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삶의 목표가 아니라 도구이다
행복을 모아보자
군대는 힘들다. 어느 누구든 복무기간, 병과, 주특기 상관없이 고달프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군 생활중 가장 기억 남는 것은 걷는 것이었다. 훈련이 시작되면 낮에도 걷고 밤에도 걸었다. 비가 오거나 눈이 내려도 걸었다. 훈련이 없을 때도 어디를 가든 이동 수단은 걷는 것이었다. 차 한번 타보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결코 그런 일은 없었다. 심지어 전역날도 걸었다. 독립 중대에서 근무했던 탓에 대대본부까지 한 시간을 걸어갔다. 전역 신고를 하며 다짐했다. 앞으로 내 사전에 먼길 걷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군 생활 마지막 날 다짐처럼 전역 후 먼길 걷는 일은 정말 없었다. 대학 졸업 후 회사에 입사하고부터 줄곧 일만 하며 살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야근과 철야가 이어졌다. 급기야 건강검진 결과가 좋지 않았다. 버티고 버티다 안 되겠다 싶어 주말을 붙여 휴가를 냈다. 금쪽같은 시간이 주어졌지만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몰랐다. 그렇다고 잠만 자기도 싫었다. 결국 생각 끝에 길을 걷기로 했다. 길 위에는 오랜만에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고개를 드니 하늘과 구름이 보였다. 코 끝에 닿으며 지나는 바람도 있었다, 숨 쉴 때에는 몸 안으로 바다와 숲의 냄새가 들어왔다.
이상했다. 다리는 아팠지만 마음에서는 힘이 났다. 군대 시절 기억이라면 길을 걷지 말아야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길을 걷게 된 이유는 군대 시절 기억 때문이었다. 힘들었던 군 생활 속에서도 좋았던 기억이 있었다. 비를 맞으며 풀 냄새 가득한 숲 길을 걸을 때. 산속 세모난 텐트에서 새벽 공기를 마실 때. 야간행군을 하다 은은한 달빛에 비친 수묵화를 닮은 마을 풍경을 보았을 때. 몸은 힘들었지만 스치듯 지나가던 우연한 모습들이 잔잔히 마음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다. 그 소소했던 감정들이 고단한 군 생활을 버티게 해 준 작은 행복이었다는 것을.
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는 '행복의 기원'을 인용해 말했다. “행복은 삶의 목표가 아니라 도구"라고. 그동안 행복은 커다란 목표를 이루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행복은 언젠가 올지도, 아니면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를 막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작은 행복들을 모아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군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힘들어도 작은 행복한 순간들이 군 생활을 버티게 해 주었다. 그리고 먼 훗날 시간이 지나 그때를 생각하며 길을 걸었다. 결코 걷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먼길을.
우울하면 길을 걷는다.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다. 길은 먼길이 아니어도 된다. 똑같은 길이어도 행복을 느끼는 상황은 매번 다르다. 하늘이 맑은지 구름이 떴는지 바람이 부는지 공기가 차가운지. 이른 아침인지 초저녁인지 보름달인지 초승달인지 어떤 꽃이 피고 지는지에 따라 다르다. 걷는 것이 싫다면 평소 생활 속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아이를 안을 때, 엉덩이를 실룩대는 강아지를 볼 때,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울 때, 넉넉히 차선을 양보할 때, 음식을 만들 때, 목욕할 때, 글 쓸 때, 좋아하는 노래를 들을 때처럼 우리 주변에는 늘 작은 행복이 존재한다.
행복은 거대하고 원대한 것이 아니다. 로또처럼 커다란 한방도 아니다.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그것은 나의 생을 잘 살아내는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마음이 즐거우면 의욕이 솟고 힘이 난다. 즐겁다는 것은 마음이 좋으니 행복한 것이다. 그러므로 힘을 얻기 위해서는 행복하면 된다. 남에게 보여주고 자랑하는 행복이 아닌 진정 내 마음으로 느끼는 작은 행복이면 되는 것이다.
만져지는 것과 보이는 것. 냄새 맡을 수 있는 것과 맛을 느낄 수 있는 것. 산과 들과 바다. 집과 직장. 아이들과 아내와 남편. 사랑하는 가족. 거리와 빌딩 숲. 하늘과 해와 달. 꽃과 나무. 그 모든 것들 속에서 행복을 찾아보자. 그리고 어느 순간 어느 상황에서 잠시 즐거워 흐뭇한 웃음이 지어진다면 그것이 행복이다.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을 모아보자. 작아도 모아보자. 그러면 당신과 나 우리 모두는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