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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moiyaru Sep 02. 2024

심리상담 6회 차의 기록

2024.08.30.


지난 상담 시간에 이야기가 나왔던 '경계'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어떤 상황에 닥치면 심리적으로 불편함을 느끼고, 거부감이 드는지를 일상 속에서도 파악해보려고 하였다.


사실 요즘은 과거에 비해 크게 거슬리는 일이 없는 삶을 살고 있긴 하다.


어린 시절에는 가난함 속에서 불편함을 겪은 기억이 많다. 가난하기 때문에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고 하지 못했던 경험들이 나를 힘들게 했었다. 그리고 돈이 없어서 무시를 당하거나 존중받지 못한다는 경험을 했던 적도 많다. 


예를 들면, 경차를 타고 다니던 시절 나는 운전을 하면서 이상한 사람들을 많이 겪었다. 

외제차를 끄는 지금은 운전을 하며 내가 실수를 해서 이상한 사람을 겪으면 겪었지 무턱대고 이상한 사람을 겪는 경우는 극히 줄어들었다. 클락션을 울리는 사람이 정말 눈에 띄게 줄었다. 누구든 경차를 타고 다니면 도로 위에서 엄청난 클락션을 경험하게 것이라 자부한다.


지금은 수많은 나의 땀과 눈물로 인해 그때에 비하면 참 많은 것을 누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편함을 느끼는 순간들을 떠올려 보면 아래와 같은 것 같다.


- 나의 의견에 대하여 이유 없는 공격을 당하거나 무시를 당할 때

- 상대적으로 누가 봐도 약자인 자 또는 생명체를 괴롭히는 모습을 볼 때

- 자신의 말을 강압적으로 강요할 때

- 남의 의견을 듣지 않는 사람과 함께 있어야 할 때

- 남을 과도하게 헐뜯고 비방하는 모습을 볼 때

- 자신은 노력을 하지 않고 남에게만 의지하려고 하는 모습을 볼 때

- 자신만이 피해자라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모습을 볼 때

- 발전적이지 않은 삶을 살며 남들을 비방하고 자신의 삶을 합리화하는 사람을 볼 때

-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행동을 하고서도 죄책감 없이 사는 사람을 볼 때

- 상대방의 배려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을 볼 때

- 주위의 상황이나 분위기를 읽지 못하고, 심각하게 눈치가 없는 사람을 볼 때

-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해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는 모습을 볼 때

- 윤리적으로 어긋난 행동을 하고 당당한 사람을 볼 때

-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현저히 낮은 사람을 볼 때

-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을 볼 때

- 선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을 볼 때

- 쉽게 흥분하며 자제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을 볼 때

- 경제관념이 없는 사람을 볼 때


이렇게 불편한 순간들을 적은 종이를 가지고 상담실에 도착하였다.

선생님은 가지고 온 내용을 읽어봐 달라고 하였고, 나는 하나씩 읽어 내려갔다.

읽다 보니 중복되는 듯한 비슷한 뉘앙스의 내용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모든 내용을 읊고 난 뒤, 선생님은 바로 상담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심호흡과 명상을 하는 시간을 갖게 하였다. 내 몸이 가장 평온한 자세와 심호흡을 유지하도록 호흡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에는 적어온 내용에 대해 빨리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는데, 심호흡을 하고 나니 점차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렇게 5~10분 정도가 지난 뒤, 선생님은 다시 한번 적어온 종이를 보고 그중에서도 가장 불편한 상황이 언제인 것 같은지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였다.


나는 다시금 내가 써온 글을 읽어보았는데 모든 문장들에서 2%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자 떠오르는 나에게 불편한 상황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있지만 그것을 어떤 이유에서든 하지 못하게 될 때 답답함과 절망감, 그리고 삶에 대한 의욕의 의지를 잃어버렸던 것 같다.


이는 곧,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부정당하는 느낌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부모님은 어려서부터 나를 구속하려는 모습들을 보였었다. 그 속에서 자라오면서 나는 그러한 속박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생각했고, 해방되기를 꿈꿔왔던 것 같다. 그 안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가능한 트러블이 나지 않는 방식으로 해소해 왔다. 예를 들면 책 읽기나 음악 감상, 콘서트 영상 감상과 같은 취미들이었다. 그런 식으로 해외 뮤지션들의 콘서트 영상을 보다 보니 외국어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렇듯 나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최근 들어 문제가 있었던 남자친구와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남자친구가 좋아하는 취미인 운동 모임 와 친구들과의 모임의 횟수가 너무 많다는 것을 이유로 하여 최근 우리는 다툼이 있었다.


나는 누구보다 구속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지금 나의 남자친구를 구속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를 구속하지 않으려 노력했으나 그럴수록 그는 점점 친구와 취미에 집중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나는 그 과정에서 홀로 된 느낌을 계속 받았고, 나의 내면은 그와 함께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갖기를 원했던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꼭 '그'라서가 아니라 나를 사랑해 주는 존재가 항상 나의 곁을 지켜주길 원했던 것 같다. (이것은 부모님과의 소원한 관계의 영향도 있는 것 같다.) 그렇기에 그가 좋아하는 것을 하러 나가고 연락이 닿지 않거나 나의 곁에 없는 순간이 찾아오면 공허함과 외로움이 나를 휩쌌다. 


부모님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던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며 나답게 살기 위해서였다. 부모가 구속을 하려 하면 할수록 나는 더 반동작용이 커졌고, 더 벗어나고 싶어 졌었다. 내 남자친구 또한 그런 답답함이 쌓여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서로가 각자로서 존재하는 시간과 둘이 함께 하는 시간의 밸런스를 어떻게 맞추는 것이 옳은 것일지 잘 모르겠다. 


부모는 내가 택한 관계가 아니기에 어느 정도의 책임감이 부재하더라도 이해가 되는 것 같다. 오히려 독립을 위해 그렇게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게 어찌 보면 더 맞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배우자와 가족에 있어서만큼은 책임감을 갖고 함께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이 맞지 않나? 싶다. 하고 싶은 것만을 모두 하고자 한다면 결혼은 욕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좋아하는 모든 것을 결혼을 이유로 포기하는 것 또한 옳다고도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그 적정선이 어디까지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앞으로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경계선을 찾아야 할 것 같다.


그동안 그저 서운하기만 했던 마음이 나를 공감해 주고 지지해 주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내 외로움에서 기인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나자 조금은 남자친구를 대하는 자세가 평온해졌다. 그리고 미안하기도 했다. 혼자인 것이 편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나는 나를 이해해 줄 누군가를 만나기를 지독히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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