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미의 colorful life Sep 23. 2021

고양이를 키울 깜냥이 되지 않아

임시보호한 고양이 뚱이에 대해서(2)

너는 우리의 사랑


같은 부모님 슬하에서 비슷한 유년시절을 보낸 동생도 반려동물에 대한 경험이 없었다. 기껏해야 망치, 뭉치, 몽치, 해머라는 햄스터를 키운 게 전부인데 뭉치와 몽치는 도망가고 망치는 해머를 물어 죽이면서 유년시절의 반려동물에 대한 기억은 다소 잔인하게 끝이 났다. 하지만 제부가 동물을 몹시 좋아했기 때문에 임보 소식을 듣고 둘은 우리 집을 헐레벌떡 방문했다. 그리고 이내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뚱이는 원래 아는 사람인 냥 제부와 동생 주변을 맴돌면서 제부 허벅지에 기대어서 잤다. 제부는 행여나 잠을 깨울까 다리를 움직이지도 못하는 채로 희열에 젖어 웃음이 만개했다. 나처럼 고양이에 대한 어떤 추억도 없는 동생도 미모와 애교를 겸비한 뚱이에게 매료되어 연신 털을 쓰다듬었다. 뚱이는 반려동물 Level 0인 사람도 편히 접근할 만큼 세상에 잘 없는 개냥이였다. 제부와 동생은 매주 우리 집에 츄르를 들고 놀러 왔으며 집에 놀러 오지 못하는 날이면 영상통화를 시도했다. 조카가 있으면 이렇게 할까. 그야말로 사랑이 꽃피었다.


친구들도 물론 뚱이와 사랑에 빠졌다. 안으면 안는 대로 그대로 안겨있는 순딩이 고양이에게 빠지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친구 중 하나는 부모님과 입양을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우리, 가족이 될 수 있을까?

입양을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입양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다수의 독립적인 고양이와는 달리 뚱이는 사랑이 많은 아이였다. 많은 관심을 갈구했다. 넷이서 재밌게 놀다가 워를 하러 갔다. 10분 남짓 후 안방으로 돌아왔는데 동생과 제부의 표정이 몹시 안 좋았다. 슬퍼 보였다. 제부는 동영상을 보여 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사라지자 명랑하던 뚱이는 화장실 문 앞에서 구슬프게 울면서 10분 동안 문 앞에서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고 한다. 불러서 품에 앉으려고 해도 꿈쩍도 안 했다고 한다.


- 이래서 반려동물은 못 기르겠어. 마음 아파서.


나는 뚱이가 원하는 정도의 사랑과 관심을 줄 수 없었다. 평일에 5일은 근무를 해야 했고 월말 월초에는 야근을 해야 했다. 코시국이라 해외여행을 하지는 않았지만 주말이나 연휴에는 종종 작은 여행을 떠났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1박 2일 정도의 여행은 괜찮다고 했지만 걱정이 되어 집을 비울 수 없었다.  



멈추지 않는 기침


임시보호를 하는 중에 뚱이가 아팠다. 작은 기침으로 시작했는데 하루 이틀이 지나니 몸이 크게 움직일 정도로 크게 앓는 소리를 했고 늦은 밤이었다. 거의 패닉 상태가 되어 구조자에게 전화했으나 전화를 꺼져 있었다. 꺼져있는 전화기에 몇 십통 전화를 하다가 나는 기침하는 뚱이을 안고 오열을 했다. 뚱이가 잘못될까 봐 몸이 덜덜 떨렸다. 고양이 카페에서 임시보호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던 강원도에 사는 한 구조자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었다. 무작정 전화번호를 눌렀고 다행히 전화를 받았다.


- 예전에 임시 보호하려고 전화드렸었는데 이후에 임시보호를 했는데 냥이가 기침을 심하게 해서요. 병원에 데려가고 싶은데 집에 이동장이 없고 구조자는 연락이 안 되는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구조자는 한밤중에 꺼이꺼이 울며 두서없이 하는 말을 친절하게 들어주었고, 안되면 종이상자에 담아서 가는 방법도 있다며 알려주었다. 구조자는 계속 연락이 닿질 않았고 평소 방문하던 동물병원이 없었기에 검색창에 '동물 야간진료 병원' 등의 검색어를 치며 종이상자를 찾던 찰나 구조자 연락이 닿았다.


고양이를 구조한 경험이 많은 구조자는 기침하는 동영상을 보더니 심한 병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며 고양이는 병원 가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라서 왠만하면 안가는 것이 좋다고 했다. 날이 밝아도 상태가 안 좋으면 같이 병원을 가겠노라고 이야기했다. 뚱이가 늙고 병들었는데 집에서 뚱이를 간호해줄 동거자가 없는 상황을 견딜 수 있을까. 인정해야 했다. 나는 반려동물을 키울 깜냥이 되지 않았다.



너의 가족을 찾아


구조자는 결막염과 감기가 잦아들자 입양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뚱이가 늘 집에 사람이 있고 사랑이 많은 집으로 가기를 소망했다. 구조자의 까다로운 전화 면접을 통과한 사람만 오프라인 면접을 볼 수 있었다.


첫 번째 후보자는 지방혼자 사는 40대 골드미스 연구원이었다. 단정한 외모에 여성스러운 분이었다. 100km 넘게 운전해 뚱이를 지켜보던 후보자는 작년에 하늘나라로 간 자신의 반려묘와 뚱이가 닮은 줄 알았는데 그리 닮지 않았다며 뚱이 앞에서 자신의 반려묘의 모습을 찾았다. 경제력이나 생활의 안정은 있어 보였지만 사랑스러운 뚱이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다른 고양이를 찾는 모습이 아쉬웠다.


두 번째 후보자는 경기도에 사는 20대 중반의 미혼 여자 직장인으로 은퇴한 아버지 어머니가 늘 집에 계시다고 했다. 어머니와 딸이 집을 방문했는데 뚱이는 푼수 같게도 그들을 매우 반겼다고 한다. 이후에 구조자가 다소 비만인 뚱이를 위해 처방한 사료와 캣타워를 사고서 그들은 뚱이를 가족으로 맞이하게 되었다. 구조자는 뚱이가 입양되고 이후 가정방문을 통해 뚱이의 안녕을 확인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여전히 너를 생각한단다


구조자로부터 며칠 후 입양을 간 뚱이의 사진을 전해받았다. 창 밖의 나무가 보이는 1층의 단정한 아파트처럼 보였다. 예의 걱정 없는 뒷모습으로 뚱이는 바깥을 구경하고 있었다. 뒤통수가 통통하니 귀여웠다. 뒤통수까지 귀여운 생명체라니. 슬몃 눈물이 나는 것도 같았지만 뚱이가 나보다는 경기도의 세 가족과 더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유튜브에서 무늬가 비슷한 코리안 숏헤어만 봐도 가슴이 뛴다. 혈통이니 뭐니 이 고양이 저 고양이 찾아대던 나는 이제 이 세상의 모든 고양이를 사랑하게 되었다. 길에서 길냥이를 보면 걸음을 멈추고 자세를 낮춘 후 코인사를 한다.


뚱아, 일 년이 훌쩍 더 지난 지금에도 우리가 함께 했던 한 달을 생각한단다. 너의 사진을 찾아보고 너의 동영상을 보고 미소 짓곤 해. 내 친구들도 내 동생 내외와도 가끔 니 이야기를 한단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사랑을 알려주어 맙다.



이전 11화 행복은 겨드랑이 사이에 있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