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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미의 colorful life Sep 22. 2021

행복은 겨드랑이 사이에 있어

임시 보호한 고양이 뚱이에 대해서(1)

혼자 살기 시작한 지도 벌써 십수 년, 외로움은 삶이라는 칵테일의 베이스가 되는 술처럼 깔려 있다. 그래서 반려동물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지도 꽤 오랜 세월이 지났다. 하지만 외롭다는 이유로 덜컥 입양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가족을 입양하는 것처럼 신중해야 한다. 우선 어떤 종류의 반려동물이 좋을지 궁리하게 되었다.



강아지 or 고양이


우선 강아지나 고양이가 좋을 것 같았다. 귀여우니까. 그런데 강아지를 키우는 내 모습은 쉽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친구네 집에서 만난 강아지는 사랑스러웠지만 하루 종일 주인을 쫒아다니며 관심을 갈구했기 때문이다. 내 소박한 에너지로는 에너지 덩어리인 강아지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 하루에 최소 한 시간은 산책을 시켜줘야 한다고 들었다. 짧은 거리도 걷기 싫어서 엘리베이터나 택시, 자차 등 문명의 이기를 적극 활용하는 라이프스타일에는 어려운 선택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고양이는 어떤가? 주변에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은 많지 않아서 물어볼 때가 마땅치 않았다. 또한 혼자 살며 고양이를 키우는 비혼 여성들의 이미지를 알기에 꺼려졌다. 외롭다 외롭다 못해 고양이에게 의지하게 된 남자친구가 없는 패배한 여성이랄까. 맞다. 나란 인간은 편견으로 가득 차 있다. '나 홀로 집에'의 비둘기 아주머니 같은 이미지. 미디어에서 만들어낸 혼자 사는 여자의 비참한 이미지에는 꼭 고양이가 함께 하지 않는가. 하지만 무지에서 비롯된 나의 선입견을 깰 정도로 모니터로 본 고양이는 꽤나 귀여웠다.



고양이 찾아 삼만리


무엇을 사는 데는 행동력 갑이므로 근처 펫샵을 방문했다. 손바닥 만한 아기 고양이를 여러 마리 보여줬는데 가격이 비쌌고 어떤 고양이를 사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안아보라며 가슴에 안겨준 고양이가 손가락을 깨물었다.


다음날은 브리더 샵에 갔다. 아기 고양이의 엄마 아빠가 이곳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혈통 있는 고양이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외모가 귀엽고 건강한 고양이 임을 강조했다. 펫 샵보다는 더 외모가 출중했지만 가격이 더 비쌌다.


왠지 덜컥 반려동물을 들이기가 겁이 나서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고양이 카페에 가입하여 남의 집 고양이들을 보고 미소 짓는 날들이 이어졌다.



사지 마세요. 입양하세요.


그러던 중 포인핸드라는 어플을 알게 되었다.


- 사지 마세요. 입양하세요.


여러 가지 이유로 또는 이유 없이 버려진 반려동물을 구조하고 입양하는 어플이었다. '임시보호', 줄여서 '임보'라는 용어도 알게 되었다. 동물보호소에서 구조하여 정식으로 입양되기 전에 임시로 보호하면서 건강을 회복시키고 사회화를 돕는 봉사활동인데 고양이와 함께 동거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나에게 좋은 기회 같았다. 실제로 함께 살다 보면 내가 나를 키우는 것을 넘어 동물을 키울 수 있는 깜냥이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선의로 가득 찬 세계


포인 핸드에서 몇 날 며칠을 잠복하며 귀여운 고양이가 나타나길 바랬다. 인천 어딘가에 위치한 보호소의 고양이가 내 눈에 들어왔다.


- 나이 : 1살 정도 된 한국 고양이

- 특징 : 고양이 집 채로 버려졌고, 매우 온순합니다


어딘지 모르게 겁먹은 듯한 두 눈이 나를 사로잡았다. 얼굴이 몹시 작고 이뻤다. 구조자가 댓글을 달았고 임보자를 구한다고 적혀 있었다.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며 이 고양이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구조자에게 연락을 취했다.


구조자는 전화로 어디에 사는지 등 몇 가지 질문을 하더니 본인은 평일에 시간이 없어 이동 봉사자가 인천 저 멀리 있는 고양이를 우리 집까지 옮겨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고양이 한 마리를 구하기 위해 벌써 2명의 사람이 마음을 쓰고 있었다. 전혀 알지 못했던 세계인데 그 세계는 선의로 가득 차 있었다.


다소 격양되어 이미 임보를 하겠다고 선 결정을 내리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몰라 후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고양이를 키운 경험이 있는 사촌언니에게 전화했더니 네가 어떻게 고양이를 키울 수 있겠느냐. 수컷인지 암컷인지는 알아봤냐? 혹시 아픈 데가 있는지? 나이는? 고양이에 대해서 물어보았는데 놀랍게도 아는 게 전혀 없었다. 뒤늦게 걱정을 하는 사이 고양이는 벌써 아파트 주차장으로 도착했다.



첫눈에 반한다는 게 이런 걸까?


구조자와 인사를 하고 이동장 속의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이동장 틀 사이로 손가락을 내밀었더니 코를 들이대며 인사를 했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첫눈에 반한다는 게 이런 걸까. 이성 간에도 첫눈에 반한다는 표현을 믿지 않는데 고양이를 본 순간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도 같았다. 고양이는 거리낌이 하나도 없었다. 마치 한 번도 상처 받아 본 적 없다는 듯 무해한 얼굴이었다. 보호소의 설명마따나 '매우 온순'했다. 구조자가 우리 집에 이동장을 내려놓자마자 자기 집에 온 듯 유유자적하게 걸으며 집을 구경했다. 사진에서 본 작은 얼굴에 비해 몸은 컸다. 펫 샵과 브리더 샵의 혈통 좋은 고양이보다 뚱이가 훨씬 귀여웠다. 1살 남짓인데 5kg로 뚱뚱한 편인데 살찐 것도 귀여워서 보자마자 뚱이라고 지었다.



육묘의 시작


뚱이와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육아를 처음 시작하는 부모처럼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아침이면 눈 뜨기 전에 뚱이의 화장실에서 감자를 꺼내 내 아침 식사는 못해도 사료를 채우고 물컵을 채웠다. 짧은 스트릿 생활로 결막염이 있기 때문에 무방비상태의 뚱이를 무릎에 끼우고 눈꺼풀을 벌려 안약을 넣는 스킬을 연마하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면 이런 기분일까. 회사에 가서도 집에 잘 있는지 밥은 잘 먹는지 걱정이 되었다. 팻캠 시장이 커졌다고 하던데 왜 커졌는지 알 것 같았다. 워킹맘이 회사에서 어떤 기분일지도 과장 좀 보태 알 것 같았다.


고양이와 노는 법도 익히게 되었다. 고양이는 사냥을 하던 습성이 있어서 사냥놀이를 좋아한다. 깃털이 달린 기다란 막대기를 뚱이가 보이게 했다가 안 보이게 하면 신이 나서 소파로 거실로 뛰었다. 놀이에 임하는 표정이 사뭇 진지해서 덩달아 진지한 무브먼트를 연구하게 되었다. 예측 불가하 창의적이어야 했다.


츄르와 캣닢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츄르는 일종의 생선 퓌레인데 츄르 냄새만 맡아도 흥분을 했고 츄르를 대접하는 사람은 최애로 등극할 수 있었다. 캣닢은 밀싹 등으로 된 식물의 잎인데 고양이가 환장하는 향이 있다. 캣을 방바닥에 뿌리면 대마초를 하는 것처럼 배를 뒤집고 등으로 캣닢을 바르며 좋아했다.


아이에게 좋은 장난감과 훌륭한 교육을 제공하고 싶은 부모의 맘이 이런 걸까? 나는 고양이에 대한 수의사 유튜브를 탐독하며 고양이에 대해 알아 나갔다.


'고양이가 당신을 좋아할 때 하는 행동 7가지'  

'고양이 모래의 종류와 특징'


장난감을 사다 날랐으나 인간의 육아도 그러하듯 좋은 장난감이라고 좋아하는 법이 없었으며 늘 가지고 놀던 낡은 깃털 장난감을 제일 좋아했다.


물을 싫어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집에 온 지 일주일이 되어 뚱이 목욕을 시켰는데 코 앞에 츄르를 들이대도 입에 대지도 않고 요리조리 몸을 피했다. 안쓰러웠지만 너무 귀여웠다. 목욕 후 뚱이는 길거리의 때를 벗고 뽀얘져서 외모가 더 출출해졌다. 이렇게 빛나는 미모의 고양이는 세상에 몇 없을 것이다. 나는 내가 이렇게 급하게 사랑에 빠지는 급사빠인지 처음 알았다.



너는 나의 사랑


5kg 남짓 귀여운 생명체는 내 생활을 급속도로 바꾸고 있었다. 뚱이는 금방 우리 집에 적응했으며 나를 졸졸 쫓아다녔다. 회사-집-회사-집을 반복하며 웃을 일 없던 삶의 빈틈은 뚱이로 완전해졌다. 회사에서 돌아오면 배를 까 뒤집으며 애교를 부렸다. 귀가를 이렇게 반기는 생명체라니. 부모님도 내 귀가를 이렇게 반겨준 적은 없었다.


거의 퇴근하고 3시간은 모든 곳을 쫓아다닌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핸드백을 내려놓고 아침 점심은 얼마나 잘 먹었는지 체크를 하는 중에도 뚱이는 다리 사이를 8자로 돌아다니며 자기의 체취를 내 몸에 묻혔다. 노트북 작업을 한다고 자신을 바라봐 주지 않으면 노트북 위로 따뜻한 엉덩이를 내밀며 노트북을 못하게 막았다. 요가를 하고 있으면 요가 매트에 같이 올라왔다.


요리를 하고 있으면 싱크대에 깡총하고 올라와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식사를 하고 있으면 소시지를 훔쳐먹으려고 앞발을 뻗었다. '떽'하며 안아서 바닥에 내려놓으면 언제 도둑질을 하려고 했냐는 듯 모르는 척을 했다. 이런 앙증스러운 능청이라니.


화장실에 가 있으면 화장실 문 앞에서 피융 피융 하고 울었다. 왜 그러는지 유튜브로 검색해보았더니 고양이에게 물이란 위험한 물질이기 때문에 주인이 물 근처로 갔다는 것을 위험한 상황에 놓인 것이라 불안해져서 라는 것이다. 이 사랑스러운 생명체 때문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순도 100%의 행복감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퇴근 후 식사나 샤워 등 모든 정비를 마치고 고요하게 소파에서 같이 TV를 보는 시간이었다. 극세사를 좋아하는 뚱이는 극세사 잠옷을 입은 나를 좋아했다. 꾹꾹이를 하며 골골 송을 부르다가 어느덧 겨드랑이 사이에 몸을 밀어 넣고 잠이 들었다. 행복이 멀리 있지 않았다. 행복은 겨드랑이 사이에 있었다. 처음으로 완전하게 행복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말 못 하는 짐승과의 교감으로 이런 기분을 느끼다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백 퍼센트의 행복감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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