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빠지긴 했지만, 호기심이 더 컸던 M의 선택
▮공포는 정도의 문제
일상의 평온한 상태를 벗어날 때 공포가 시작된다. 물에 잠기는 공포는 호흡과 발을 땅에 딛는다는 지극히 당연하고 기초적인 생존 행위를 계속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시작된다.
다행히 공포라는 건 정도의 문제다. 고소공포증도 1m 정도의 높이에 올라서는 정도는 괜찮다. 그래서 무릎 정도 오는 깊이의 바다가 하얀 모래사장 위로 넓게 펼쳐진 이곳은 괜찮았다. 물공포증에 참고 있던 물속에의 호기심을 드디어 분출해 볼, 딱 적당한 곳이었다.
발끝이 투명하게 보이는 얕은 해안은 안심이 됐나 보다. 한참을 걸어 들어가도 허리를 넘지 않는 깊이가 퍽 신기할 만도 했다. 바다라고 하면, 저 안의 어둠을 투명하게 보이며 위험을 경고할 뿐인 곳이라 알고 있었는데, 하얀 모래 위로 비췻빛 바다가 눈에 한가득 들어오는 게 마음을 진정시킨다. 그리고 놀랍게도 구글에 비췻빛이라고 검색하면 협재 해수욕장이 나온다.
▮1박2일을 보다가 알게 된 협재 해수욕장
강호동과 출연자들이 서 있던 해수욕장은 말 그대로의 카메라 앵글의 저 끝까지 옥빛 얕은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우리나라에 저런 곳이 있다니! 하는 감탄에 몇 번이나 같은 장면을 돌려봤는데, 그러고는 정작 한동안 그 장소를 잊어버렸다.
한때, 제주도는 인기 있는 수학여행지였다. 요즘은 그마저도 잘 가지 않을 정도의 다녀오는 쉬운 곳이 된 것 같지만, 나는 서른을 넘길 때까지도 한번을 가보지 못했었다. 그 탓에 이국과 같은 거리감이 남았는지, 제주도라고 하면 아직도 동아시아권 정도의 해외여행 같은 느낌이다. 뭣보다 동남아에서처럼, 처음 제주도에 갔을 때는 바가지에 당하기도 했다. 섬이라 비싼 줄 알았지. 물론 바가지를 씌웠던 음식점은 폐업했다.
▮생각보다 작은 것 같다?
제주도의 해수욕장에는 저마다의 특색이 있다. 쇠소깍은 입자가 굵은 검정색, 갈색의 모래가 예쁘게 섞여있고, 표선은 간조와 만조 때마다 해안선이 500미터 가까이 후퇴하고 전진하는 광활한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다. 하지만 협재를 설명하는 데는 오히려 수식어가 걸림이 된다. 그냥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그렇다고 인정해도 다른 말미를 둘 마음이 들지 않는 곳이라 하면 충분하다.
다만, 으레 이렇게 유명한 곳은 규모가 상당할 것이라 기대할 법 하지만, 다른 해수욕장보다는 오히려 작다. 바다에 접한 모래사장 부분은 불과 150미터 정도이고, 암초 부분을 다 포함해도 해수욕장은 300미터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조금의 땅으로 이런 감탄을 만든다. ‘여기가 우리나라 맞아?’
▮처음 물에 떠보다
해변이 예뻐서였는지, M이 잠깐의 고민 후 몸을 담가보겠다고 한다. 그럴만한 해변이었으니 기념으로 삼고 싶었나 보다. 처음 물에 몸을 띄워 스노클링 한 곳이 협재해수욕장이라면 더할 나위 없긴 하다.
스노클을 착용하고 물에 몸을 맡긴 채 잠겨 바닥을 바라보면 하얀 모래에 투명하게 비치는 햇살의 일렁거림이 보인다. 그런 경험은 쉽지 않다. 일생 동안 몇 번이나 볼 수 있을까 하는 아련함이 드는 순간이다.
다만, M은 발로 물장구를 칠 줄 몰라 내가 서서 양손으로 M을 끌어주다 보니 내 발걸음에 고운 모래가 날려 물속의 시야가 자꾸 흐려졌다. 해변은 얕았지만 작은 물고기들이 떼 지어 다녔는데, 내가 그걸 보고 물고기 떼가 지나가는 곳을 가리켜도, 스스로 이동하지 못하던 M의 시야에 드는 일은 없었다. M은 그게 못내 아쉬웠는지 얕은 해변에 앉아 물고기를 기다렸지만 허사였다.
▮처음 물에 빠지다.
스노클링을 즐기기에 해변보다 안전한 곳이 포구다. 해변은 바깥쪽으로 바다가 뚫려있어 이안류가 발생하면 바다 깊은 곳으로 빨려 들어가 버릴수 있지만, 포구는 방파제로 막혀 있어 이안류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방심하게 된다.
제주도에도 스노클링에 좋은 포구가 몇 군데 있다.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바다에 사람들이 많은 걸 보고 호기심에 차를 세웠는데 거기가 판포포구였다.
나는 스쿠버다이빙 어드벤스 자격이 있어, 장비가 있다면 수심 30미터까지 잠수할 수 있다. 이전에 강사님이 맑은 날 바다의 바닥 색을 보고 깊이를 대략 추정하는 법을 알려줬는데, 인상 깊었던 게 아는 곳이라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면’ 절대 장비 없이 들어가지 말라는 거다.
그때 판포포구에는 많은 사람들이 물속에서 놀고 있었지만, 만조였고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물 안으로 이어진 수중 계단을 따라 마지막에 한 발을 떼어 넣는데 순간 키 180센티미터인 내가 머리 끝부분까지 완전히 잠겨 버렸다. 그럼에도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다. M은 나보다 15센티미터가 작다.
M을 급히 찾았다. M은 연신 물아래로 잠겼다 떠오르고 있었다. 그렇잖아도 물을 무서워 하는 사람인데.
다행히 주변에 사람이 많았고 튜브를 탄 몇 명이 M을 계단쪽으로 밀어주었지만, 이미 M은 물을 흠씬 마신 후였다.
▮의외의 용기
그런 M이 다음날 스노클링을 또 해보고 싶다고 한 건 물고기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명을 귀여워 하는 M에게, ‘정말로’ 바다에 물고기가 떠다니는지, 그 모습을 보려는 목표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스노클에 딱 맞는 기간은 7월 중순에서 8월 중순까지 1달 정도다. 길게 잡아도 7, 8월 2달이다.
곧 스노클 시즌이 마감됐고, 다음해 여름을 기약했는데,
‘보홀에 거북이 보러 가자.’
그렇게 이번 주에 우리는 보홀에 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