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 마지막 날.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듣지 않았다. 노래를 듣는다면 정말 계절을 잃어버려 겨울이 가을을 성큼성큼 차지할 것 같아서였다. 가을은 늘 쓸쓸하다지만 이번 가을은 마음에 구멍이 몇 개는 더 있는 것 같다. 올해는 슬픈 일이 많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채 슬픔이가시기 전 매형이 돌아가셨다. 매형은 아버지 상중 줄곧 내 옆에서함께 문상객을 받아 주셨다. 살아온 날 동안 몇 번 마주하지 못했던 매형이었지만, 매형과 있는 동안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좋은 사람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릴 적 윗집 사는 형이 좋아 마냥 쫓아다녔던 것처럼 매형을 따르고 싶었다. 하지만 그처럼 좋아지던 사람이 지금은 없다. 떨어져 지낸 날이 많아 금세 잊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선한 얼굴. 착함이 묻어나는 목소리. 자꾸만 생각난다.
얼마전어느개그우먼이세상을떠났다는이야기를들었다.TV에서만 보았을 뿐 한 번도 만나본적은 없었지만 영리하고반듯한성품을가진사람이라고생각했다. 그런그녀가스스로생을저버렸다니.마음이숭숭거리고안타까운마음이들었다. 올곧은소신과떳떳한마음. 그것만으로는삶은버틸수없을만큼가혹한것일까? 그녀는생을이어갈단하나의희망도없었던것일까? 서쪽하늘을보았다. 밤이오기전하늘이온세상을사랑할 것처럼 핑크빛으로물들고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녀가 아름다운 하늘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단한 번이라도,그녀가저하늘을보았다면어땠을까?
뜨거운 사막 한 복판에 있는 나무처럼화초가 말라있었다. 화초는 잎을 늘어 뜨리고 마른 몸을 보이며 고통스럽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화초에게 신호는 삶을 위한 희망이었을 터. 희망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살아 있다는 전제 하에서만 가능한 것. 화초는 살아 있기에 고통을 겪고, 살아 있기에 물을 빨아들여 행복해할 것이다. 그처럼 고통도 행복도 살아 있어 느낄 수 있는 것. 모든 근원은 삶인 것. 그 삶을 위해 나는 미안한 마음으로 화초에 물을 주었다.
바람이 차가워진다. 떠나는 가을을 바라보는 마음도 차갑다. 보고 싶지만 볼 수 없는, 이야기하고 싶지만 이야기할 수 없는 사람들이 스친다. 소멸을 앞둔 가을은 아름다운데 그립고 슬프다. 내일이 되면 내일의 마음이 쌓이고 또 다음 날이되면그날의마음이쌓이겠지. 그리고겨울이오면겹겹이포개진그리움을안고차가운하늘을향해입김을불겠지. 그러면나의온기가섞인입김이콧속이찡할만큼냉기가득한허공에하얗게퍼지는것을보며희망이라는것을생각하겠지. 그희망이라는것이무엇인지는알수없지만, 잘될거라는잘되어야한다는마음으로. 늘휑하고공허하지만그렇지않은날도있을거라는염원같은것을생각하며. 잠을자고밥을먹고일을하고그리운사람을잊지않기위해노력하며, 비록이루어질수없는사실일지라도, 나에게는우리에게는,소멸은오지않을거라는희망을확신하며살아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