하였고,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는 것처럼 어색함 없이 우리의 대화를 몰입하게 해주었다. 머나먼 해외에 있는 것도 아니고 연락 못할 먼 외딴곳에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 목소리가 왜 그리 반갑게도 들리던지.
문명의 발달은 창조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간편하고 편하게 바뀌어 가고 있다. 하지만 새로움의 출현은 그 이전의 다른 무언가는 사라진다는 의미도 된다. 그중 하나가 목소리로 전달하는 말 또한 줄어드는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반가움, 설렘, 떨림, 수줍음 같은 감정들이 섞인 목소리는 갖가지 귀여운 캐릭터로 바뀌어 버렸고, 문자가 오고 가는 대화창에 익숙해져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점 사라져 가고만 있는 것이다.
목소리는 그 사람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다시 듣기 힘든 그 사람을 대표하는 징표이다. 그래서 상대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목소리는 소중하다. 특히나 슬프거나 힘들 때 위로의 목소리로 듣는 진심의 말과 염려는 먼 훗날까지 생각나고 힘이 돼주기도 한다. 그처럼 목소리는 가장 아날로그 하게 인간을 대표하는 것이기에 미래, 아니 내일이라도 누군가의 목소리가 사라 진다면 당장 그리워지는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국의 청춘 남녀들에게 힘을 주고 위로를 해 주며 마음을 설레게 했던 이종환 아저씨의 목소리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 그 목소리들의 안부가 궁금하고, 그 목소리에 담겨 나오는 주인공들의 지난날들이 궁금하기만 하다. 악수처럼 살을 맞대지 않아도, 서로의 눈을 바라보지 않아도, 그 안에 담겨있는 특유의 음성으로 그 사람을 대표 하기에 그들과 함께했던 모든 시간을 한순간에 떠오르게 하는 목소리.
그립고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전화를 걸어 목소리를 들으며 이야기해보자. SNS 혹은 가끔 문자로 주고받던 친구라 해도 목소리를 들으면 추억이 소환되어 어쩌면 왈칵 눈물이 나올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면 너무도 식상한 말이 되어버린 흔한 약속 하나를 해 보자. 우리 만나서 밥 한번 먹으며 이야기하자고. 아주 진중하고 진지한 목소리로. 그럼 분명 그 목소리가 반갑고 고마워 상대는 그 자리에서 그러자 할 것이다. 최대한 아주 빠른 시일 내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