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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lein Oct 15. 2021

그 가을 아픔이 그립다

백신을 맞았다.

한동안 일이 많아 피곤했다. 이전 저런 일로 스트레스도 쌓였다. 예전 같았으면 잠깐이라도 여행을 다녀왔을 것이다. 하지만 떠나지 못했다. 마스크를 쓰고 조심조심 다녀도 되겠지만 소심한 나는 그러지 못한다. 차곡차곡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 방법을 생각했다. 사방이 막힌 동굴에서 동면하는 곰처럼 잠을 자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기 위해 가장 근접한 곳을 찾아본다면 암막커튼이 처져 한 줌 빛도 들어오지 않는 방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것은 억지로 자는 잠이 아니었다. 작정하고 잔다는 것은 잠이 오지 않아도 자야 하는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잠이 될 것 같지 않았다. 깨어나려 안간힘을 써도 저절로 스르르 잠이 드는 것처럼 잠이 와야 할 이유가 필요했다. 예전 가을이 시작될 즈음 흥건히 쏟아낸 땀과 열 속에 묻혀 무엇도 신경 쓸 의식 없이 오직 나만이 존재했을 때처럼.


가을이 시작되는 환절기가 되면 늘 앓곤 했다. 편도가 약해서였다. 찬바람을 맞은 목은 작은 새알이 걸린 것처럼 뭉클거리다 부어오르열이 나고 온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러면 모든 것을 멈추고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었다. 약기운에 잠이 들어 깊은 땅 속으로 떨어지는 꿈을 꾸다 깨어날 때마다 이불속에 있다는 것에 안도하며 내 몸에서 발산된 열기로 가득한 이불 안이 아늑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아늑함은 부드러운 포근함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보단 아주 오랫동안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할 만큼 멀리 떨어진 여행지에 도착했을 때 느끼는 홀가분함 같은 것이었다. 그 느낌을 오래 지속하고 싶었지만 나아야 했으므로 약을 먹고 노란 수액을 맞아 열을 내리고 편도를 가라앉다. 그러나 는다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여행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야 하듯 아프기 전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백신 1차 접종을 했다. 주사를 맞고 내심 궁금했던 건 몸살 증세가 일어날까였다. 하루가 지나자 주사 맞은 팔이 아팠다. 그러나 몸은 아무렇지 않았다. 백신 휴가를 냈지만 일중독에 빠진 사람처럼 회사를 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따분했다. 내가 맞은 백신은 2차 접종이 4주 후이다. 그러나 수급 문제로 6주가 되었다. 4주가 넘어 5주째 되던 날. 백신 수급이 좋아져 잔여 백신으로 2차 접종을 해도 된다고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검색을 하다 집 앞 병원에 신청을 하고 주사를 맞았다. 의사는 1차보다 아플 거라고 했다. 의사의 억양이 형식적이지 않고 진지했으므로 좀 긴장이 되었다. 그러나 밤이 되어도 아프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에도 괜찮았다. 그리고 오후가 되자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몸이 쳐지고 머리가 아파왔다.


온몸이 아팠다. 열을 재보니 39도였다. 해열제를 먹었지만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다. 다음날도 아팠다. 밥은 먹지 못했고 과일 몇 조각으로 대신했다. 오후가 되어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약을 먹고 다시 잠이 들깨어새벽. 어디선가 냄새가 났다. 창틈으로 들어가을 냄새였다. 차고 신선한 냄새가 좋아 않아 편도가 부어 땅속으로 추락하는 꿈을 꾸다 깨어났던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열기 가득한 이불속 아늑함도 떠올랐다. 현재도 아픈데 그때의 아픔이 그리웠다. 그러나 이제는 그때처럼 아플 수 없을 것 같다. 코로나가 시작되고부터는 편도가 아프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보다 자주 손을 닦고 손 소독을 하고 마스크를 써서 그럴 것이다. 게다가 바이러스 염려에 몸과 마음이 긴장한 탓도 있을 것이다. 아침이 되 체온이 빠르게 내려갔다.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떼며 쳐지던 몸 나아지고 있었다.


백신을 맞고 아팠던 하루 동안의 아픔은 예상했던 아픔이었다. 두통은 지금까지 경험해본 두통 중 최고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 아픈 것이 있다. 예전 같은 일상이 아니라는 아픔이다. 바이러스에 지지 않기 위해 인위적으로 아파야 하는 아픔. 그 아픔을 겪으며 예전 가을이 생각났던 아픔. 편도가 부어 내 몸의 열기가 가득한 이불속 아늑함이 없는 아픔. 이제 세상은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려 애쓰고 있. 하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돌아간다 해도 커다란 혹 하나가 붙은 것 같아 예전 같은 마음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그래도 계절은 순환할 테고 이제는 가을이 한 낮까지 퍼져 깊어지려 하니 하루하루 드는 조바심이 점점 진다. 하지만 자유로울 수 없다. 그저 예전 편도가 부었던 그날의 아픔을 그리워할 뿐이다. 바이러스를 이기기 위한 아픔이 아닌 찬 공기가 가져다주는 아픔. 그 가을 그 아픔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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