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허무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상품 기획을 거쳐 제품 컨셉이 정해지면 프로젝트가 생기고 팀이 만들어진다. 요구사항을 분석하고 기본 설계, 상세 설계를 마치고 나면 구현에 들어간다. 구현은 하드웨어를 제작하고 기능 구현을 위해 코딩을 하는 것이다. 코딩이 끝나면 빌드를 거쳐 생성된 코드가 생명을 불어넣듯 하드웨어에 이식되어 시스템이 돌아가기 시작한다. 갖 눈 뜬 시스템을 완벽하게 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검증을 통해 버그를 잡고 수정하는 작업을 반복한다. 시간이 흐르고 출시일이 가까워 올수록 아이가 어른이 되어가는 것처럼 시스템은 99 퍼센트라 할 만큼의 완성도에 이르게 된다.
완성도 99 퍼센트. 당장 시장에 출시해도 될 것처럼 보이는 숫자이다. 어느 마음 좋은 품질 담당자는 100 퍼센트라고 인정해줄 만도 하다. 그러나 현실은 끝이 아니다. 99는 그럴싸한 숫자 일 뿐. 완벽에 가깝다는 방심의 틈을 타 1 퍼센트는 가늘지만 질긴 끈 같은 오류로 마지막 발목을 잡는다. 대부분 이때의 오류는 평상시에는 스치듯 나타났다 사라지는 발견하기 어려운 오류이다. 검증팀에서도 누구는 본 적이 있다고 하고 누구는 본 적이 없다고 하는 통에 함정에 빠진 기분이다. 그러나 오류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무시해도 될 것 같지만 1 퍼센트의 힘은 강하다. 무엇이든 뚫을 수 있는 바늘처럼 뾰족해서 99에 도취돼 제품이 출시된다면 반드시 본색을 드러낸다. 처음엔 가랑비처럼 미미하게 문제를 드러내지만, 결국에는 옷을 흠뻑 적시고야 만다. 반드시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한다.
쉽게 해결되면 좋겠지만 바람일 뿐, 오류를 해결하는 과정은 힘들다. 정체불명의 오류는 재현이 힘들어 낮이고 밤이고 발생 상황을 찾아보지만 쉽게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때부터가 진짜 개발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오류를 없애기 위해서는 실험실에 묻혀 쪽잠도 사치처럼 느끼며 낮과 밤도 모른 채 온 에너지를 쏟아부어 찾아야 한다. 그리고 결국 우연이든 필연이든 원인을 찾아내어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비로소 제품을 완성했다는 보람과 더는 밤을 새우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이 든다. 그러나 그도 잠시뿐이다. 몸과 마음은 이미 완전히 탈진된 상태여서 모든 것이 바닥나 남는 것은 허무함 뿐이다. 그리고 그 순간 어김없이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그것은 "나는 무엇을 위해, 무엇을 기대하며 이 일을 한 것일까?"이다.
오랫동안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했다. 지금은 실무를 놓고 프로젝트 관리를 하고 있지만 그래도 설계와 코딩은 그럭저럭 하는 편이다. 회사에서 벗어나 일을 하지 않을 때는 걷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그중 글쓰기는 사람들이 주목하거나 술술 읽히는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책을 내보겠냐고 한다면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껴 선뜻 나설 자신이 없다. 그러나 글을 쓰는 동안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글을 쓰는 동안은 회사에서 제품을 개발할 때 심정 못지않다.
글쓰기는 회사 일과는 달리 의무감이나 강제성 없는 자발적인 행동이다. 쓰고 싶지 않으면 쓰지 않아도 되고, 애써 공들여 완성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실상은 그럴 수 없다. 그 이유 또한 자발적이기 때문이다. 자발적이라는 것은 나의 양심과 의지를 건 나와의 약속이다. 쓰기로 마음먹었으면 써야 하고 좋은 글이 되기 위해서는 나의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출간 같은 커다란 목적이 있는 글이 아니라고 해서 소홀히 할 수는 없다. 그래서 힘들다. 글쓰기가 회사일과 다른 또 하나가 있다면 어색한 문장 모두가 1 퍼센트 버그 같다. 매번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만 결코 마지막은 없다. 어떤 글이든 못마땅한 부분을 해소하는 과정은 힘들고 고되다. 그래서 문장이 떠오르지 않아 머리를 쥐어짤 때면 생각한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글을 쓰는 것 인가?'
소설 “스토너”에서 생을 마치기 전 그의 물음은 “넌 무엇을 기대했나?”였다. 나는 무엇을 기대하며 사는 것 일가? 생각해 보면 특별한 것도 크고 거대한 것도 없다.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나의 삶이 평범해 보일 것이다. 나 또한 그들을 모르므로 그들 삶이 평범해 보일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타인은 모르는 자신의 삶이 나에게는 소중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늘 기대하며 산다. 기대는 목적으로부터 나온다. 목적을 이루면 기대는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실제 기대는 사라지지 않는다. 목적은 사라질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늘 끊임없이 생각하고 행동한다. 생각은 쉬지 않고 목적을 만들고 욕망을 갖게 하고 기대하게 한다. 목적은 고리와 고리가 연결된 사슬 같아서 생각이 없어지지 않은 한 우리는 끊임없이 기대하고 사는 것이다.
삶은 생각과 행동의 연속이다. 사회적 활동, 개인적 활동, 혹은 이 두 가지가 섞여 있는 활동. 그 활동들 속에서 우리는 목적을 세우고 기대한다. 시련도 겪는다. 시련은 기대를 방해해 부정적으로 보이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목적을 이루기 위한 촉매 역할도 한다. 시련이 클수록 목적을 이루고 싶은 기대는 더욱 커진다. 기대하는 것을 이루었을 때의 기쁨도 더욱 크다. 반면 시련이 없다면 기대는 없다. 땅 짚고 헤엄치는 것처럼 당연히 되는 것이므로 그냥 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생각을 하고 목적을 세우고 기대를 한다. 오늘 나는 그 수많은 목적 중 하나를 위해 생각하고 행동하고 기대한다. 회사에선 오류를 찾기 위해 소스 코드를 검토하고 사람들과 프로젝트 진행에 대해 논의한다. 또 한편으로는 무엇을 쓸 것인가를 생각하고 밤에는 쌀알만큼이라도 사람들의 마음에 남을 글을 위해 생각을 적고 지우기를 반복한다. 앞으로도 나는 생각하고 목적을 만들고 시련을 극복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허무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질문할 것이다. 나는 무엇을 기대하며 사는 것일까? 그 질문의 답을 알아내고 답을 향해 가는 것. 그것이 내가 기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