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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ONG Nov 06. 2019

착한 사람 콤플렉스

회사는 회사, 회사 사람은 회사 사람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하루는 병아리 사원에게 데이터 정리를 맡기고는 한두 시간쯤 시간이 지나서 끝냈겠지 싶어 자리로 소환했다. 당당히 보내준 파일을 열었더니 엉망으로 정리가 되어있었다. 알려준 대로 정리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이유가 없단다. 너무나 쿨한 병아리 사원의 답변, ‘그냥요!’. 대답을 듣고서 모든 것을 얼려버릴 만큼의 차가운 표정이 자연스레 지어졌고 병아리 사원에게 시선이 갔다. 그런다고 병아리 사원은 얼지 않지만 말이다. 병아리 사원을 자리로 돌려보낸 후 날숨을 크게 한번 몰아쉬고 여섯 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 나는 새로운 업무를 시작했다. 일찍 집에 돌아가서 맥주 한 캔 마시며 좋아하는 드라마 본방사수를 하려던 계획은 안드로메다로 가버린 순간이었다.


첫 번째,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부사수에게 좋은 소리,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상사.

두 번째, 이런저런 핑계로 부사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입이 무거운 상사.


회사에서는 두 가지 타입의 상사를 만날 수 있다. 과연 두 타입 중 어떤 사수가 나에게 더 도움을 주는 상사일까? 나는 첫 번째가 좋은 상사라고 생각한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왜 병아리 사원에게 바로 잘못을 지적하지 못했을까 하는 자책을 했다. 그리고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있기 때문이라는 자아 성찰적 결론을 냈다. 속으로는 이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고분고분해서 내적, 외적 모순이 일어나는 사람을 부르는 이 단어로 나를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병아리 사원에게 바로 쓴소리를 뱉지 못했던 지난 그 상황이 더욱더 아쉬운지도 모른다.


화가 나면 참지 못하는 불 같은 다혈질도 아니고, 그렇다고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넘기는 일명 ‘프로낙천러’도 아닌지라 업무를 하면서 부사수의 부족한 점, 성의 없는 태도 등이 보일 때 할 말을 잘하지 못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친구에게라면 하고 싶은 말은 참지 않고 뱉었겠지만,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회사 사람과 불편한 상황을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무의식이 더욱 내 입을 무겁게 했다.


회사에서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었나 보다. 하지만 두루두루 잘 지내자며 하지 않았던 말, 남들보다 내가 손해 보고 말자며 지나쳤던 상황, 그때마다 언짢았던 마음이 쌓이고 쌓여 점점 벽이 되어갔다. 아무런 예고 없이 달라진 내 말투와 태도는 상대방을 당황하게 했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니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회사에서 좋은 사람은 역시 일을 잘하는 사람이다. 해야 할 말을 하지 않는다고 좋은 사람이 아닌 것은 아니다. 가끔은 나쁜 사람이 될 줄 알아야 모두가 편한 회사 생활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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