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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moiyaru Jul 21. 2023

눈치 보지 않아 본 적이 없어요

과도하게 남의 눈치 보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 사람으로부터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나를 향해 저격하듯 한 말은 아니었을 텐데 왠지 모르게 나는 찔렸다.


그 이유는, 아마도 내가 말이나 행동을 할 때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예민한 기질을 타고난 덕분에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어려서부터 내 주장을 하는 것에 있어 타인과 부딪히며 부정적 경험들이 쌓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나는 눈치를 보며 행동하는 일이 늘어났다.


~~ 한 행동을 하면 사람들이 싫어하는구나, 하고 느끼는 경우 그런 행동을 하지 않으려 하고 ~~ 한 행동을 하면 사람들이 좋아하는구나, 하고 느끼는 경우 반대로 더 하려고 하는 식이었다. 그래서인지 성인이 된 이후부터는 사람을 만나는 게 너무나 피곤한 일로 느껴졌다. 같은 이유로 지금도 혼자가 편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사람을 만날 때마다 가면을 쓰고 대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남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너무나 피곤한 일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친구들의 말들이 상대방을 불필요로 한다고 들리기보다는 누군가를 상대하기 위해 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들려 너무나도 이해가 된다. 사회 속에서 가면을 많이 쓰는 사람들일수록 혼자 있는 시간이 더욱 필요로 해지는 것 같다.


그렇게 끊임없이 눈치를 보며 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나'라는 사람의 색채가 뿌예져버린 것 같다.


사회에서 원하는 나, 가족들이 바라는 나의 모습은 짙은 색채를 더해가지만 정작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을 제대로 된 형체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 나는 일상의 여러 선택들에 있어서도 남들에게 의견을 묻기 급급했다.


나라는 사람의 선택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사소한 것들에 대해서도 남들의 의견을 묻고 남들의 시선을 생각하며 살다 보니 내 행동의 스펙트럼은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남들의 시선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 불편함이 따라왔다. 사회적 통념에 따르는 것이 낫다, 편하다는 생각이 강해지니 세상을 살며 부딪히는 일은 적어졌지만, 정작 나라는 개인이 느끼는 행복도는 낮아져 가는 것 같았다.


부속품으로서의 삶. 이게 내가 느낀 눈치 보는 사람의 삶이다.


눈치 보는 사람의 삶은 눈치를 주는 사람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기에 결국 온전히 자립해 있는 상태라고 볼 수가 없다. 세상의 모든 일들을 선택함에 있어 온전히 자유의지에 맡긴 선택을 할 수가 없다. 남들의 시선 안에서 합당하다는 판단이 서지 않으면 불안해한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자유의지로 선택하고 실행하고 또 거기에 따르는 책임도 져야 한다. 


이제는 눈치 보지 않고 사는 삶을 연습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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