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30년 만에 처음으로 부모님 곁을 떠나 자취를 하게 되었고 10개월가량의 혼자살이를 통해 깨닫게 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부모님이 여태껏 나에게 주신 '사랑과 희생'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소중함'이다.
(무려 30년 가까이가 걸렸다. 내가 알지 못했던 부모님의 마음과 사랑을 진정으로 깨닫기까지..)
어려서부터 집안일을 하며 잔소리를 하는 부모님의 목소리에 짜증이 솟구치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나이가 들수록 가족들 모두 각자의 라이프 스타일이 굳어져가니 이젠 같이 맞춰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도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회사생활에 지쳐 집에서만큼은 조용하게 편안하게 있고 싶은데 자꾸 내 시간을 방해하는 부모님을 피해 작년의 나는 '독립'을 결정했다.
그렇게 6개월가량은 그저 좋았다. 혼자서 해보고 싶은 것들을 다 해보고,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니 삶이 정말 순탄했다. 그렇지만 8개월이 넘어가는 시점부터는 통제가 되지 않는 삶, 그에 따른 책임에 대해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해야만 했다. 자유를 거머쥐고 나니 점점 생활패턴은 불규칙적으로 변해갔다. 이 또한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기에 발생된 일이었다.
거기에 더불어 처음에는 쓸고 닦고 열심히 하던 집안일도 어느 순간부터는 귀찮다는 핑계로 대충대충 하게 되고, 무엇보다 건강에 좋은 음식들을 신경 써서 먹는 것에 대해 소홀해지게 되었다. 그렇게 내 몸이 편한 대로 지내다 보니 건강이 망가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나는 내 몸을 막 쓰면서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며 안쓰럽게 여기고 불쌍히 여기셨다. 끔찍이도 걱정을 하셨다. 엄마 역시도 본인의 것은 대충 해도 자식을 위한 일에는 항상 최선을 다하시지 않는가?
그때 뭔가의 깨달음을 얻었다.
즉석밥을 먹으면 빨리 먹을 수 있는데 꼭 냄비 밥솥을 고집하는 엄마를 보며,
속옷 빨래는 꼭 2,3번의 손빨래를 고집하는 엄마를 보며,
본인은 잘 먹지도 않으면서 힘들게 매년 김치를 담가 내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어려서부터 난 그 모습이 이해가 안 갔다.
그래서 매번 엄마에게 잔소리를 했다.
대충 먹자고, 그냥 사 먹으라고.
그리고 난 저렇게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살지 않겠다고 오히려 다짐했다.
그렇지만 자취를 해보니 내가 날 위해서 하는 일도 이렇게 힘들고 귀찮은데 하물며 누군갈 위해 그 많은 노동을 군말 없이 기꺼이 감수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 일인가 싶어졌다.
이때 비로소 부모님이 주신 사랑의 위대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자, 엄마가 밥상에 올려주는 풀때기는 마트에서 가져온 게 아니라. 주말농장에 씨를 뿌린 후 매주 약수터에서 물을 떠다 나르며 기르신 정성과 사랑이 가득 담긴 풀들이었고, 내가 아무렇지 않게 입고 있는 모든 옷들은 엄마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 소중한 것들이었다는 사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집안을 청소하고 빨래를 하고 빨랫감을 말리고 걷고 개는 과정 속에서도 엄마의 사랑과 관심은 그 속에 가득 깃들어 있었다. 마디마다 주름 진 엄마의 손은 가족에 대한 '애정(愛情)'하나로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살아온 인생을 나타내 주는 표식이었으며, 그렇게 부모님의 사랑과 희생으로 꾸며진 내가 머무는 공간들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따스한 사랑의 온기가 가득한 힐링의 공간들이었다.
이렇듯 부모님이 주신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나의 일상의 모든 곳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속에서 얻은 안정감과 평온함 속에 나에게 주어진 하루에 나에게 주어진 일들에 집중할 수 있었고, 세상을 향해 환하게 웃어 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걸 당연스럽게 여기며 자랐던 나는 부모님의 숭고한 희생과 사랑을 진심으로 소중하게 여기지 못했다. 오히려 미디어를 보며 '돈'으로 표현되는 관심과 사랑을 주지 않는다며 원망하고 탓한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부모님의 사랑의 마음은 내가 알지 못하는 모든 영역에 걸쳐 구석구석 담겨 내 삶을 구성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사회에서 상처받고 치일 때면 가장 가까운 부모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커져 부모님의 마음을 상하게 만드는 일을 저지르곤 했었는데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며 더 많은 힘든 순간들을 겪다 보니, 진정한 내편은 가족들밖에 없었다는 것. 앞으로도 평생에 걸쳐 그럴 것이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나의 어떠한 모습도 온전히 내 모습으로 인정받을 수 있고 치유받을 수 있는 곳은 가정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보니 내가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꿋꿋이 버텨낼 수 있었던 이유 또한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고 지지해주는 부모님 덕분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계속해서 도전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고 원하는 것들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온 이유는 다름 아닌 부모님의 헌신과 사랑 때문이었던 것이다. 날 위해 고생하는 그분들의 웃음을 보고 싶었고 그분들이 편안해지길 바랬다. 그리고 어디서든 내가 나일 수 있게 키워주신 그분들의 큰 마음 덕분에 나는 어디서든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내가 가진 역량을 뽐내며 새로운 것들에도 당당하게 도전해볼 수 있었다.
나를 손쉽게 비방하고 흠집 내려는 타인에게 맞서 싸울 수 있는 힘, 또는 누군가를 괴롭히는 사람이나 부당한 세상에 당당하게 맞설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부모님의 사랑을 무럭무럭 먹고 자라 건강한 정신과 신체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나를 안 좋은 시선으로 보고 괴롭히는 사람들은 어디나 존재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를 치유받기 위해 우리에게는 '강력한 내편'이 필요한 것이고, 그런 '내편'들과 서로 치유하고 위로하고 사랑하며 사는 것이 잘 사는 인생이 아닐까 싶다. 나도 이제는 부모님에게 받은 사랑에 비할 순 없겠지만, 그분들의 든든한 편이 되어드릴 수 있도록 부모님을 더욱 사랑하고 아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