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공포증을 이기는 호기심
▮물이 무섭다
M의 물공포증을 이해하기 위해, 내 고소공포증의 증상을 떠올려봤다. 아래쪽이 뚫린 곳에 올라서면 즉시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비틀거리다가는 떨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곧장 들고, 다리에 힘을 주려 해봐도 오금이 저린다. 결국 서서히 무게중심을 낮추며 네발로 지면을 디딘 채 꼼짝하지 못하는 짐승이 된다. 그게 공포증이다.
M의 다른 곤란한 점은 더위를 많이 탄다는 거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습한 기운까지 더해진 더위에 얼굴이 하얘진다. 바닷물은 시원할테니 발 한번 담가보겠냐고 하니 알겠다고 순순히 따라올 만큼, 부정의 경합은 다른 하나를 밀어내기도 한다.
▮발을 담그고 5분을 참기 어렵다.
M은 바다가 이렇냐고 놀라 연신 질문을 쏟아냈다. 그도 그럴게, 여름에 이렇게 차가운 바다는 처음이다. 얼마 전 다녀온 계곡의 물보다 차가웠다. 계곡에서는 흐르는 물에 꽤 오랫동안 발을 담그고 있었는데, 되려 바다에서 5분을 참기 어려웠다. 아니 1분도 어렵다.
기온이 낮은 것도 아니었다. 우리가 막 해변에 도착했을 때는 31도였고, 그날은 33도까지 올랐다. 결국 밀려오는 파도를 몇 번 맞다가 버틸 수 없다는 듯이 발을 빼버렸다. 나중에 해수 온도 예보를 보고 알았지만, 그때 물 온도가 14도였다고 한다. 이례적인 저수온. M의 덜덜 떨리는 몸이 물공포증 때문인지, 추워서인지 알 수 없을 만큼 그랬다.
이래서야 가져간 스노클은 써보지도 못하겠다고 한쪽에 치워두려는데, 그걸 쓰면 바닷속이 정말 잘 보이냐고 묻는다. 고양이는 호기심 때문에 위험에 처한다는데. 이 큰 고양이는 자주 두려움 위에 호기심의 카펫을 깔고 그 위를 걸어간다.
▮바닷물에 얼굴을 넣어 보다.
이런 방법의 스노클링은 처음 봤다. 보통, 스노클링이라 하면 몸과 얼굴이 물속에 잠기거나 적어도 ‘물 속’이라 할 수 있는 수준의 깊이에서 스노클이라는 장비를 이용해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지 않아도 물속을 유영할 수 있도록 하는, 그런 종류의 액티비티였을터다.
바다가 워낙 차갑기도 했지만, M에게는 얼굴이 물에 잠긴다는 건 생각할 수 없는 두려움이었다. 그렇다면 포기해야겠지만, 바위와 해초 사이로 물고기가 돌아다니는 걸 보고는 꼭 가까이서 보고 싶다고 한다.
그렇게 이상한 활동이 시작됐다.
무릎이 채 잠기지 않는 수심에서(이 정도를 수심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처럼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인 채 스노클의 렌즈 부분만 수면에 살짝 붙인 M이 물고기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만히 있다가 보면 눈 앞으로 물고기가 지나가지 않겠냐고, 대화도 가능했던 걸 보면, 얼굴의 아주 일부가 물에 닿았던 이 일이 M의 첫 스노클링이다.
▮10cm급 대어를 낚다
망둥어는 이름도 망충한 느낌이라더니, 바다에 처음 온 사람에게 10cm 조금 더 되는 큰 녀석이 잡혔다. 가져간 해루질용 반두로 수초 쪽을 그냥 한번 털었는데, 그만 잡아버렸다. 크기에 놀라서 연신 소리를 질러댔더니 주변의 초등학생들이 부럽게 쳐다본다. 그걸 자랑이라도 하듯이 아이들이 많은 곳을 가로질러 다니다가 다시 잡히지 말라며 풀어주고는 열대어 같은 예쁜 물고기를 다시 잡았다.
정신이 팔린 사이 차가운 물에 몸이 식어 코를 훌쩍이기 시작했을 떄의 M을 보니 파랗게 질려 있다. 다급히 올라가 10원빵을 사먹었다.
그대의 처음에 내가 있어 더 시원했던 여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