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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삶은 고요하게 아름답다

보홀, 알로나 비치

by 볕뉘

▮더위의 질이 다르다

대구에 살면 으레 갖게 되는 더위에 대한 부심이 무색할 만큼 보홀은 질이 다른 더위를 보여줬다.

기온이 높은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습도도 여름의 대구와 비슷한 했지만, 무언가 더위의 질이 달랐다. 3월 말이면 조금 시원할 거라고 쉽게 긍정적인 기대를 했던게 무색할 만큼, 4계절이 번갈아 도래하는 대구 같은 도시의 더위는 사이비라는 듯 섭씨 30도밖에 되지 않는 기온으로 몸의 모든 수분을 뽑아댔다.


해가 떠 있을때는 100미터만 걸어도 피부에 꽂히는 햇살에 신경이 녹아버리는 듯 어질어질했다.


우리는 알로나 비치 주변의 리조트에서 묵었는데 새벽에 도착했던 까닭에 아침이 되어 환전소를 들렀다.

https://maps.app.goo.gl/4NtV1UxdUvg5Bvs96

숙소에서 환전소까지는 불과 300미터 정도였는데, 이 300미터를 한번에 가지 못하고 가는 길에 있던 맥도날드로 피신했다가 환전하자마자 할로망고라는 아이스크림 가게로도 도망치듯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https://maps.app.goo.gl/2aDzy2dnXTufjHQW8


▮여행은 기대와 경험의 저울질

보홀섬은 서울보다 7배나 크다. 하지만 관광지는 작은 팡라오 섬에 몰려있다.

대표적인 해변으로 알로나, 돌조, 두말루안과 정어리떼를 만날 수 있는 나팔링 포인트, 바다거북이가 있는 발리카삭 섬이 유명하다.

우리는 여행의 즐거움을 서서히 올려 간다는 전략으로, 먼저 알로나 비치를 향했다.

보홀, 알로나 비치


시간도, 돈도 넉넉지 않은 여행자들의 흔한 조바심은 효율적인 동선을 만든다. 준비가 충분하다면 좋은 경험으로 나아갈 가능성은 분명 커진다. 다만, 여행지는 처음 가보는 곳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여행 중에는 언제나 기대와 경험이 저울의 양쪽에 달린다.

알로나는 저울이 경험 쪽으로 끝까지 기울어버린 곳이다. 알로나에서 우리는 대형 산호 아파트를 발견해 그곳에 있던 호기심 많은 파란 열대어와 한참을 놀았고, 열대 밤하늘에 선명하게 붉은 선을 그리던 별똥별을 봤다.

보홀 밤바다 위 별. 폰(갤럭시 S24플러스)으로 그냥 찍어도 저렇게 많은 별이 담겼다


작년 페르세우스 유성우를 보려고 1시간 넘게 하늘을 올려다봤었을 때도 못 본 별똥별이다. 적도에 가까운, 먼 타지의 해변에서 바다 위로 뜬 별의 반짝임에 연신 감탄하던 눈앞으로 열대의 밤하늘이 가져놓은 순간의 광선은 화려한 불꽃놀이보다 황홀했다.


이렇게. 우연이란 이름의 작은 기적들이 그득해, 삶은 고요하게 아름답다.

기분 좋은 우연과 그 반대의 상황도 있겠지만, 우리의 여정이 늘 따뜻할 것 같다는 포근한 마음이 열대의 수평선까지 확장되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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