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극 I
왠만해선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는다. 특히 동네에서는 더 그렇다.
요즘 카페에서는 손님에게 전에 왔던 티를 내면 바로 '아, 이제 여기 못오겠군' 한다는 소리를 들으니, 난 그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오지랍 넘치던 사회에서 좀 더 개인화된 사회에 최적화된 성격이 아닐까 한다.
아무튼 그런 주인을 닮았는지 반려견 라떼도 다른 개만 보면 싫어한다.-_- (넌 대체 왜그런거니)
그래서 나는 라떼와 산책을 나가면 사람과 특히 개는 피해 돌아다닌다.
그렇게 산책을 돌고 아파트 현관 1층에 왔는데, 아저씨 한 분이 현관 공동 비밀번호를 누르고 계셨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아저씨가 번호를 계속 틀리신다.
좀 기다리다가 그냥 "제가 눌러드릴까요?" 하려 했으나, 또 그 아저씨가 누군지 모르니 선뜻 말이 나오지 않는다.
전에 내가 공동현관 안쪽으로 먼저 들어가 뒷사람이 들어오려고 할 때 문이 닫혀 있으면 내가 문을 홀랑홀랑 열어주었더니 남편이 "그냥 번호 누르고 오게 두지, 누군지 알고 문을 홀랑 홀랑 열어주냐"고 한 기억이 있어서 그냥 기다렸다.
사람, 개만보면 경기부터 하는 라떼만 없었어도 그냥 "제가 누를께요" 하고 가서 비밀번호를 눌렀을지도 모를일이다.
생각이 교차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사이, 아저씨가 갑자기 번호를 누르며 "아이 씨....아이 씨 ...." 마구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내 뒤에 또 다른 사람도 와서 기다리고 있다.
이미 아저씨가 번호판 앞에서 "아이 씨...아이 씨..." 짜증을 내니, 더 말을 걸기가 힘들어졌다.
3분여의 시간이 지나, 아저씨가 드디어 문을 열었다.
나는 그 아저씨와 엘레베이터를 함께 타기가 싫어 라떼를 데리고 다시 밖으로 나와 잠시 후 엘레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갔다.
공동현관 번호가 기억이 안날 수 있다. 나도 가끔 헷갈리곤 한다.
몇 번 해보고 안되면, 그냥 뒤에 서있던 나에게 "번호를 잊어버렸는데, 혹시 좀 눌러주실래요?" 라고 했으면 당연히 나는 눌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아저씨 입장에서 좋게 생각해보면, 뒤에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데, 번호가 자꾸 틀리니 짜증이 나긴 했겠다 싶기도 하다.
뭔가 일이 잘 알될 땐, 혼자 짜증을 내지 말고, 차라리 도와달라고 하자.
저렇게 요청하는데, 왠만하면 기꺼이 도와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