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영감
교무실에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바쁜 업무를 하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처리해야 할 업무가 적힌 프린트들이 질서 없이 흐트러져 있었다. 마치 밀려 있는 과제처럼 답답함이 몰려왔다.
일단 눈에서 치우자는 생각으로 종이를 확 집어드는 순간!
종이에 베였다.
종이 한쪽 날이 구겨지지 않고 시퍼렇게 날이 선 채로, 부드럽고 연약한 내 살을 순간적으로 파고들었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맞이한 쓰라림은 더 크게 느껴졌다.
통증이 느껴지는 손가락을 유심히 바라보니 피가 나지도 않을 만큼 아주 얕은 상처였다.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아 통증이 느껴지는 부위를 한참 들여다봐야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많이 베였다기보다는 마음이 더 많이 놀란 듯했다.
언제든 구겨버릴 수도 있고 찢어버릴 수도 있는 종이.
생각 없이 막 다루다가 혼이 난 셈이다. 종이라는 존재에 '날카롭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았는데 이젠 제법 무섭게 느껴졌다. 칼을 다룰 때는 늘 조심한다. 상대에게 건넬 때도 손잡이가 상대에게 가도록 하는 예의까지 익숙하다. 하지만 종이를 집어 들 때는 전혀 위험을 감지하지 않는다.
만약 종이를 칼처럼 조심스럽게 다뤘다면 오늘 같은 베임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 늘 곁에 있는 것들일수록 함부로 대하지 말고 존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도 예상치 못한 순간 종이에 베인 것처럼 준비되지 않은 불행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에게 찾아올지 모른다. 예고 없이 닥쳐올 불행을 마주하기 전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을 되돌아보자.
따뜻한 잠자리가 있고, 배고플 때 꺼내 먹을 음식이 냉장고에 있다. 풍요 속에 가난함을 느끼지 않도록,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해보자.
감사하지 않을 것이 없다.
이날의 종이에 베임은 찰나의 순간이였지만 다음과 같은 영감을 주었다.
'삶이란 것도 조심히 다뤄야 할 한 장의 종이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