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걷는 즐거움이 있는 길, 제주 올레 6코스

서귀포의 삶을 만날 수 있고 다양한 문화가 있는 길

by Ollein

“주말에 뭐하세요?”

“걸으며 쉬려고 올레길 가려고요”

“쉬는데 걸으러 간다고요?”

네. 전 걷는 게 쉬는 거라서요”


쉬기 위해 걸으러 간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어떻게 하루 대여섯 시간을 걷는 게 쉬는 것인지 반문하는 사람이 많지만 올레길의 매력을 경험했다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인 것 같다.


대부분의 제주 올레길은 바닷길, 오솔길, 오름 등을 걷거나 오르지만 반면에 도심도 걷는 코스가 있다. 제주시 권역에서는 17코스가 있고, 서귀권역에서는 쇠소깍에서 외돌개까지 걷는 6코스가 있다.


어떤 이들은 부드러운 흙길이 아닌 딱딱한 길을 걷는 것에 거부감이 있을 수 있겠지만 실제는 다양한 볼거리들이 많아 올레길의 또 다른 새로운 매력을 더해 주게 된다.


올레 6코스는 쇠소깍을 출발하여 제지기 오름 → 보목포구 →보목하수처리장 →소정방폭포 → A 매일올레시장. B 서귀포항. →남성사거리 →삼매봉 →외돌개로 이어진다.


'테우'가 뭐죠?


'테우'는 육지와 가까운 바다에서 자리돔을 잡거나 해초를 채취할 때 사용했던 뗏목 같은 배다. 6코스 시작점인 쇠소깍에서는 테우를 체험할 수 있다.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입담이 예사롭지 않은 아저씨가 테우에 연결되어 있는 줄을 당겨 끌면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웅덩이의 안쪽으로 이동하며 주변의 소나무들과 기암괴석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물색은 주변 나무들이 물속까지 자신들의 몸을 비추어서 인지 거초록색에 가깝다. 아저씨 말에 의하면 수심이 깊다고 한다. 요즘에는 물 밑을 볼 수 있도록 투명카약도 등장을 했는데 그래도 테우와는 느낌이 다른 것 같다.


이른 아침의 쇠소깍. 아직 관광객들이 없어 조용하고 한적 하다. 물색이 주변의 나무들 색과 똑같다.
뗏목 같은배 '테우'


자리물회 드셔 보셨어요?


쇠소깍에서 출발하여 바다를 보며 걷다 보니 무인도인 섶섬이 가깝게 보이며 보목리 마을에 들어선다.


비오는 겨울 보목리 입구
어느 해 봄 제지기 오름에서 바라본 보목 포구
제지기 오름에서 바라보니 멀리 문섬과 서귀포가 보인다


보목리 마을은 자리돔의 주산지이다. 자리돔은 붕어만 한 크기의 돔 어종으로 가시가 억세고 기름지며 보리고개 시절 칼슘과 단백질을 제공해 주던 주요 식재료였다. 주로 물회나 구이, 조림, 젓갈등으로 요리하여 먹는다. 특히 자리물회는 여름이면 타향에 있는 제주 사람들이 가장 생각나고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이라고 한다. 자리물회를 처음 먹었을 때는 억센 잔 가시와 강된장을 푼 냉국에 먹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지만 한번 두 번 먹다 보니 육지에서도 자리물회를 찾게 될 정도로 좋아하게 되었다.


여름이면 제지기 오름 전 마을 초입에 있는 식당에서 싱싱하고 시원한 자리물회를 맛볼 수 있다. 그리고 덤으로 식당 건너편에는 코미디언 고 이주일 씨의 별장이었던 그의 이름을 인용한 카페도 있어 식사 후 여유롭게 차도 마실 수 있다.


자리물회


정방 폭포 동생 소정방 폭포


제주에는 유명한 3대 폭포가 있다. 천지연, 정방, 천제연폭포이다. 이중 천지연과 정방 폭포는 6코스에 위치하고 있어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6코스에서는 3대 폭포에 들지는 않지만 올레꾼의 땀을 시원하게 식혀주는 폭포를 만날 수 있다. 정방폭포를 축소해놓은 듯하다고 하여 이름이 붙여진 '소정방 폭포'이다. 떨어지는 용천수의 물줄기가 야무지고 힘차게 떨어져 섶섬과 문섬이 보이는 앞바다로 흘러들어 간다. 폭포 입구에 들어서면 시원하게 떨어지는 물줄기는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몸을 서늘하게 해준다. 유명하지 않은 작은 폭포이지만 서귀포 앞바다와 함께 운치 있는 풍경을 느낄 수 있는 폭포이다.


폭포 위에서 바라본 소정방 폭포
물보라를 뿌리며 떨어지는 소정방 폭포


소정방 폭포의 시원한 물줄기와 얼마 전까지 제주 올레 사무국이었던 '소라의 성'과 정방 폭포 입구를 지나 서복전시관을 지나면 길은 도심방향과 도심을 우회하는 방향으로 나누어진다. 길은 어느 방향을 선택해도 다시 만나게 되므로 계획했던 방향으로 걸으면 되며 참고로 우회 방향으로 걷게 되면 서귀포 항을 지나 천지연 폭포 입구를 지나게 되고, 도심 방향은 매일 올레시장을 지나 도심방향으로 이어 진다.


외롭고 가난했던 천재 예술가를 만날 수 있는 곳


서복전시관을 지나 도심 방향으로 걷다 보니 ‘이중섭 문화 거리’가 나온다. '소'의 역동적 모습을 여러 시각에서 다양하게 그렸던 이중섭은 1.4 후퇴 때 원산을 떠나 부산으로 피난을 왔다가 제주에 입도한 후 일여 년간 서귀포에서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그는 담뱃갑 은박지에 그림을 그릴 정도로 궁핍하였고 1.4평의 단칸방에서 4명의 가족이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가족들과 함께 지냈던 섶섬이 바라다 보이는 이곳에서의 생활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한다. 아이들과 함께 게와 조개를 잡으며 자구리 해안을 거닐었고, 그의 아내 남덕과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었던 이곳. 하지만 그 행복은 일 년 남짓으로 길지 않았고 훗날 그의 아내와 아이들은 제주를 떠나 부산에 살던 당시 일본으로 떠났다고 한다.


이중섭 생가
2015년 가을 자구리 해안에서


“예술은 무한한 애정의 표현이오. 참된 애정의 표현이오. 참된 애정이 충만함으로써 비로소 마음이 맑아지는 것이오. 마음의 거울이 맑아야 비로소 우주의 모든 것이 올바르게 마음에 비치는 것 아니겠소? 다른 사람은 무엇을 사랑해도 상관이 없소. 힘껏 사랑하고 한없이 사랑하면 되오. 나는 한없이 사랑해야 할, 현재 무한히 사랑하는 남덕의 사랑스러운 모든 것을 하늘이 점지해 주셨소. 다만, 더욱더 깊고 두텁고 열렬하게, 무한히 소중한 남덕만을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열애하고, 두 사람의 맑은 마음에 비친 인생의 모든 것을 참으로 새롭게 제작 표현하면 되는 것이오." <이중섭이 그의 아내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


전시관에 있는 그의 아내에게 쓴 편지를 보고 생가 앞에서 섶섬이 있는 바다를 보니 가족과 함께 했던 짧았던 행복과 멀리 떠나보낸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향한 그리움이 느껴지는 듯하여 가슴이 애잔해지고 먹먹해지는 듯하다.


이중섭이 살았던 단칸방
이중섭 생가에서 바라본 섶섬이 보이는 서귀포 바다


천재 예술가는 서귀포를 문화와 공연의 도시로 만들어 버렸다


애절한 마음을 뒤로하고 이중섭 생가를 나오니 그의 예술정신을 기리고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이중섭 거리가 나오고 길 양편으로 많은 공방과 카페들이 보인다.

공방에서는 작가들이 손수 제작한 다양한 작품들과 액세서리들이 있고 모두가 독특한 느낌의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어 여유롭게 감상하며 마음에 드는 작품은 구입도 할 수 있다.

감성적 느낌이 느껴지는 작은 카페들은 화려하지 않지만 편하고 소소하게 진한 커피 향을 느낄 수 있어 차를 마시며 조용히 편하게 머물다 갈 수 있는 분위기이다.


영화 '좋은날'에 나왔던 공방
공방 내부 모습(출처:중섭공방)


이 거리에는 제주올레의 마스코트인 간세인형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곳도 있다. ‘바늘’의 제주어 이름을 붙인 카페로, 이곳에서 사용되는 천은 모두 재활용되는 천을 사용하고 있다. 바느질이 서툴더라도 만드는 방법을 알려 주시는 분이 있어 혼자서도 충분히 만들 수 있다. 시간이 된다면 마음에 드는 천을 골라 자기만의 무늬를 갖는 간세인형을 만들어 보는 것도 큰 추억이 될 것 같다.



간세인형을 만들어 볼수 있는 카페
올레사무국에서 간세인형 만드는 장면 : 제주올레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간세인형등의 기념품을 만들어 그 수익금으로 제주 올레길을 운영 하고 있다.


카페와 공방들을 구경하며 언덕을 올라가다 보니 오래된 건물에 6~70년대 영화 포스터가 붙어있는 ‘서귀포 관광 극장’이 보인다. 당연히 영화관일 것이라 생각하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놀랍게도 스크린이 아닌 하늘이 보이는 아담한 노천 극장이 나타난다. 나무로 된 층계형 객석과 작은 무대가 있는 공연자와 관객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공간이다.



하늘이 보이는 아담한 '서귀포 관광 극장' 내부


이곳에서는 인디밴드와 제주에 거주하는 다양한 분야의 가수, 음악가, 예술가들의 다채로운 테마 공연을 한다고 한다. 몇 해 전 올레길을 걷고 저녁 식사 후 우연히 이 거리에서 작은 콘서트를 본 기억이 있다. 가을날 제주 밤바다의 바람을 맞으며 공연을 보니 어찌나 행복하고 좋던지 으리으리 한 큰 공연장에서 몇십 만원씩 주고 보는 어떤 콘서트보다 좋고 행복했던 느낌으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콘서트였다. 기회가 된다면 6코스를 마치고 서귀포 시내에서 하루를 묵으며 다양한 공연을 즐기는 것도 좋은 추억으로 남을 듯하다.


극장에서의 공연모습(출처:서귀포 관광 극장)
2013년 10월 이중섭 거리에서 우연히 보았던 공연


제주올레는 재래시장을 아케이드로 바꿔 놓았다.


제주올레길이 제주에 끼친 영향 중 가장 큰 하나는 침체되었던 재래시장의 활성화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제주시의 '동문시장'과 서귀포의 '매일 올레 시장'이다. 매일 올레 시장은 이전 명칭이 '매일 시장'이었으며 서귀포에서는 가장 큰 시장으로 상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음에도 제주올레가 생기기 전까지는 시장 상권이 그리 좋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제주올레가 열리고부터는 전국에서 몰려오는 올레꾼들에 의해 조금씩 생기를 찾았고 내부 구조를 아케이드 형태로 개량 후 '서귀포 매일 올레 시장'으로 명칭을 바꿔 새롭게 거듭난 시장이다.


아케이드 형태의 서귀포 매일 올레 시장


이곳에는 다양한 수산물을 비롯해 보리빵, 밀면, 도너츠, 찐빵, 오메기떡 등의 간식과 몇십 년간 운영되는 분식집, 통닭집 등이 있다. 하루의 관광일정이 끝나는 저녁이면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근래에는 중국 관광객들도 많이 찾아오는 서귀포 관광의 필수 코스가 되고 있다.


김밥,전,계란,떡볶이가 한접시에 나오는 '모닥치기'


이제 길은 북적북적하던 올레 시장과 한적한 서귀포 시내를 지나 칠십리 공원에 들어선다. 경남호텔이 있는 도로 건너편 쪽 공원에 서니 서귀포 항과 세연교 그리고 천지연 폭포 주차장이 보이고 바로 눈앞에 있는 것처럼 문섬이 가깝게 보인다. 상상만 하던 그림 같은 바다와 섬이 있는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어 이곳은 도심에서 볼 수 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 이기도 하다. 서귀포에서 하루를 묵을 때는 아침에 꼭 이 곳에서 산책을 하곤 한다.


경남호텔 맞은편 공원에서 바라본 서귀포항 풍경


삼매봉. 방심하지 마세요.


잘 꾸며진 칠십리공원을 지나니 외돌개로 가는 푯말이 보인다. 종착지의 이정표를 보며 “도착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하는 마음과 함께 긴장감이 사라지며 다리가 조금씩 풀릴 때쯤, 올레 리본은 여정이 얼마 남지 않음이 아쉬웠는지 삼매봉 입구로 방향을 가리킨다.


입구로 들어서면서부터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되는 길은 입고 있던 겉 옷을 하나둘씩 벗어 버리게 하고 가슴 끝까지 숨이 차게 한다. 그리고 올라가는 방향에서 보면 마치 정상처럼 보여 마지막 남은 힘을 모아 오르게 하지만 다가갈수록 정상이 아님을 깨닫고 결국은 방송국 송신소 앞에서 주저앉아 숨을 고르게 된다.


하지만 힘듦도 잠시 뿐이다. 힘을 내어 끝까지 오른 삼매봉 정상에선 힘들게 올라온 올레꾼을 위해 선물을 안겨주듯 한라산의 웅장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삼매봉에서 바라본 한라산
삼매봉 정상의 정자


올레 6코스에서는 서귀포의 삶과 애환을 만날 수 있었다.


삼매봉 정상 정자에서 한 숨을 돌린 후 도착 지점을 향해 길을 따라 내려가니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외돌개가 보인다.


이제 6코스 여정은 끝이 나고 올레꾼은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지친 다리를 풀기 위해 제주올레가 처음 생길 때부터 올레꾼들의 쉼터가 되며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외돌개 어느 카페에서 '봉자 주스'를 마신다. 항상 반갑게 맞아 주시는 사장님의 미소와 달콤한 주스는 아름다웠던 오늘 여정의 마지막 기억으로 남으며 올레꾼은 6코스의 일정을 모두 마치게 된다.


한라봉과 유자로 만든 '봉자주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어 행복했던 천재 예술가와 그들의 가난을 보듬어 주었던 아름다운 바다와 마음의 위안을 주는 섬들을 바라볼 수 있는 길.


도심을 걸으며 시장 사람들의 정을 느끼고 손수 만든 예술 작품들과 아늑한 카페에서 부드러운 향의 커피를 만날 수 있는 지루하지 않은 길.


제주올레 6코스는 서귀포의 문화와 예술적 감성을 느끼며 도시를 걷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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