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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lein Oct 29. 2021

올 가을 나의 차를 보내기로 했다

정든 차를 보내려 한다

문틈으로 들어온 공기에서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냄새가 났다. 옷장에 걸린 정리 안 된 반소매 옷들이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가을이지만 올해는 슬픈 계절이 될 것 같다. 스무 번 함께 가을을 보낸 나의 차를 보내야 한다. 늘 그 자리에서 무탈할 것 같았지만, 영원한 것은 없다. 마지막을 받아들여야 한다.


차 안을 정리하는 동안 착잡하고 쓸쓸했다. 구석구석 쌓인 추억들 때문이었다. 추억은 추억이 만들어지는 순간 추억이 될 거라는 것을 모른다. 평범했던 순간들은 더욱 그렇다. 특별하지 않은 날의 연속이기에 생각나지 않는다. 훗날 돌이켜 보고 나서야 무덤덤했던 날들이 모여 나의 체취가 되고 분위기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인지 평범한 일이 만들어낸 추억은 더욱 아련하다. 차 안 구석구석 숨어있던 물건들을 발견할 때마다 추억과 함께 존재했던 시간과 계절과 나의 마음이 생각났다. 특별할 것 없는 시간들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는 것을 말하듯.


쉽게 차를 보내겠다고 마음먹지 못했다. 몇 번을 다시 타보려 했지만 이곳저곳 성한 곳이 없었다. 한 곳을 수리하면 얼마 후 다른 곳을 수리해야 했다. 정비소에서 시한부 선고하듯 차의 수명이 다 한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미련이 남았다. 하지만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보며 미련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울 속 나는 이십 년 전 나의 모습이 아닌 나이 든 남자 모습이었다. 차도 나와 마찬가지 일 것이다. 생명이 있는 것도 아닌데 뭐 그리 신경 쓰이는가 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가을이다. 풍성한 결실의 계절이다. 지만 결실을 거둬드린 자리에는 비움이 남다. 공허그 자리는 치열했던 생의 자취이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봄이 되어 싹을 틔우고 여름의 태양과 태풍과 비와 바람을 견뎌내어 바삭한 가을 햇살에 말려져 건실히 여문 풍족함의 자취이다. 자취 속에는 결실의 기쁨도 있지만 걱정과 염려, 노고와 고생도 어있다. 풍족함은 소유할 수 있기에 기쁨을 느낄 수 있지만 비움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똑같은 기온이라 해도 가을의 아침과 저녁 공기는 봄과 다르다. 가을 공기 속에는 쓸쓸함이 묻어있다. 봄은 비움이 끝나는 계절이지만 가을은 비움이 시작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가을에 남겨진 치열했던 산물의 자취를 보면 허전함이 밀려온다. 나이가 쌓이면 허전함 익숙해질 만도 한데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해가 거듭될수록 비워진 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흰 서리처럼 마음 시린 것은 덤이다.


이번 가을에는 오랫동안 발이 되어준 나의 차를 보내려 한다. 함께했던 지난 세월을 생각하니 타임머신 탄 듯 이십 년 시간들이 연신 오르락내리락한다. 지난 이십 년은 내 젊은 시절의 한가운데였다. 그 한가운데서 무엇을 이루었는지 생각해 보지만 모든 것이 지나간 추억이 되어 버렸다. 지난 것이므로 의미 없는 생각일 테지만 그래도 너무 선명해 멀미나 듯 마음이 울렁거린다. 


가을이 간다. 울긋불긋 무늬 가득한 우수에 젖은 세상 한가운데서 나는 정든 차를 보내려 한다. 차를 보내고 다음 가을이 되어 차를 보낸 날이 다가오면 차 안에 담겼던 추억들이 생각날 것이다. 좀 슬퍼지기도 할 테지만 그래도 나는 꿋꿋이 하늘을 보고 낙엽을 밟고 글을 쓰고 노래를 흥얼거리고 사색할 것이다. 그러면 어제의 결과는 오늘의 나를 가져다줄 것이며, 오늘의 결과로 나는 또 내일을 살아갈 것이다. 어제보다 더욱 시린 가슴으로. 어제보다 더 깊이 가을을 들여다보며 점점 잊혀갈 추억이 담겨있는 나의 차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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