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요즘 정치 이야기 하면 큰일 나!" 명절에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과의 자리에서 나온 말이다. 정치 이야기를 할 수밖에 만드는 요즘이어서 그런지 의도가 없었음에도 자연스럽게 나오는 정치 토픽에 경계하는 의도가 느껴졌다. 짐작했겠지만, 정치 토픽은 케이크에 붙이는 성냥불과 같은 모양새로 빠르게 휘발됐다.
1. 정치 이야기를 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글쎄, 나 자신도 피하고 있으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고민을 해보니... 아무래도 진리와 같은 답이 있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상호 간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가장 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즉, 정치 이야기를 건전한 토론과 논의가 아닌 갈등과 대립으로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2. 그도 그럴 것이, 요즘은 하나의 문제를 가지고 건전한 토론과 논의를 하고자 하면 하나의 논제에서 파생된 여러 가지 문제를 가지고 와서 퇴적(?)한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예를 들어 '감자밭에 감자가 안 자라난다.'는 문제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면, 토론 당사자는 감자와 관련된 문제가 아닌 '감자밭의 소유주는 사실 회사원이다.'라는 부분적인 문제를 가져오고, 그 이야기를 들은 반대 진영에서 '회사에서 근검성실하게 일하고 있다.'는 답을 내면, '실소유주가 사실 회사에서 탕비실 물품을 훔쳤더라.'같은 새로운 문제를 가져와 옳고 그름을 따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느샌가 감자밭에 감자가 안 자라는 이유는 이야기하지 않고, 감자밭 실소유주의 윤리의식에 대한 이야기만 오고 가는 것이다.
3. 대중 입장에서는 감자가 안 자라는 이유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대중은 어렵고 복잡한 국가의 인과적 상황과 문제에 대해 깊게 탐구할 여력도 없거니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를 가지고 여론을 가져오고 싶은 이들은 아주 직관적이고 단순한 문제를 제시해서 대중의 관심을 끈다. 그리고 이 직관적이고 단순한 문제는, 도덕관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판단할 수밖에 없는 주제로 이루어진다.
4. 물론, 이와 같이 어느 특정 인물의 윤리적 문제를 가지고 논쟁이 벌어지는 건 낯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작금의 대한민국은 단순화된 문제 판단이 고도화되어 이념의 차이로까지 나뉘고 있다. 요즘 분위기는 마치... '너 N 찍 이야? 꺼져.'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서로의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더 이상의 논의를 할 의지 자체를 잃는다. 이건 확실히 잘못 돼 가고 있는 상황인 것 같다.
5. '정치'는 바를 정에 다스릴 치, 즉, 바르게 고치다, 바르게 다스리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바르다는 건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바름'은, 감자밭에서 감자가 왜 안 나는지에 대해 본인의 생각과 타인의 생각을 안전하게 교류하고, 각자의 생각에서 좋은 점을 쏙쏙 빼서 더 합리적이고, 생산적이며, 건전한 답을 이끌어내는 것에 뜻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정치를 하고 있는가? 대한민국 정치인들 말고, 대한민국 국민들도 정치의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이 상황에서 우리는 정치를 하고 있는가... 글쎄, 일단 나는 아니다.
6. 나는 솔직히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봐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물론, 무엇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개인의 생각은 가지고 있다). 좌파의 입장도 이해되고, 우파의 입장도 이해된다. 그러나, 감자밭 실소유주의 윤리적 문제엔 관심이 없다. 감자밭 실소유주가 탕비실 물품을 훔친게 진짜 문제인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그리고 북한과 일본 사이에서, 나아가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경제 위기, 그리고 그 상황을 타계해야 하는 상황이 더 문제가 아닌가?... 그런 이야기를 논리 정연하게 꺼내지도 못하고, 꺼낸다고 해도 변하는 게 없다는 걸 알아버린 소극적인 나는 정치에 관심을 안 가지기로 했다.
7. 정치에 참여해야 하는 한 명의 성인이자, 대한민국 시민으로서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말은 참으로 부끄러운 선언이다. 이 선언이 부끄러워서 요즘 마음에 품고 있던 정치 이야기를 썼다. 감자밭에서 감자가 안 자라나는 이유에 대해서 박 터지게 싸우는 대한민국으로 돌아왔으면 하는 마음에서.
8. 마무리가 근데 어쩌라고? 싶긴하지만 말이다. 그렇다. 원래 정치 이야기가 '근데 어쩌라고?'로 끝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