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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moiyaru Aug 26. 2024

심리상담 5회 차의 기록

2024.08.23.


남자친구와 냉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와중 심리상담을 진행하게 되었다. 그동안 남자친구에게 섭섭했던 부분들이 내 마음속에서 곪고 곪다 드디어 터져버렸다. 남자친구는 친구들을 만나고 인맥을 관리하는 것을 중요시하고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것에 가치를 두는 사람인데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소규모의 내 집단 속에 머물며 자기 계발을 하며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삶에 가치를 두는 사람이다. 우리는 식성이나 스타일, 개그코드 등은 굉장히 닮아있지만 삶을 대하는 자세는 정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가뜩이나 결혼을 준비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도 적은데 남자친구는 다른 부분에 힘을 쏟고 있어 보이니 이 부분에 대해서 나는 크게 섭섭함을 느끼고 있었고, 그게 쌓이고 쌓이다 결국 터져버렸다.


그래서 나는 생각할 시간을 갖자고 말하고 꼬박 4일간 연락을 두절했다.


남자친구는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나를 괴롭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신기하게도 그로부터 벗어나 생각할 시간을 갖자 슬프고 외롭다기보다는 오히려 '해방감'이 들어왔다. 물론 이 기간이 영원한 이별이 아닌 기약을 정한 시간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사람들로부터 그동안 끊겨있던 친구들에게 연락을 취하며 여러 조언도 구할 수 있었고 내가 느끼는 감정들에 오로지 충실할 수 있었다. 그렇게 혼자서 힘들어하던 나는 너덜너덜했던 내 마음을 보듬어주고 챙겨줄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내 눈앞을 덮고 있던 그를 덜어내자 내 소중한 삶이 눈앞에 펼쳐졌고, 그것을 이번에 직면할 수 있었다. 


만에 하나, 그가 사라지더라도 내 삶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연애도 결혼도 삶을 구성하는데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것에 앞서 선행되는 것은 나의 삶이다. 내 삶을 직면하자 그동안 연애로 인하여 뒷전으로 미뤄왔던 해야 할 일들이 떠올랐다. 그렇게 마음도 안정감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해야 할 일들이 하나씩 정리가 되고 하고 싶은 것과 뭘 해나가야 할지에 대해서도 명확해지니 불안감도 사라지고 있었다. 


상담 선생님과의 대화에서 남자친구에게 화가 난 이유, 화가 났을 때의 감정, 내가 불안해지고 불편해졌던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선, 경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평소 사람들을 대하면서 '경계'에 대해 명확한 구분을 짓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어디까지는 행동은 이해가 되고 어디서부터는 마음이 불편하다는 기준이 없다 보니 모든 상황이 불안해지고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왜 나는 선이 명확하지 않을까?'


나는 어려서부터 평범한 아이들보다 기질적으로 예민한 성향을 타고난 아이였다. 갓난아기 때에는 엄마와 외할머니 품이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안기 지를 않고 울어재껴서 엄마가 밖에서 일도 못하고 엄청 힘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불편한 것이 많으면 많았지 적을 리는 없는 사람인데 왜 성인이 된 나에게는 명확한 선이 없는 걸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렴풋이 떠오르던 기억이 어려서 예민하게 굴면 혼나던 기억이었다.


엄마 또한 예민한 기질이 있던 터라 엄마는 나의 예민함을 보면 더 힘들어했던 것 같다. 그래서 뭔가를 할 때마다 남들과는 다른 반응을 보이면 혼을 냈다. 먹기 싫다고 안 먹으면 혼이 나고, 하라는 대로 안 하면 혼이 나고 그러다 보니 점점 내 의사를 표현하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 물론 예민성이 너무 두드러지면 사회생활 자체가 불편해질 수 있으니 아이의 교육을 위해 어느 정도의 훈육은 필요하다는 것에는 어느 정도 동감하는 바이다. 


이렇게 과거를 잠시 떠올려 보며 어린 시절의 나는 그러했다는 사실을 인지한 뒤, 지금은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한 과정으로 잠시 덮어 두었던 나의 예민성을 깨워보기로 했다. 


상담 선생님께서는 다음 상담 시까지 내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불편해지는 모든 상황을 기록해 보라고 하셨다. 그렇게 불편한 상황들을 정리하다 보면 내가 허용할 있는 선이 어디까지인지 허용할 수 없는 선은 어디인지가 명확해질 것이라 하셨다.


상담 시간에는 나의 모든 면을 장점, 단점이라는 틀로 나누지 않고 그저 '내 모습'이라는 표현으로 모든 감정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꺼내어 보고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은 것 같다. 혹자는 상담에 돈을 쓰는 것에 대해 반색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나는 여전히 돈을 지불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번주는 나의 예민성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한 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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