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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미의 colorful life Sep 28. 2021

새치와 흰머리의 차이는 뭘까

새치 염색의 원년

몇 년 전부터 가르마를 타면 보이는 새치가 신경이 쓰였다. 근데 올해부터는 몇 올 수준이 아니라 흰머리가 아주 길게 길러져 있었다. 글을 쓰는 도중 궁금해졌다. 어디까지가 새치이고 어디부터가 흰머리인가. 지식인에 이미 친절하게 나와 있었다.



- 새치와 흰머리는 동일 개념이며 나이가 비교적 어린 사람에게 흰 머리카락이 올라을 때 '새치'라고 부르지만 단순히 이름만 다를 뿐 흰머리는 흰머리이다.



흰머리는 흰머리이다. 노화는 노화다. 그럼 흰머리라고 부르는 것이 맥락 상 맞을 수도 있겠다.




여느 때와 같이 미용실에 뿌리 염색을 하 간 날, 단골 헤어디자이너에게 요즘 부쩍 늘어난 흰머리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 새치 염색 해야 할까요?


작년까지만 해도 할 필요 없다고 말하던 디자이너 선생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노화에 대한 무언의 긍정이었다.


- 새치염색 중에서 제일 밝게 해 드릴게요.


새치 염색하는 사람 중에는 어려 보이게 해 준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새치염색에서 가장 밝은 색이란 고동색 정도를 의미했고 나이가 든다는 것은 샛노란색의 염색을 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럴 줄 알았으면 분홍색으로 노란색으로 연두색으로 20대에 염색이나 많이 해둘걸. 힘없는 후회가 머리를 스쳤다. 그렇다. 올해는 새치 염색의 원년이었다.


새치 염색을 하고 머리를 쓸어보니 오른쪽 왼쪽 어디로 가르마를 타던 새치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염색으로 간단히 해결될 것이었다니, 그간 족집게로 뽑다가 가르마가 듬성해졌었다. 고민하다가 문구용 가위로 머리카락을 자르던 세월이 무상했다.


동년배들에게 물으니 새치 염색은 이미 하고 있는 사람이 삼분의 일은 되었고 탈모로 고민하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나 역시 남부럽지 않은 머리숱을 가지고 있었으나 요 근래 늘 같은 가르마를 타서인지 가르마 사이로 보이는 두피의 면적이 넓어졌다. 가르마가 유난히 하얬다. 그렇다. 삼십 대 중후반은 이제 다가올 노화를 마주하는 시작점이다.




20대에는 일 년에 한 번이나 감기로 병원을 갈까 말까였는데 30 중반이 넘어가니 은근히 아프다.


없던 편두통이 생기고 관절에서 소리가 났다. 소화가 잘 안 되는 한편 먹는 대로 살이 쪘다. 상처가 나도 곧잘 새살이 돋아나던 피부는 여드름 추출 한 번에 착색됐다. 좋다는 연고를 발라도 회복이 잘 안되었다. 크고 작은 수술도 하게 된다.


20대에는 건강검진 종합의견 란에 어떤 코멘트도 없었으나 이상소견이 해를 거듭할수록 한 줄 두 줄 늘어나고 있다.


동년배들 중 큰 병에 걸려 휴직을 하거나 생사의 기로에 놓이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그야말로 '생로병사'에서 '로병'의 단계를 지나고 있는 것이다.



 

20대에는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가 되고 싶었다. 하이힐을 신고 대도시를 누비고 사랑하고 즐기며 살고 싶었다. 드라마를 수십 번 대사를 외울 때까지 봤다. 첫 해외여행으로 뉴욕의 캐리 집 앞으로 가서 인증도 찍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캐리처럼 힐을 신고 지하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거릴 양이면 허리와 무릎이 얼마나 혹사당할지 안다. 파티마다 술을 그렇게 먹으면 위장에 문제가 될 것을 안다. 이 내 몸을 오래 쓰기 위해서는 꼭 필요할 때만 힐을 신고 평상시에는 운동화를 신을 지어다. 또한 파티에서도 적당히 술을 조절하며 마셔야 할 것이다.


10대에는 30살 이후에도 살아있을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으나 지금 나는 눈 부릅뜨고 기능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수십 년을 늙어가는 몸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40대 50대 60대 70대의 모습을 상상하게 되었다.


지금은 그레이스 앤 프랭키를 보며 노년의 나를 꿈꾼다. 이 드라마는 70대 할머니 둘이 각각의 남편들이 사랑에 빠져서 졸혼할 것이라고 폭탄선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졸지에 같이 살게 된 70대 두 할머니의 삶을 다룬다.


그레이스는 깍쟁이 할머니로 젊은 시절처럼 여전히 까칠하고 허리가 아파 고생하지만 사업체를 운영할 정도로 활력이 넘친다. 프랭키는 히피 할머니로 괴짜 같은 면이 있지만  그 나이에도 멜빵바지를 입고 양갈래 머리를 땋은 채로 그림을 그린다.


나도 늙고 병들겠지만 40년 후에도 살아있다면 어떤 모습이 좋을지 그려본다. 기왕이 재밌고 옷 잘 입는 할머니라면 좋겠다.


Life goes on. 삶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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