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풀코스 마라톤

생각보다 할만해

by om maum

풀코스 마라톤


어떤 이에게는 평생의 버킷리스트이기도 하고, 100회 이상 완주한 대기록을 가진 분들도 계신다. 분명한 것은 횟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신체적 극한의 고통을 넘어서 이를 극복했을 때 느끼는 성취감과 그 과정에서 받는 주위 사람들의 격려와 응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는 점이다.


나는 이번 충남 아산 이순신 백의종군 마라톤 대회에 풀코스 선수로 참가했다. 작년 연초부터 10km 대회에 첫 도전한 후 7개의 10km 대회에 참가했고, 올해부터는 하프코스를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풀코스까지 도전할 용기가 났다.

주위에서는 하프 이상은 하지 말라며 몸에 무리가 갈 것이라 경고했지만 그 말이 내게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부상 예방을 위해 러닝 클래스에 등록했고, 올바른 자세와 훈련으로 몸을 준비했다. 하프코스를 도전했을 때 10km보다는 힘들었지만 생각보다 쉽게 완주할 수 있었고 그 경험이 자신감을 더해주었다. 그렇게 풀코스를 신청하고 훈련 거리를 점차 늘려갔다.

하지만 욕심이 과했던 걸까? 대회 일주일 전 오른쪽 무릎에 통증이 느껴졌다. 그래서 욕심을 내려놓고 일주일간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대회 전날 아산에 도착하여 나름대로 컨디션을 조절하고 비장한 마음으로 배번호를 달았다. 풀코스의 배번호는 10km나 하프코스 배번호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준비를 마친 후 풀코스를 뛰는 모습을 상상하며 잠이 들었다.

대회 당일


새벽 5시에 일어나 24시 김밥집에서 김밥과 떡만둣국으로 든든히 식사를 하고 어제 미리 준비해 둔 옷을 입고 대회장으로 갔다.

대회장 가는 길에 걸린 교통통제 현수막은 오늘 이 도로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말해주는 듯했다.

여유롭게 대회장에 도착해 스트레칭을 하고 대회장에서 퍼져 나오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한껏 느끼며 상기되었다. 출발 시간이 가까워져 풀코스 출발선에 섰다. 10km는 길어야 40-50분, 하프는 1시간 30분에서 40분 정도 걸린다. 그런데 풀코스는 42.195km나 되니 어느 속도로 달려야 할지, 내 몸이 잘 버텨줄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완주 시간도 예측하기 어려웠다. 완주 기준은 5시간 이내 골인.

그걸 염두에 두고 시작했다.

10km나 하프코스는 초반에 빠른 속도로 시작하지만 풀코스는 거리가 긴 만큼 변수가 많다. 그래서 초반에는 페이스를 천천히 낮춰 5:40~5:50 페이스로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5km를 지나고 나니, 오른쪽 무릎이 다시 시큰거렸다.

남은 거리 37km.

고민 끝에 멈추고 시큰함이 사라질 때까지 걷기로 했다. 5km 지점에서 걷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나도 잘 달릴 수 있는데…" 지금의 몸 상태가 너무 야속했다.

시큰함이 적응된 것일까 내 마음이 조급했던 것일까.. 시큰함이 사라졌다. 다시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앞서 뛰어가는 주자가 눈에 들어왔다. "ROTC 10기"라고 적힌 조끼를 입고 뛰고 계신 할아버지가 보였다. 그 순간 너무 반가워서 옆으로 가 "저 53기입니다!"라고 인사하며 파이팅을 보냈다. 그 할아버지는 나보다 대략 40살이나 연세가 많으셨지만 매우 건강한 모습이었다. 서로 파이팅을 주고받고 나서 나는 힘을 얻어 더 힘차게 뛰기 시작했다.


1차 반환점을 돌아오는 길, 사물놀이의 신명 나는 응원이 또 한 번 힘을 줬다. 이번엔 VMK 시각장애인 마라톤 선수와 동반주자도 보였다. 얼마 전 나도 단순히 내 기록만을 위한 달리기가 아니라 내가 삶의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는 남을 위한 이타적인 삶 속에 행복감을 실천하기 위해 시각장애인 빛 나눔 동반주자로 등록했다. 옆으로 가서 놀라시지 않게 인사를 건네고 동반주자로 신청한 사연을 말씀드렸다. 아직 빛 나눔 동반주자로서 정식교육을 받은 것이 아니어서 직접적으로 레이스에 도움을 드릴 수는 없었지만 꽤 많은 거리를 옆에서 함께 뛰며 서로를 지지했다. 시각장애인분은 풀코스가 너무 좋다고 하시며 다음 훈련 나오면 자신과 같이 파트너가 되어 훈련하자고 하시며 서로의 이름도 통성명하였다. 또 이렇게 연결감 속에 힘을 한번 더 내고 뛰어가다 보니 어느새 하프코스까지 오게 되었다. 남은 거리는 이제 절반.


하프코스 이후


하프코스를 지나면서 출발을 알렸던 MC분이 풀코스 코스를 안내하며 선수들 이름을 아주 크게 크게 부르며 파이팅을 주셨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내 배번호에 적혀있는 이름을 보고 응원해 준다는 것이 고맙고 감동적이다. 그 힘으로 또 한발 나아간다.

하프를 지나면서 오른쪽 무릎이 이젠 회복이 안되는 걸 느꼈다. 여기서 포기할까… 가는데 까지 가볼까… 이 고민을 하며 걷다 뛰다 하다 보니 30km 지점까지 가고 2차 반환점을 돌았다. 이젠 포기할 수가 없다. 지금까지 뛴 거리와 시간,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온 순간들을 다 날려버릴 수 없었다.

32km 지점에서 잠시 멈춰 쉬기 위해 앉았는데, 그곳에 노란 꽃과 나비가 있었다. 그냥 달려갔다면 보지 못했을 자연의 아름다움이었다. 그 순간을 놓칠 수 없었다.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그 아름다움에 힘을 얻어 다시 한 발 더 내디뎠다.


끝까지 달린다


10km가량을 남기고 나는 이제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출발 후 5km 지점부터 무릎의 컨디션으로 인해 걷다 뛰다 반복하기도 했고, 반가운 러너들과의 여유로운 대화, 나비와 꽃에 취해 잠시 머물렀던 시간 등 기록에는 신경을 잘 못썼던 탓일까..!

아차!! 완주는 5시간 이내.


5시간 이내에 완주를 해야 풀코스 기록을 인정해 준다. 내게 남은 거리는 약 10km, 지금까지 경과시간은 3시간 50분가량. 1시간 10분 이내에 10km를 뛰어가야 한다. 컨디션 좋을 때야 40분 정도면 뛰어가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다. 시간초과로 공식기록인증을 못 받는다면 오늘 느꼈던 의미 있던 순간들이 모두 부서져버릴 것 같았다


오른 다리를 절뚝거리며 왼발에 체중을 싣고 최선을 다해 뛰어갔다. 사력을 다해 뛰어간 덕분에 남은 거리 5km.


남은 시간 40분. 평균 페이스 7분이 살짝 넘더라도 여유 있게 5시간 안에는 들어가겠다 싶었다. 그래도 만에 하나 내 시계가 잘못됐으면 어쩌지..... 더 여유를 둬야겠다 싶어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으로 뛰어갔다


2km를 남기고, 골인지점에 가까워지자 응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힘내세요!"라는 응원과 박수는 내게 힘이 되어주었다.


골인지점을 몇백 미터 남겨둔 멋진 은행나무길에 들어서자 양옆의 응원은 더 커져갔다.

주로에는 혼자였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 지구의 주인공은 ‘나’ 인 것이다.

분명 방금까지 오른쪽 무릎은 말을 안 듣고 한발 나아가는 것들이 힘겨웠는데 막 솟구치는 도파민이 거짓말처럼 모든 걸 치유해 주었다.

그렇게 나는 4시간 52분 28초의 긴 여정을 끝내고 현생으로 돌아왔다.

완주의 기쁨


완주하고 나서 앉아 쉬고 있던 중 뒤이어 들어오는 주자들을 보았다. 그들은 30km 이후부터 함께 달리며 앞뒤로 위치를 바꾸던 사람들이었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동질감에 그들과 함께 수고했다는 뿌듯한 마음을 나누며 "덕분에 완주했다"는 말을 서로 건넸다.

잠시 대회장에서 완주의 기쁨을 느끼고 바로 근처 사우나로 향했다. 땀으로 절어있는 옷을 벗어던지고 몸을 씻어낸 다음 들어간 온탕은 기억이 날리 없는 엄마 뱃속의 태아가 된 기분이었다…

이렇게 나의 첫 풀 마라톤 대회는 끝이 났다. 며칠간 근육통에 시달렸지만, 지금은 무릎도, 근육도 원래의 몸으로 돌아왔다.


이 경험은 나에게 정말 특별했다.

나와 연결된 반가운 사람들과의 만남, 이름 모를 응원들, 꽃과 나비, 그리고 함께 완주한 러너들, 그리고 완주 메달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던 레이스였다.


나는 또 한 번 나의 한계를 뛰어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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