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웨이스트의 영향으로 요즘 소비를 줄이고 가급적 집밥을 해 먹었더니 재활용 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의 양이 눈에 띄게 줄었다. 아이들이 오래간만에 낮잠을 자고 있어서 나 혼자 신~나게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동네 산책이라도 다녀오려고 집을 나섰다.
재활용 쓰레기가 많지 않아서 금방 분리배출을 끝내고 산책을 하러 출발했다.
산책코스는 우리 집에서 출발하여 중랑천까지 걷기.
성인 걸음으로 왕복했을 때 빠르면 40분. 아무리 느긋하게 걸어도 왕복 한 시간 거리라 아이들이 잘 때 후딱 다녀오려고 했다.
혼자서 여유 있게 걷다 보니 어느새 중랑천으로 향하는 길이 나왔다. 걷다가 우연히 학인지 두루미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하얀 새 한 마리를 만났다. 이름도 모르고 어떤 새인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큰 새를 만나니 반가웠다.
흰 새는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모른 채 긴 다리로 물속에서 성큼성큼 걷고 있었다.
하천에서 만난 새하얀 새
빠른 걸음으로 20분 정도 걷자 어느새 중랑천에 도착했다.
중랑천에서서 흐르는 강물을 조금 보다가 집으로 향하려고 돌아서는 순간!의외의 인물을 만났다. 절대 만나고 싶지 않았던... 바로 담뱃갑이었다.
순간 고민이 되었다.
여기 오기 전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왔기에 내 손에는 큰 봉지가 하나 들려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쓰레기를 주울 집게도 위생장갑도 안 챙겨 왔기에 망설여졌다.
'나는 오늘 쓰레기를 줍는 게 아니라 산책을 하러 왔는데...
왜 또 담뱃갑이 보이는 거야...'제로 웨이스트를 접한 이후로 한 가지 불편한 점을 꼽자면 늘 길거리의 쓰레기들이 나한테 데려가 달라고 말을 거는 것 같은 느낌이다!!!
게다가 아까 보았던 하얀 새가 갑자기 오버랩되면서
'이 담뱃갑을지나쳐? 말아?'
마치 수능에서 정답이 3번일까? 4번일까? 고민이 되었던 것처럼 나는 집으로 가기 위해 앞으로 나아갈 수도 되돌아갈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맨 손으로 쓰레기를 주울 거라곤 상상도 못 해봤기 때문이다.
결국 손이야 이따 화장실 가서 닦으면 되지. 하는 생각에 버려진 담뱃갑을 얼른 주워 들어 가져 간 봉지에 담았다.
어쩌다 보니 오늘 쓰레기 줍기가 이미 시작되었다.
그래서 오는 길에 내가 주울 수 있는 쓰레기는 다 주워보자고 생각이 들었다.
물속에 있는 담뱃갑이나 스티로폼 접시, 비닐봉지, 마스크 봉지, 과일 포장 스티로폼, 소주병, 스티로폼 박스 등은 울타리가 쳐있는 저 아래 개천에 있었기에 내가 주울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는 것부터 줍기 시작했다.
중랑천으로 가는 길에 만난 쓰레기들
다행히 보름달 빵 봉지와 비닐장갑, 캔 커피, 종이컵, 초코파이 봉지, 갈비탕 봉지, 과자 플라스틱 트레이, 마트 전단지, 노끈 등은 내가 주울 수 있었다.
쓰레기를 줍고 오는 길에 오붓하게 놀고 있는 오리 두 마리를 만났다. 오리에게 난 속으로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오리야, 내가 오는 길에 쓰레기를 깨끗이 치웠으니 넌 재미있게 놀아.'라고...
하천에서 만난 오리 두 마리
집으로 오다가 쓰레기통 주변에 모여있는 쓰레기를 보니 이 많은 쓰레기들이 어디로 가는 건지 다시 한번 걱정이 되었고 테이크아웃 커피 컵들을 보니 어느새 따뜻한 봄이 벌써 찾아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저 커피 컵들은 다 재질이 달라서 재활용이 전혀 안된다고 해서 더욱 걱정이 되었다. 나부터라도 앞으로 외출을 할 때 텀블러를 꼭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집을 나설 때 물을 챙겨 왔는데 쓰레기를 줍다 보니 막상 물 마실 겨를도 없었고 생각도 못 했었다.
길거리에 쌓여있던 쓰레기들
오늘 주운 쓰레기
오늘 모은 쓰레기들은 약 30분 정도 주웠는데도 양이 생각보다 많아 커다란 비닐봉지가 금세 꽉 찼다. 주운 쓰레기들을 재활용이 가능한 건 재활용으로 버리고 일반 쓰레기는 일반쓰레기 봉지에 담아 버렸다.
안 그래도 내일이 3월 1일이어서 쓰레기를 주으려고 했는데 비가 온다고 해서 어쩌나 했는데 오늘 쓰레기를 주어서 3월 쓰레기 줍기 미션도 성공했다.
아이들과도 날씨가 따뜻해지면 같이 쓰레기 줍기를 하러 나와야겠다.
앞으로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매월 1일에 쓰레기를 줍고 날씨와 체력이 괜찮으면 2주에 한번 정도 쓰레기를 주으러 나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