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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미의 colorful life Sep 29. 2021

1인 가구에 가장 어울리는 술은?

혼술, 내 인생을 망치러온 구원자(1)

혼술은 본격적으로 혼자 살기 시작한 30대 초반부터 작했다. 그전에 학교 기숙사 회사 사택에서 친구 또는 회사 동료와 살면서는 혼술 거의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혹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모습이 발각된다면 왜 술을 마는지 타당한 이유를 설명해야 할 것만 같은 충동에 휩싸여서다. 물어보지 않아도 설명해야 할 것만 같다. 구차한 변명을 하고 싶어 진다. 혼술에 대한 근원적 죄책감이랄까. 이유가 없다면 이유를 만들어 내야 할 것 같다.


사실 술은 사실 '그냥' 마시는 거다. 함께하는 술이든 혼자 하는 술이든 이유는 같다. '그냥'이라는 2글자에 이유가 다 담겨있다.


차이가 있다면 함께하는 술은 술자리의 참석자들의 술자리의 의미를 부여하고 공유하지만, 혼자 하는 술은 내가 술자리의 주최자이자 참석자인 것뿐. 기분이 좋아서 마시고, 안 좋아서 마시고, 술이 당겨서 먹는데 남들을 이해시킬 만한 어떤 명분은 없다. 없어도 된다.  


그렇다면 다년 한 혼술 한 사람으로서 1인 가구에게 가장 어울리는 술은 무엇일까. 주종을 선택할 때에는 그날의 온도와 습도와 느낌적인 느낌이 중요하다. 느낌적느낌에 대해서 설명해 보려고 한다.





여름 낮의 맥주


한여름의 토요일 낮의 맥주를 좋아한다. 즐겁지만 피곤하지 않은 금요일을 보내고 아침 10시 정도 일어났으면 좋겠다. 핸드폰도 좀 보고 이불 안에서 꾸물거리다가 세탁기를 돌린다. 색깔 있는 옷 한번, 하얀 옷 한번. 세탁기에서 들리는 리드미컬한 소음이 점점 잠을 깨운다. 침대 밖으로 나서게 한다.  


평일 동안은 먹고살기 바빠 요리를 할 시간이 없었지만 토요일 점심은 간단한 요리를 한다. 냉장고에는 주말을 위한 요리 재료가 마련되어 있다. 평일의 1인 가구 가장이 마켓 컬리나 SSG을 통해 주말의 1인 가구 가구원을 위해 미리 주문한 준비물이다.


평일의 나에게 Cheers!

메뉴는 달걀옷을 입은 프렌치토스트도 좋고, 토마토 계란 볶음도 좋다. 연어 스테이크도 좋을 것 같고 기름 진 소고기도 좋을 것 같다. 요리하기 간단하면서도 소화하기 더부룩할 정도로 헤비 하지 않은 것이 좋겠다.


좋아하는 팟캐스트나 최신 가요를 튼다. 세탁기는 여전히 경쾌한 소리를 내며 열 일 중이다. 냉장고에서 차가운 맥주를 꺼내고 미리 준비한 식재료를 하나 둘 꺼낸다. 프라이팬이 서서히  달궈지는 동안 맥주를 한 모금 두 모금 마신다. 시원한 맥주가 주는 흥에 취해 요리는 금방 끝난다. 


완성된 식사를 식탁 위에 올린다. 이미 맥주 한 캔으로 기분 좋게 취해 있다. 주말이다. 밥을 먹고 알딸딸한 기분으로 설거지를 한다. 빨래를 넌다. 낮잠을 살짝 자고 샤워를 하고 저녁 약속을 위해 외출한다. 상상할 수 있는 주말과 맥주의 가장 좋은 조합이다. 


한여름 밤의 맥주



한여름의 평일 저녁 퇴근 후의 맥주도 좋아한다. 고단한 회사일을 마치고 귀가한다. 마약중독자처럼 손을 떨며 냉장실 맥주를 꺼내 냉동실로 옮긴다. 봄가을은 매일 샤워를 하진 않지만 한여름에는 꼭 샤워를 하게 된다.


슬랙스. 블라우스. 회사 옷을 벗어던지고 샤워를 한다. 해결하지 못한 업무 스트레스 물에 씻겨 내려간다. 편한 잠옷으로 갈아입고 나와 시원해진 맥주를 냉동실에서 꺼내서 입으로 툭툭 털어 넣는다. 복잡했던 머릿속이 하얗게 정리되는 것도 같다.





달콤하지만 위험한 와인


언젠가 와인 공부에 푹 빠진 적이 있었다. 포도의 종류와 와인의 원산지, 와인에 얽힌 역사까지 공부하면서 와인에 대한 열정을 쌓아 나갔다.


와인은 여러 가지 풍부한 맛으로 미각을 사로잡았다. 술 중에서맛의 스펙트럼이 다양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평균 도수가 15도 정도술이 약한 사람을 쓰러뜨리기에 충분한 도수이다. 게다가 달콤한 맛으로 홀짝홀짝 마시다 보면 취하기 딱 좋다.

혼자 와인을 따서 마시다가 갑자기 술에 취해 쓰러졌다. 새벽 2~3시경 밝게 켜 놓은 조명에 눈이 부셔 눈을 떴다. 와인병 옆에 마취총 맞은 돼지처럼 갑작스럽게 술에 취해 몸을 구기고 누워 있었다. 새우처럼 몸을 웅크리고 자는 것도 아니고 고장 난 관절 인형처럼 관절을 여기저기 구부린 채로 였다. '이대로 멈추라'였다. 온몸이 쑤셨다, 현실 타격이 왔다. 와인은 달콤하지만 위험했다.


와인은 한번 따면 수일 내에 다 마셔야 한다. 입구를 마개로 잘 막아두어도 맛이 빠른 속도로 변한다. 하지만 혼삶러는 연속적으로 와인을 마실 수 있는 시간적 심적 여유가 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와인을 딴 첫날의 혼술은 선택이나, 남은 와인을 마시는 것은 의무이다. 남은 와인으로 요리를 하고 반신욕을 하고 주방 청소를 하는 등 마시는 것 외의 다용도에 대해서 연구하다 보면 혼자서 와인 완병을 하는 것은 좀 어려울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와인은 상대적으로 비싸다. 외국생활 한 친구들은 어김없이 이야기한다. 한국의 와인은 너무 비싸다고. 마트에서 와인을 사지 않는 한 레스토랑에서 와인은 시키기 좀 부담스러운 가격이기도 한다.


혼자 사는 친구 집을 방문했는데 한 방의 테두리가 와인바처럼 빈병으로 2~3줄 둘러싸여 있었다. 놀란 눈을 하고 네가 다 먹은 거냐고 물어보았다.


친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인생의 진리를 다 깨달은 표정으로 와인은 시작도 하지 말란다. 지갑도 건강도 잃었다며 비추천을 추천했다. 와인은 매력적이지만 위험하다. 한 병을 앉은자리에서 다 마실 수 있는 주당이 아니라면 혼술으로는 와인을 추천하지 않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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