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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미의 colorful life Sep 30. 2021

무알콜 맥주는 변절자인가

혼술, 내 인생을 망치러온 구원자(2)

혼자 마시기엔 화려한 칵테일


일상의 시름을 잊게 하는 맥주, 미각을 충족시키지만 혼자 먹기에는 많고 비싼 와인을 지나 칵테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바로 친구 몇몇과 함께 칵테일 학원을 등록했다. 학원 좀비의 취미생활은 자격증 도전이나 학원 등록으로 귀결된다.


서른 살의 겨울은 술로 점철되었다. 칵테일의 베이스가 되는 술에 대해서 배우고 다양한 리퀴르에 대해서 알아나갔다. 집에는 차곡차곡 사 모은 술들이 쌓였다. 주말에 3시간 동안 술을 배우면서 만든 술을 마셨다. 칵테일은 몹시 맛있었지만 집까지 가는 버스까지는 걸어가야 했으므로 모든 술을 마시지는 못했는데 버리는 술이 아까웠다. 우리는 텀블러를 2~3개 마련했다. 그야말로 철저한 준비성이었다. 이상한데서 야무졌다.


나는 조주기능사 자격증을 준비했다. 자격증 시험은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으로 구성되어 있다. 술이 만들어지는 원리 등 술에 대한 지식을 테스트하는 필기시험을 합격하고 33개 레시피를 외워서 실기시험을 보았다.


실기 시험은 3개의 칵테일 만들기가 랜덤으로 제시되고 시험관들 앞에서 외운 레시피로 정확한 용량으로 칵테일을 만들어 내야 한다. 단정한 옷을 챙겨입고 희미한 기억력에 기대 시험관에게 칵테일을 대접했다.


합격했다. 커리어와는 하등 관련 없는 자격증이었으나 묘하게 기뻤다. 우리 3명 중 자격증을 준비하고 합격한 사람은 나 하나였다. 학원 좀비의 광기였다.


그 이후에도 집에서 종종 혼술로 칵테일을 만들어 먹었다는 후일담이면 좋겠지만 칵테일은 혼자 만들어 먹기에는 재료가 다양하고 손이 많이 갔다. 혼자 마시기에는 화려했다. 내 칵테일 도구들은 주방 찬장의 가장 안쪽으로 점점 이동했다. 그때 학원을 함께 다닌 우리들은 칵테일이 마시고 싶으면 사 마신다. 남이 만든 칵테일이 최고시다.





성공의 상징, 위스키 


위스키를 마시는 나는 20대에 상상해보지 못했다. 위스키는 누아르 영화에 나오는 회장님이 호텔에서 흰 목욕 가운을 입고 슬리퍼를 신고 찰랑찰랑 마실 것 같은 술로 느껴졌다.


세계의 경제현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상대편 보스를 죽이니 많이 하는 결정을 할 때 마셔야 할 술처럼 느껴졌다. 마피아나 CEO는 되어 본 적이 없으므로 다른 술보다는 늦게 위스키를 접하게 되었다. 면세점 찬스로 우연히 위스키를 접하고 위스키야 말로 혼자 먹기 적합한 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위스키는 한 번 따면 수 일 내에 마셔야 하는 와인과 달리 오래 마실 수 있다. 그래서 나 같은 주량이 미약하여 아껴마셔야 하는 자들에게도 좋은 술이다.


위스키는 비싸지만 얼음과 함께 먹는다면 생각보다 오래 마실 수 있다. 매일 먹지 않고 혼자 조금씩 마신다면 생각보다 저렴한 술일 수 있다. 게다가 도수가 높으므로 많이 마시지 않아도 쉽게 취기가 오른다.  


위스키는 몸에 열이 오르게 하기 때문에 추운 겨울에 적당하다. 러시아 같은 웃지방에서 왜 위스키와 같은 독주를 마시는지 알게 되었다. 자기 전 위스키를 한 잔 마시면 몸이 따뜻해지면서 쉬이 숙면에 들 수 있다.


더군다나 온 더 락으로 마시면 성공한 삶인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취할 수 있다. 착각일 지라도 그런 느낌, 느낌들은 소중하다.


나의 위스키 사랑은 한 선배의 이야기에 잦아들었다. 선배는 나처럼 겨우 내내 위스키를 자기 전에 마셨고 자가 진단으로는 위스키 때문에 단기 기억 상실증이 온 것 같다고 했다. 최근에 있었던 일들이 잘 기억이 안 난단다.


그렇다. 이제는 술을 마시고 싶어도 건강 때문에 술을 마시지 못하는 날들이 늘어났다. 나이가 들고 잔병이 생기면서 내 몸도 예전과 달리 술을 거부했다. 의사 선생님은 술을 끊으라고 권고했다.




혼술의 종착점, 무알콜 맥주 


변절자인가, 새로운 트렌드인가. 무알콜 맥주를 처음 접했을 때는 변절자라고 생각했다. 무알콜 + 맥주라는 단어의 조합이라니.


이는 내가 콩고기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와 비슷했다. 콩고기는 고기가 아니다. 무알콜 맥주는 맥주가 아니다. 제로콜라는 콜라가 아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꽤나 단호했다.


하지만 여러 무알콜 맥주를 시도하고 마지막으로 칭다오 무알콜 맥주를 만난 순간 단호박이던 마음이 풀어졌다. 무알콜 맥주는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에게 너무나 좋은 옵션이었다. 비슷한 맛으로 정신적인 해방감을 주는데 건강에는 해롭지 않았다. 나는 무알콜 맥주 예찬론자가 되었다.


어릴 때는 명확하던 의견이 나이가 들면서 점점 흐릿해진다. 물에 술탄 듯 술에 물 탄 듯 무알콜 맥주처럼 흐릿해지는 변화가 나쁘지 않다. 무알콜 맥주도 술이다. 콩고기도 고기다. 제로콜라도 콜라다. 요즘은 셋 다 먹고 마시고 뜯고 즐긴다.





헤밍웨이는 말했다. 나는 건강이 나빠지면 술을 끊을 수 있다오.


헤밍웨이였던 것 같다. 늘 건강을 신경 쓰며 몸에 좋지 않은 술, 담배 등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헤밍웨이가 말했다.


"늘 금주하고 금연하던 자네들은 건강이 나빠져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지만 나는 건강이 나빠지면 술, 담배를 끊을 수 있다오."


논리적이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논리적인 헤밍웨이다운 호쾌한 이야기이다. 혼술에 대한 죄책감이 생길 때면 세계적인 작가의 이 이야기를 가슴에 새기며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마실 수 있는 만큼 마시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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