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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lein Oct 25. 2022

말을 건넨다는 것

여행 중 건넨말은 때 묻지 않은 마음이다.

바람이 불었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보이는 것은 넘어지지 않기 위해 디뎌야 할 땅뿐이었다. 몸은 모래 가득한 주머니를 양 발에 찬 것처럼 쉽사리 나아가지 못했다. 실체도 없는 존재에게 바람이 너무 하다며 투덜거렸다. 그러나 바람은 더욱 거세게 불어 불평을 허무하게 날려 버렸다. 찬기에 두 뺨만 냉골처럼 얼얼해질 뿐이었다.


함께 걷는 사람들은 많은 길을 걸었고 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지난 여행 속 무용담에는 바람에 대한 이야기가 있을 법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묵묵히 걷기만 할 뿐 말을 걸어오지도 건네지도 않았다. 몸 가누기도 힘들 만큼 매서운 바람에 각자 마음 붙잡기에만 여념이 없었다.


세상에 태어나 내 안에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마음이 나에게 말했다. 마음은 꾸미지 말아야 한다고. 진리의 의미를 알지는 못했지만 본능적으로 그 말은 꼭 진리로 간직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마음이 있다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를 의식해야 하는 것이었다. 어른이 되고 세상 속 관계가 형성되며 득과 실을 알게 되자 마음을 꾸미기 시작했다. 상대 마음을 내 것으로 하려 했고 내 마음을 상대에게 보여 주려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세상에 맞추어 변해가는 마음과 꾸미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진리로 알고 있는 숨어있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했다. 피곤이 몰려왔다. 숨어있는 마음을 포기하고 싶었다. 세상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그 마음을 버린다는 것은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바람에 날려 버리듯 쉽게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숨어 있는 마음을 찾고 싶었다. 마음은 쉽사리 나타나지 않았다. 방법을 찾아보았다. 그중에는 여행이 있었다. 여행하며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과 이야기했다. 이야기는 여행 중 느꼈던 내 마음에 대한 이야기였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지만 이야기는 자연스러웠다. 누가 더 멋진 풍경을 보았는지, 더 맛있는 음식을 먹었는지 같은 경쟁은 없었다. 그들 이야기는 마음 깊은 곳에서만 나올 수 있는 이야기였다. 타인과 관계를 의식하지 않은 자신 근원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이야기.


어색했지만 나도 그들에게 꾸미거나 숨기지 않고 마음을 이야기했다. 이야기가 끝났을 때 사람들은 미소를 지었다. 미소는 당신 이야기를 들으니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의미였다. 진심을 말해주어 이제부터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들 미소를 보며 숨어있는 마음을 표현한다는 것은 부끄럽거나 후회되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여행 중 만난 사람들과 진심을 담아 말을 건네는 것. 그것은 때 묻은 마음을 버릴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였으며 오롯한 의 마음을 찾는 방법이었다.


바람은 누그러질 기색이 없어 보였다. 양볼의 감각이 완전히 사라지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말했다.

"이런 바람은 처음인 것 같아요"

고개를 숙인 채 땅만 보며 걷는 사람들은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말은 힘없이 허공으로 떠올라 바람에 날아갈 것 같았다. 사실 그 말엔 어떤 위로 감흥도 없었다. 단지 바람을 이겨내느라 힘들어하는 누군가의 마음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말엔 동질감이 있었다. 거센 바람 속을 걷는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그러게요. 많은 길을 걸었지만 이런 바람은 처음이에요"

나는 허무하게 날아갈 것 같았던 누군가의 말에 대답해주었다. 그러자 또 군가가 대답을 했고 또 누군가가 이야기했다. 잠시 후 사람들은 말을 건네며 자신들 마음을 이야기했다. 이야기는 경쟁도 의심도 꾸밈도 없었다. 강요되지 않았고 각색되지 않은 마음뿐이었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눈을 뜰 수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도 바람은 약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바람을 원망하지 않았다. 혹독한 바람의 힘에 마음을 잡으려 안간힘을 쓰지도 않았다. 마음이 담긴 이야기만 끊임없이 두런두런 이어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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