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어디 갈거에요? 정했어요?"
하고 묻는 평균의 시각에 마음이 편해진다.
"아니요, 공항에 내려서 생각해보려고요."
"숙소는요? 남자 혼자 가니깐 싸게 게하 같은데 가도 되잖아요?"
"숙소요? 밤새도록 걷다 길바닥에서 잘까 싶은데요?"
하니 마구 웃는다.
농담처럼 들리는 이 짓을 나는 진정 또 하게 될 것 같다.
이제 벌써 수 해가 지난 일인데, 들어봐줘.
모회사(parent Co.)의 출연이 있긴했지만, 어쨋건 우리가 세웠던 회사의 책임사원에서 해임된 후 나는 2주간 집 밖을 나가지 않았어.
당시 기술스타트업이 아닌, 정보와 지식으로 돈벌이하는 자회사의 이사가 해임됐다는게 어떤 의미일까?그리고 이런 물음에 더해, 동료들의 마지막 눈빛을 잊을 수 없었거든. 인사라도 해줄거라 생각했는데, 시선을 피하더라. 다들 잘 살고 있을까?
나는 총무이사였어. 나를 총무님~총무님~ 하고 부르면서 매일같이 내 자리로 놀러오던 귀여운 직원이 있었는데, 내가 나오면서 필요한 거 가지라고 하니 미안하다며 도망가버리더라. 그때가 5월이었는데, 차갑다는 건 온도의 감각이 아니라, 본래부터 감정을 두고 하는 말이었나봐.
집에 나를 걸어잠근지 5일쯤 지난 때, 생수는 다 떨어졌고 수돗물만 끊여먹다보니 배고파 죽을거 같아서 참치캔과 생수를 사오긴 했었는데 아마 그 때 몰골은 노숙자에 다름아니었을것 같아. 자주가는 마트의 그 종업원은 나를 알아보지 않았을까?
사실 그 2주는 한달이, 어쩌면 두달이 될 수도 있었거든.
나를 2주만에 밖으로 끌어내 준 이는 당시 여자친구였어.
정성들인 장문의 문자에는 왜 우리가 헤어져야 하는지, 자신이 얼마나 힘든 결정을 한 것인지 같은 게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그리고 납득가능하게 쓰여있었고.
폰을 꽤 오래 들여다 보고 있었던거 같아. 답장은 안했고, 다음날 바로 씻고 밖으로 나왔어.
얼마가 지나, 공무원 공부를 시작했고 이듬해 4월에 9급 공채에 붙었어. 수험기간 동안, 일주일에 서너 마디 정도 했던 것 같아. 이러다 나중에 내가 말을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때마다 허공에 "아아, 접니다. 누구누구. 하하하." 이랬던거 같아. 지금 생각해보니 진짜 미쳐보였겠다.
아, 전 여자친구가 결혼을 준비한다는 소식도 들었었는데, 아무렇지도 않더라. 허허. 불과 몇달이란 시간에, 그 사람은 내 행정법 점수보다 못한 이가 되어있었던거지.
경영이력 때문인지 9급인데도 모 부처의 기획조정실로 발령이 났었는데, 반년이 안되어 관뒀어. 공직사회 좋더라. 사람들도 부드럽고, 무엇보다 개개인이 안정감이 있었어. 이 때 사람들에게 위로를 조금 받았어. 사정이 있겠거니, 하고 이해해주는 모습으로 말이야. 다만 내가 조직생활을 견디기에 너무 약해져있었던거지. 그럴거 뭐하러 공부했는지 나도 의문이니깐 그건 그만 물어줘.
그리고 간 곳이 베트남 다낭시야. 그곳에서 나는 한번도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았고, 걷기만 했어. 밤 9시경 야시장에 갔다가, 정신을 놓고 걷다보니 해가 뜨더라고. 밤새 걸은 건 이 때가 처음이었어. 체력적으로 스스로를 몰아넣은 경험이었지. 자신을 혹시시키는 경험은 나쁘지 않았어.
그리고 그 사이 나는 이 과거를 아픔이라 하지않을 수 있게 됐어.
'당신'을 만났으니깐.
내게 단 한번 있었던 하나의 작고 온전한 구원.
나는 그 때 당신으로 구원받았고, 이제 다시 저주에 던져졌다.
그러니 나는 다시 한번 참회의 걸음을 떼려는 것이다.
24시간 정도 걸으면 잘 수 있을까. 어쩌면 20시간으로도 충분할 지 모른다.
아침 9시에 제주도에 도착해 처음 10시간은 시간당 4km, 그 다음에는 시간당 3km로 10시간. 그러면 해가 뜬다.
해안을 따라 서쪽으로 가면 애월, 협재를 지나 모슬포까지 이를 수 있고, 동쪽으로 가면 성산일출봉을 지나 표선까지 갈 수 있다.
밤에는 보온에 신경쓰고, 낮에는 가급적 해를 등지고 걷는다.
잠이 올때까지 걷고, 잠이 오면 길가 안전한 곳에서 좀 자다가, 다시 걷고 3일 정도만. 그러자. 이번엔 시간을 많이 못 냈으니, 짧고 확실하게 다녀오자.
마침 봄이기도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