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llein Oct 25. 2022

다시 떠나야 할 이유, 고독

힘들고 어려운 감정 앞에서 나는 늘 우물쭈물했다.

언제 떠날지 기약할 수 없었다. 매일매일이 그저 그런 일상이라지만, 그날들이 모여지고 쌓여 먼 훗날 되돌아볼 삶이 되기에 하루하루가 소중했다. 그러나 충실한 삶을 위한 긴장감마저 무력해지는 것 또한 삶이기에 어떤 날은 마른 허공처럼 허무했다.


그럴 때면 지난날 여행을 하며 느꼈던 감정을 생각했다. 걷다 서서 바다를 바라보거나, 비를 피해  처마   꽃을 보며 느꼈던 행복했던 감정 같은 것이었다. 즐거웠던 감정만 나는 것은 아니었다. 아름다운  보다가도 불청객처럼 다가오는 감정이 있었다. 즐겁거나 밝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치명적으로 부정적이지 않았던 감정은 심각지만 조금은 애처로운  나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말하려는  짓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곤 했다.


후회 없이 열심히 살았다고는 하지만 한 해의 마지막을 향해 갈수록 건조한 날들이 주는 허무함은 피할 수 없었다.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효기간이 임박해 가 휴가를 모아 많은 사람들 속에서 길을 걸었다. 파란 바다와 푸른 하늘. 심술궂은 바람을 민망하게 하는 햇볕. 길 위에 펼쳐진 세상은 행복할 만큼 아름다웠다. 그러나 행복의 시간은 뾰족한 원추 끝에 서있는 것처럼 길지 않았다. 시기하듯 서늘하고 투명한 무언가가 다가왔다. 즐거운 마음이 심해의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며 가라앉듯 사라졌다. 그러나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정해진 순서, 정해진 시간은 없었지만 이전에도 그랬기에 그것이 무엇인지 짐작하고 있었다. 여행할 때면 늘 나를 쫓아왔던 것. 그것은 고독이었다.



어릴  TV 나오는 어른은 멋있. 소용돌이 모양으로 섞이는 양과 커피색, 은은히 피어오르는 수증기. 코트 깃을 올린 남자는 향을 음미하며 커피를 마셨다.  모습을 사람들은 고독한 모습이라고 했다. 멋있어 보였다. 고독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처럼 커피를 마시면 고독을 알 수 있을  같았다. 하지만 커피는 어른 마실  있는 것이었다.


커피를 마실수 없 책을 뒤적이며 고독을 찾아보았다. 러나 어린 나는 이해할  없었다. 사전을 펼쳐 고독을 찾아보았다. 쓸쓸함, 외로움 같은 단어 정의되어 있었지만 전히 독의 느낌을   없었다. 고독은 무겁고 어려운 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도 손으로 쥐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고독 커피처럼 어른이 되어야만   있는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훗날 알게  사실은 고독은 커피를 마실  있는  되어 여전히 어렵다는 것이었다.


바람이 불었다. 비릿한 바다 냄새가 났. 금방이라도 우울해질  같은 회색  같은 냄새 온몸에 퍼졌다. 서늘하고 시린 공기가 . 몸과 음이 진공이  것처럼 비워져 허공으로 날아갈  같았다.   재처럼 날아가지 않기 위해  움큼 풀이라도 잡아야 . 그러나 주변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나뿐이었다. 두려웠다.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희미한 무언가가 손짓했다. 것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의지  것은 손짓뿐이었다. 손을 뻗었다. 그러자 희미 독이라는 손이  손을 잡았다.


은 고독이 건넨 손이었다. 고독은 어둡고 회색  나는 감정이 아니었다. 상했다. 공허한 것 같지만 신선했고 비어있어 깨끗했다. 척도도 기준도 없었다. 고독은 나를 나답게   있도록 모든 것을 비운  기다리고 있었다. 그동안 고독을 어려워했던 이유는 나를 나답게    하 수많은 잣대와 기준을 버릴  없었기 때문이었다. 고독은 모든 것을 버리라고 했지만 나는 그것이 두려웠다. 내가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독은 그런 나를 질책하지 않았다. 고독은 심오하고 어려운 것이라 하며 어렵고 복잡한 수많은 상념들을 대입시켰지만  무의미한 것이었다. 고독 느끼는 나는 지난날을 살아왔고 앞으로 살아갈 나일뿐이었다. 비우기만 하면 될 뿐었다.



양치질하는 거울 속 나를 바라보다가도, 달리는 지하철 안 꾸깃꾸깃 접힌 종이 인간이 되어 땀을 뻘뻘 흘리다가도 고독은 찾아올 수 있다. 더욱이 즐거워야 할 여행에서 고독을 느낀다면 당황스럽다. 그러나 여행 중 만나는 고독은 나를 가장 나답게 바라보게 해 줄 고유한 방을 만들어 준다. 의지할 곳도, 사람도 없는 낯선 여행지에서 강요받지도 강요하지도 인정받지도 인정하지도 않게 해 준다. 일상을 떠나 얻은 여행이라는 소중한 자유 안에는 자신만 존재할 뿐, 그 어떤 무엇을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 고독은 자신을 오롯하게 한다. 오직 자신 사정, 자신의 생각, 자신의 결정에 따라 슬픔과 고난, 기쁨과 행복이 있는 것이다. 여행지에서 고독을 느낀다면 우울해하거나 벗어나려 하지 않아도 된다. 그 순간이 가장 나다운 나를 느낄 소중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휴가를 모아 사람들 속에서 걷던 날. 사람들은 가족, 연인, 친구와 이야기하며 걸었다. 나는 작은 가게에서 음료수 살 때와 외진 곳에 있어 아무도 찾아올 것 같지 않은 카페에서 커피 주문할 때를 빼고 거의 말하지 않았다.  남자가 말을 걸어왔지만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의 여행담에 집중할 수 없기도 했지만, 그보단 홀로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을 마음에 담느라 한참을 서 있었기 때문이. 섬을 바라보는 동안에도 다. 반짝이는 수면 위로 빠르게 달려오는 고독이 품어내는 숨이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예전처럼 우물쭈물하지 않았다. 여행을 그리워하 마음을 주춤거리게 던 고독 앞에서 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다.

이전 13화 말을 건넨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