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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오미 Feb 21. 2024

'백일의 기적'이 있다면서요.

그날만 기다렸는데...

조리원에서부터 이미 손이 타서, 바닥에는 절대로 등을 대지 않는 아기를 키운다는 것은, 내가 인간인지 코알라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험난한 과정이었다.


모유수유가 안되면 그냥 편하게 분유 먹이면 될걸, 굳이 또 유축해서 먹이겠다고 두시간에 한 번씩 유축을 해야 하니, 이건 뭐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먹이고 유축하면 한시간이 지나고 또 한시간 후면 아이가 깬다. 


욕심을 버려야 몸과 마음이 편해지는데, 글로 배운 육아를 붙잡느라 더욱 힘든 나날이었다.


90일즈음 울다지쳐 잠든 애를 두고 나도 잠들었다가, 애가 열이 올라, 병원에 입원을 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백일의 기적'이란 말이 있다는 걸 알았다. 신생아에서 백일이 지나면, 정말 기적같이 좀 편한 시간이 찾아온다고 했다.


그래, 나에게도 백일의 기적이 찾아올거야. 조금만 버티자.


그런데 나에게 또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낯가림'이었다.


아니, 낯가림이란 것은 돌 전후로 생긴다고 분명히 육아책에 나와있었는데, 우리애는 이제 겨우 백일인데요???


그래도 아주 잠깐씩은 다른사람 품에도 안겨있곤 하던 아이가, 이제는 나 외에는 아무에게도 가지 않았다. 심지어 남편에게도.


덕분에 남편은 종종 오해를 받았다.


결혼식장에만 가도 체구가 작은 내가 온종일 아이를 안고 있으니, 남편은 부인에게만 맡겨두고 아이 한 번 안아주지 않는 남편이 되었다.


나는 가끔 보는 친척들에게 '아이 한 번 참 유별나게 키운다'는 혀차는 소리를 종종 듣곤 했다.


저도요, 그냥 막 키우고 싶거든요? 외치고 싶었다.


남편은 지금까지도 겉바속촉 딸바보다. 고등학생이 된 딸아이도 아빠를 너무 좋아한다. 해외출장이라도 가면, 둘이서 영상통화를 하느라 시간 가는줄 모른다.


단지, 저 시절에는 아이가 너무 낯을 가려서 둘이 가까워질 수가 없었을 뿐이다.


아직도 기억한다. 아이가 24개월쯤 되었을까? 그 때 처음으로 나 없이 남편과 아이 둘이서만 집 앞 슈퍼마켓에 갔다.


백일때부터 낯가린 엄마껌딱지의 엄마 없는 첫 외출, 감격적인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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