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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lein Apr 15. 2016

하영 머물고 싶은 섬, 가파도 올레길

제주를 걷는다는 것은 늘 아쉽고 그립다. 제주올레 10-1코스.


떠남은 늘 아쉽다. 


그렇다 해도 떠남이 반복되면 조금은 마음이 무디어질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 반대였다. 제주에서의 마지막 날. 서운한 마음은 더욱 커져만 갔고 그런 마음을 위로받고 싶었다. 그래서 오후 비행기를 타기 전 가파도를 걷기로 했다. 하지만 위로는 결국 핑계였을 뿐, 더욱 깊은 아쉬움이 남을 것이란 걸 예감하면서도 그곳에 가기로 했다.


시간에 맞춰 공항에 도착하려면 섬에서는 두 시간 남짓밖에 머무를 수가 없다. 그리고 몇 시간 후면 나는 육지에 도착해 일상이 있는 도심의 한 복판에 서 아직 남아있는 헤어 나오기 싫은 꿈같았던 섬의 여운을 생각하며 "아! 바로 몇 시간 전까지도 난 그곳에 있었구나" 하며 그리워할 것이다.  꿈이라고 느껴질 잠깐의 간을 위해 가파도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싣다.


가파도로 가는 배가 있는 모슬포항


맑은 날을 기대했건만  흐리다.


화창한 날씨였다면 산방산과 송악산, 멀리 화순까지 선명하게 볼 수 있었겠지만, 오늘은 그렇지 못하다. 하늘의 심기가 조금 더 불편하기라도 한다면 비가 쏟아질 것만 같다. 하지만 다행히 더 이상 비구름은 몰려오지 않았다. 오히려 햇볕이 가려진 선선한 날씨바람과 함께 상쾌함을 가져다준다. 봄인데 가을 같은 느낌이다.


제주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산이 있는 반면 가장 낮은 섬도 있다. 그 섬이 가파도이다. 가파도는 모슬포와 마라도 사이에 있는 대한민국의 유인도 중 가장 키가 작은 섬이다. 그만큼 해수면에서 가장 가깝다는 의미이다.


가오리 모양가파도 올레 전체 길이는 약 5킬로미터 이다. 언덕이나 오름이 없는 평탄한 길이어서 몸이 불편한 분들도 휠체어를 타고 돌아볼 수 있다. 그만큼 가파도 올레길은 여느 올레길보 천천히 여유롭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가파도 올레는 상동포구 → 냇골챙이 앞 → 가파 초등학교  → 개엄주리코지 → 큰 옹짓물 하동포구로 이어지고 하동포구에서 상동포구로 올땐 섬을 가로 질러 오면 된다.


아이의 눈에 세상은 늘 넓게만 보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뒤 바라본 그곳은 너무도 작게 보였다. 주변을 두리번거려 보니 어릴 적 기억은 미니어처처럼 작아졌을 뿐 모든 것들은 그대로였고, 세상의 치열함에 찌든 어른은 우두커니 서서 자신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소년을 찾고 있을 뿐이다. 어렴풋한 유년의 추억, 그곳에서 품었던 꿈을 생각하면 왠지 모를 서글픔이 밀려오는 골목길.


올레길 이정표를 따라가기 전 잠시 마을로 이어진 골목길로 들어가 본다. 돌담을 따라 삐뚤빼뚤 이어져 있는 골목 어디선가 아이들 소리가 들린다. 소리를 따라 가보니 사내아이 둘이서 자기 집 뒷마당에서 사이좋게 놀고 있다. 쌍둥이처럼 옷도 똑같고 머리 모양도 똑같은 형제는 바닥에 철푸데기 앉아 제들끼리 재잘대며 놀고 있다. 다가가 “사진을 찍어도 될까?” 하고 묻자 이쁜 표정으로 포즈를 취해 준다. 조그만 섬에서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니 모두들 대도시로 나가는 요즘 세상에 반가운 마음이 든다. 아이들도 먼 훗날 어른이  지금의 나처럼 작아 보이는 마당에 서서 유년을 회상할 것이다. 아이들을 보며 생각한다. 저 아이들은 꼭 꿈을 이뤄, 이곳에 다시 섰을 땐 서글픔 없이 환히 웃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고.




가파도의 도로는 좁다.


자동 한 대가 겨우 지날 만큼 좁은 이다. 가파도는 다른 섬처럼 스쿠터도, 투어 버스도, 요란하고 현란한 식당들의 호객행위도 없다. 다만 길을 걷다 누군가와 마주치면 손을 흔들어 반갑게 인사할 수 있는 정겨운 마음만이 있는 이다. 걷다가 힘들면 멈추어 바다를 보고, 쉬고 싶은 만큼 쉬다가 다시 발길 닿는 대로 걸으면 된다. 오직 두발만 움직여 섬의 여유를 느끼고 눈에 보이는 풍경과 느낌을 가슴에 담기만 하면 되는 이다.



드디어 너른 청보리 밭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바다 불어오는 바람과 눈앞에 펼쳐진 출렁거리는 푸르름 바라보며 섬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다. 나도 그 속에 묻혀 걸음을 멈추고 보리밭 사이를 가로지르며 불어오는 바람에 내 몸을 맡긴다. 진정한 힐링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사람들의 여행 타입은 저마다 다르다. 머무는 여행자. 지나는 여행자. 난 어릴 적부터 낯선 세계의 여러 도시에서 한 달이건 두 달이건 이어지며 머물다 가는 여행을 꿈꿔 왔었다. 그래서 지금도 여행을 하면 꼭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다시 가는 버릇이 있다. 다시 찾은 그곳에서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곤 한다. 그리고 그 순간엔 새로움에 놀라기보단, 소박함에 행복을 느끼곤 한다. 머물다 발견하는 지나치 듯 눈에 들어오는 모습들과 감성. 나에게 있어 여행의 묘미는 그런 것들이다.


그렇게 보면 가파도는 나에게 머물다 가고 싶은 곳이다. 다음에는 이 섬에서 꼭 하루라도 묵어 보아야 하겠다. 며칠이든 작은 섬의 매력을 품에 안고 머물며 느긋이 쉬고 싶다. 구름처럼 몰려왔던 사람들이 빠져나가면 섬은 아득하게 조용한 나만의 안식처가 될 것이다. 그리고 고요한 섬에서 무릎이 나와 볼품없이 해진 바지처럼 편하고 넉넉하게 작은 섬의 낭만을 느껴 보고 싶다. 아마도 다음 여행은 제주 여행이 아니고 가파도 여행이 될 것 다.



보리밭 사이에 돌담으로 이어진 황토색 흙 길을 걷는다. 딱딱한 시멘트 길보다 더 푹신하고 정감이 가는 길이다.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아 질척거릴 거라 생각했지만 땅은 걷기 좋게 푹신한 길로 사람들을 이끈다. 어려서부터 난 이런 좁다랗게 이어진 길을 좋아했다. 그래서 학교에 갈 때도 일부러 좁다란 논둑길로 다녔고 동네 앞 냇가의 둑방길도 좋아해서 그 길을 걸으며 저녁이 될 때까지 쏘다니던 생각이 난다. 아마 그 감성이 남아있어 지금도 올레길을 걸으며 행복해하고 있나 보다.



두 시간은 너무 짧았다.


풍경과 감성에 취해 해찰을 부리다 배 시간이 다가오는 바람에 거의 뛰다시피 하여 대합실에 도착했다. 화려하고 눈이 혹 할 만큼 자극적인 맛이 아닌, 담백하고 순수한 섬을 느끼기에는, 2시간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다. 그렇게 가파도는 평범하지만 보고 느끼고 사색하며 섬안의 매력을 진득하게 바라보고 느낄 것이 너무나도 많은 때 묻지 않은 섬이다.


대합실 앞 공터에서 섬 주민들이 판매하는 ’을 구입했다. 예전 서귀포 어느 식당에서 '몸국'을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어서 이다. '모자반'을 부르는 제주어이다. 예전부터 제주에서는 돼지고기와 내장, 순대까지 삶아낸 육수에 몸을 불려 국을 끓여 먹었다. 그 국에 몸을 넣으 돼지고기 육수의 느끼함이 줄고 구수한 맛이 난다. 그래도 느끼하다면 송송 썰은 파와 고춧가루를 함께 넣어 먹으면 느끼함이 사라진다. 제주의 토속적인 맛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맛이다.


몸국 (출처 : http://dunkin.tistory.com/m/post/3802)


를 타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든다.


들 중에 보기에도 버거워 보이는 큰 배낭을  여행자도 보인다. 그 사람을 보니 언젠가 어느 올레길을 걷던 중 자신의 머리 위까지 올라올 만큼 짐을 가득 담은 배낭을 멘 백패커 생각난다. 우리는 잠시 얘기를 하였고, 그는 매일 비박을 하며 하루에 두 코스씩을 걸어 모든 올레길을 완주할 계획이라고 했다. 힘들지 않으냐고 물어보려 했지만, 정해진 기간 안에 올레길을 완주하고야 말겠다는 신념 가득한 그의 눈빛을 보니, 질문 같지 않은 질문이라 생각되어 물어보지 않았다.


난 그의 올레길 완주 계획을 들으며 마음 한구석엔 이 좋은 길과 아름다운 풍경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하루에 30~40킬로를 걷기 위해 땅만 보고 걷는 것이 안타깝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건 나만의 생각일 뿐이다. 그 백패커의 입장에선 그만의 확고한 신념이 있기에 길을 걷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어쩌면 그와는 다른 방식으로 걷는 그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내가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 얼마를 걸어야 하고 어떻게 걸어야 할지의 정답은 없다. 다만 그 백패커처럼 자신의 목표와 신념이 확고하다면 스스 생각하고 결정한 만큼 걸어 목표를 이루면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삶도 마찬가지이다. 목표를 향해 빨리 가야 할지 느리게 가야 할지의 결정은 결국 본인의 몫이다. 남의눈을 의식하여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전전긍긍하며 고민할 필요는 없다.

100미터를 가든 42.195 킬로미터를 가든 얼마를 갈지, 어떻게 가야 할지의 결정과 행동은 결국 우리 스스로가 해야 한다. 그리고 최선의 결정이 되기 위해 때로는 걷고 때로는 뛰기도 하며, 생각하고, 고민하고, 웃고, 가슴 아파하는 과정 속에서 최선의 답을 찾으며 길의 종착지에 도착하는 것이 우리의 삶일 것이다.


길을 걸으며 만났던 사람들, 길가에 스쳐 보이며 지나갔던 돌멩이, 풀, 이름 모를 들꽃들을 바라보다 작은 의미를 깨닫듯, 삶 속에서의 나와 나, 나와 그, 나와 그녀, 나와 사람들과 함께 했던 경험과 배움 들은 나이 듦과 함께 더욱 성숙한 나를 만들 것이다.



이제는 섬을 떠나야 한다.


시간은 흐르고 풍경은 이쁘고, 온몸에 감싸는 바람을 맞으며 내 두발은 계속 한 곳에 서서 머무르니 흘러가는 시간이 아쉽기만 하다. 시간이 된다면 걷다, 쉬다, 바라보다, 그렇게 섬의 매력을 좀 더 느꼈으면 좋았을 텐데...


예전 제주 어느 바닷가 마을에서 묵었던 민박집 할머니의 말씀이 생각난다.


들어올 땐  낯선 섬이 두려워

서러워 눈물 흘리고,


나갈 땐 정들어버린 섬이 떠나기 싫어

눈물 나는 곳.

.

.

제주.


제주는 그런 곳이다.

그래서 제주를 걷고 여행하는 것은 늘 아쉽고 그리운 것이다.


바람에 날리는 올레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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