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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lein Feb 05. 2022

눈 내리는 날 떠오른 글에 대한 생각

창밖에 눈이 떨어지고 있다.

책을 읽었다. 책에서 글을 쓸 수 있는 비결은 영감이라고 했다. 멍하니 TV만 보던 작가는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 글을 쓸 수가 없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 모습을 보고 잠이 들었던 동료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말끔히 글을 써 놓고 작가는 아침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고 했다.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으니 한밤중 갑자기 영감이 떠올랐다고 했다. 영감이 떠 오른 작가는 단숨에 글을 썼다고 했다. 동료는 써놓은 글을 읽어 보았다. 참 잘 쓴 글이었다. 나는 머리카락은 떡이 지고 후줄근한 늘어진 티를 입고 글을 써낸 책 속 작가가 부러웠다. 나는 알고 있다. 글을 쓰기 위한 영감이 떠 오른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란 것을.


지난날 쓴 글들을 읽어보았다. 글을 읽으며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썼었는지 생각했다. 어떤 글은 억지였고 어떤 글은 영감이었다. 억지로 쓴 글은 별로고 영감이 떠 올라 쓴 글은 좋았다. 글을 쓰면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언제 더 행복했는지 생각해 보면 영감이 떠 올라 썼을 때였다. 억지로 썼던 시간들은 좀 괴로웠다. 지금 읽어 보아도 억지로 생각하니 억지로 문장을 맞추려 했고 짜 맞추기 한 듯 삐뚤빼뚤한 마음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글을 쓰면서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글을 썼고 결과는 좋지 않았다. 장점이 자연스러움이라고 하지만 결국은 인공의 알고리즘이 산물인 AI처럼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사람의 감정을 모두 담아낼 수 없는 한계처럼.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띄엄띄엄 쓰던 글도 더욱 뜸해져 나 자신이 나에게 나는 언제 글을 쓸 수 있을까 질문하는 경지에 다다랐다. 외면했지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조금 겁이 났다. 이러다 영영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이러다 0과 1만 생각하는 논리만 가득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닌지? 지난날 썼던 글을 읽어 보면 내가 언제 이런 감성이 있었나 싶게 놀라웠다. 그러나 분명한 건 나는 분명 쓰고 싶은 글이 있었고 쓰기 위한 감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팬데믹이 된 후 2년 동안 나는 변했다. 완전히 은둔자로 바뀌었다. 직장을 다녀야 하므로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은 하지만 그게 다였다. 저녁 산책도 한계가 있었다. 비가 오고 눈이 오고 춥다는 이유로 하지 못했다. 생활이 점점 단순해져 갔다. 영감을 떠올릴 모티브가 없었다. 지금이 겨울이라는 사실을 안 것도 눈이 많이 내리던 날 뒷 베란다 창문을 열고 바깥공기를 맡았을 때였다. 겨울이란 것을 알면서도 코안으로 들어오는 쨍한 차가운 겨울 냄새에 "아 지금이 겨울이구나" 했다. 그제야 계절을 인식한 나는 "아 이게 사는 것인데"라고 생각했다. 꽉 막힌 아무 감정이 없는 막막한 상자 안에서 빛이 보이는 밖으로 한 발을 내딛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아...! 나는 작년, 그리고 재 작년 글을 썼었구나" 하며 글에 대해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을 아예 잃어버렸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늘 머릿속에 있었다. 다만 글을 쓰지 못해 안타까운 애 닳음이 이전보다 없었다. "예전에는 그랬었지..."라고 할 뿐 더 이상 어떻게 해보려 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내면에는 하고 싶고 좋아하고 술술 글을 써 내려가며 느꼈던 행복감은 잊을 수가 없었다. 눈 내리는 겨울 냄새는 조금씩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을 일게 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꼭 어떻게 하겠다는 다짐 같은 것은 하지 않겠다. 그렇게 된다면 결국은 또 의무가 되어버릴 테니까. 강박이 가득한 초초함이 겹겹이 쌓이면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가 될 테니까.


이 글은 이십 분 만에 초안을 썼다. 갑자기 떠 오른 생각 때문이다. 그것은 무엇이라며 하나를 콕 집어낼 수 있는 주제가 아니라 그저 글에 대한 생각, 그러니까 좀 부끄럽게 말해보자면 영감 같은 것이다. 영감이 떠오르니 억척스러운 겨울바다의 거대한 파도처럼 문장들이 몰아 친다. 아쉬운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방금 전 생각난 문장이 금세 사라진 다는 것이다. 그 정도가 너무 무차별하지만 별수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지금 영감이 떠오른 이 순간, 수많은 생각들이 흐르는 이 순간만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나는 행복하기 위해 최대한 문장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며 글을 쓴다.


창밖에 눈이 내린다. 영화처럼 탐스럽게 천천히 떨어지고 있다. 오랜만에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부터 눈은 아름다움이다. 눈이 내린다. 아름다움이 쌓이고 있다. 그리고 나에게도,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쌓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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