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무서운 건 오늘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내일도 오는 것이요, 분명 한 달 뒤에도, 몇 년이 흘러도 나를 찾아올 것이다. 두 번째로 무서운 건 무엇이 나에게 찾아올지 몸서리치게 잘 안다는 사실이다.
새벽 다섯 시 삼십 분. 날카로운 소리가 내 귀에 걸터앉아 있었고, 녀석은 제 몸을 비비고 있었다. 그것은 절대로 움직이게 하지 못할 것 같았던 두 눈을 띄우게 했다. 아마 녀석이 현존하는 것이었다면 내 귀는 쓸린 상처가 잔뜩 나서 피를 머금고 있었겠지. 그것은 분명 와인을 담은 유리잔의 모습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눈은 다시 감겼다. 다섯 시 오십 분. 가슴을 관통하는 듯 무언가 찌릿한 느낌이 든 순간 나도 모르게 이불을 박찼다. 드디어 사태파악이 된 나는 세수도 건너뛴 채 손에 잡힌 청바지를 허겁지겁 입기 시작했다. 바지는 무릎과 엉덩이 쪽이 빛이 바랬고, 먼지를 가득 머금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원단의 견고함 덕분일까, 약한 모습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일곱 시. 노란 스틱의 커피 믹스를 종이컵에 담았다. 생수통 정수기의 뜨거운 물을 받는다. 둔탁하게 내리는 뜨거운 물줄기의 방울 하나가 종이컵을 쥔 손의 엄지손가락에 튀었다. 물방울이 튀어 안착한 손가락의 피부는 빨갛게 부어올랐다. 거꾸로 매단 생수통의 검은 심연 아래서 크고 작은 방울들이 생수통 속 물 위에 떠 오르고 있었다. 나는 뜨거운 물방울 때문에 생긴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떠오르는 물방울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생수통의 방울이 표면에서 터져 자신의 흔적을 사라지게 했을 때, 이름만 사무실인 컨테이너는 순간 고요해졌다. 그저 낡은 시계의 시침이 째깍대는 소리만이 이곳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러기를 잠시, 현장에서 오늘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레일의 엔진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아, 가자. 그래가야지.
나는 택배기사다.
거대한 레일 현장은 흡사 오징어를 분류하는 오징어잡이 배의 모습처럼 생겼다. 크고 작은, 가볍고 무거운 택배들의 행진. 오늘은 재수 없게도 큰 물건들이 내 구역의 물건으로 배정되었다. 이러면 개수대로 돈을 받는 나로선 좋은 상황이 아니다. 나는 차 안에 촘촘히 가득 쌓인 물량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루의 시작을 새삼 느낀다. 시작부터 낙첨된 재수 없는 날의 시작. 나의 작은 짜증들은 가득 쌓인 물량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그나마 한 줌의 빛이라도 들어갈 수 있었던 자리마저 메우고 있었다. 덕분에 1.5톤 트럭 화물칸에는 단 하나의 네모 상자가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슬픈 것은 물방울을 바라보는 것도 거대한 네모 상자를 상상하는 것도 그나마 아침에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때가 유일하게 내가 인간일 수 있는 시간, 그러니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나는 하루를 뛴다. 열두 시. 식당에서 밥을 뜰 수 있는 여유는 없다. 코로나의 여파로 물량이 많아진 탓에 한 트럭으로는 오늘 할 분량을 소화할 수 없었다. 나는 그나마 건강을 챙기겠다는 이유로 고른 흰 우유와 침에 잘 녹는 카스텔라를 샀다. 다른 빵을 먹으면 뻑뻑하다는 이유로 우유를 마시는 시간이 생기기 때문에 했던 선택이었다. 차라리 그런 시간이 아까워서 이러는 것이었다면 억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운전대를 잡아야 할 손은 빵을 쥘 여유까지는 없다. 우유와 카스텔라는 나와 함께 두 번째 물량을 배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루를 뛴다. 그리고 인간임을 포기하는 시간. 나는 전화를 받는다.
“아 물건 진짜 급해서 그런데, 제가 찾으러 갈게요. XX아파트 XXX동 XXX호 택배에요.”
아 네, 고객님. 말씀하신 주소는 물건이 차 안쪽에 있어서 오셔도 꺼내드릴 수가 없습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아니 오늘 그거 써야 한다니까요. 빼라고요. 저 진짜 급하다니까요?”
죄송하지만, 그럴 수가 없습니다. 안쪽에 있는 걸 뺄 수 있는 시간이 없어요. 고객님. 아, 네. 죄송합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전화 끊겠습니다. 나는 내 삶을 불평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자책하게 된다. 나는 왜 이렇게 사는가. 나는 무슨 죄를 지었는가. 원인 모를 화는 나와 함께 트럭에 가득 올라타 있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오후 여섯 시. 나는 다시 레일 앞에 서 있다. 아직도 내가 배달해야 할 물량은 150개 남짓. 오후 일곱 시. 택배를 차 안에 모두 싣고 나니 한 시간이 지나있었다. 금자탑과 같은 택배 물량의 견고함. 시선이 떨어진 곳엔 먼지를 가득 뒤집어쓴 청바지가 있었다. 그리고 또 찾아오는 속죄의 시간.
“죄송한데요. 택배 언제 오나요?”
“왜 우리 집 택배만 이렇게 늦게 오는 거예요.”
“오늘 오는 물건이 어떤 겁니까?”
“저기, 아침에 배송했다는데 물건이 없는데요.”
고객님, 이 집이 아닌가요? 하고 사진을 보내면,
“우리 집 아닙니다.”
아뿔싸, 실수한 것인가. 나는 잘못한 사람이다. 아무튼 나는, 아무튼, 죄송합니다.
그렇게 세 번의 화물칸을 해결하고 커피를 타 먹었던 컨테이너 사무실로 돌아왔다. 사무실 벽에 걸려있는 시계는 자정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온종일 먹은 것이라곤 우유와 빵 하나뿐이었구나. 나는 그냥 불이 켜진 식당을 찾기 위해 서성이다가 끝내 편의점에 다다랐다. 고작 편의점이라니, 따위의 사색 할 기운도 없었다. 나는 컵라면과 삼각 김밥, 샌드위치를 입에 쑤셔 넣기 시작했다. 편의점 음식을 자주 먹으면 특유의 방부제 맛이 점점 더 느껴진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편의점 음식에서 방부제 맛만 나는 경지에 이르렀다. 방부제 맛은 아무 맛도 나지 않는다. 굳이 표현하자면 나를 깎아 먹는 맛, 그저 슬픈 맛, 왜 맛을 다른 감각과 표현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아까도 말했듯 그런 사색을 할 기운이 지금 나에게는 없다. 나는 인간이 아니다. 가장 무서운 건 오늘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내일도 오는 것이요, 분명 한 달 뒤에도, 몇 년이 흘러도 나를 찾아올 것이다. 두 번째로 무서운 건 나에게 무엇이 찾아올지 몸서리치게 잘 안다는 사실이다. 그 공포는 내가 일을 하지 않는 동안에도, 자고 있어도 내 안에 서려 있을 것이다. 나는 택배 상자 속에 사는 사람. 공기의 냄새가 종이상자의 냄새인 줄 알고, 방부제 덕에 살아있는 사람. 생수통의 심연 너머에서 올라온 크고 작은 물방울이 떠올랐다. 나도 물방울처럼 두둥실 떠올라 어디론가 사라질 수 있다면, 행복할 수 있을까.
띠리리‐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아니 오늘 온다는 물건이 왜 갑자기 내일 온다는 거예요?”
고객님. 죄송합니다. 제가 자정까지 계속 배달을 해서요. 죄송합니다. 전화 끊겠습니다. 불만 사항은 고객센터에 문의해주세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전화를 끊는다.
나도 물방울처럼 두둥실 떠올라 어디론가 사라질 수 있다면, 행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