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단어가 나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단어인 것 같다. 나는 그 누구보다 사랑을 갈망하지만, 사랑을 온전히 받아본 적이 없어서 온전히 사랑을 받을 줄도, 줄 줄도 모르는 어른이다.
사춘기 소녀 시절, 자연스럽게 말투와 행동에서 사랑스러움이 묻어 나오는 친구들을 보면서 굉장히 이질감을 느꼈던 적이 많았다. 그들의 티 없이 맑은 순수함이 나에게는 가식적인 모습으로 비치기도 했었다.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는데 너무나 손쉽게 사랑이 담긴 말투와 행동을 구사하는 그들의 모습이 나에게는 마치 꾸며낸 모습같이 인위적이여 보였던 것 같다.
그렇지만,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어가면서부터 그들의 변함없는 일관된 모습과 함께 사회에서도 인정받고 사랑받는 모습을 보며 그들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바라보면 내 시선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나는 그들을 삐뚤어진 시선으로 바라보는 내가 싫었고, 왜 나는 저렇게 살 수 없는지 내 모습과 내 현실이 원망스럽기도 하였다.
이때 가장 손쉽게 찾을 수 있었는 원망의 대상은 '가족'이었다. 구체적으로는 '부모님'이었다. 가족들이 나에게 제대로 된 사랑을 주지 않아 나는 사랑을 주지도 못하고 받지도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물론 주변 환경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가족으로부터 받은 영향이 없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부모도 완벽한 사람이 아니기에 바꿀 수 없는 주변 환경만을 탓하는 것은 그 당시의 나에게는 최선이었겠지만 결과론적으로 옳지 않은 방법이었다.
부정적으로 생각을 하면 할수록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것은 결국 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겠지만, 부정적인 생각에 한번 빠지게 되면 좀처럼 빠져나오기가 쉽지가 않다. 부정적인 사고패턴이 고착화될수록 사물, 사람 그리고 사회를 바라보는 모든 시선 자체가 부정적으로 물들기에 일상적인 생각들도 전부 부정적으로 연결될 확률이 높다. 그러다 보니 이런 사고패턴에 한 번 발을 들이게 되면 끊어내는 것이 마치 담배를 끊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 된다.
특히나 부정적인 사고패턴을 갖고 있는 사람을 가까이 두고 있다면 이는 더욱 어려운 일이 된다. 나는 내가 제대로 사랑을 받고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부정적인 사고패턴부터 끊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 상처가 많은 사랑받지 못한 나에게 사랑을 주는 시간이 최우선적으로 필요했다.
이 세상에 나를 바꿀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
나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내가 나에게 줄 수밖에 없다.
지금 당장 가진 게 많지 않아도, 완벽하지 않아도 나는 충분히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며 나는 누구보다 그런 나를 사랑한다는 말을 나에게 수만 번 해주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견디는 과정 속에서 나는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내가 나를 사랑해주며 내면에 사랑이 차오르기 시작하자 그제야 나는 내 주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사랑이 담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부정적인 시선이나 편견에 가득 찬 시선이 아닌 있는 그 자체로 빛나는 모든 것들을 그대로 바라보며 그 존재들이 가지고 있는 제각기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사랑이 담긴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에서는 모든 존재들에게서 다 형형색색의 빛이 난다. 내 안에서 그 존재들을 받아들이고 소중히 대할 수 있는 준비가 되자 이런 나를 소중히 대해주는 사람들도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힘들 때 나를 찾아와 말을 걸어주는 일도 생겼다. 나의 내면은 그들과 함께 그렇게 성장하고 있었다.
나는 앞으로도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아름답게 인생을 살아가고 싶다. 앞으로 인생길을 걸으며 나는 수만 번 넘어지고 일어나는 과정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럴 때 무너지지 않도록 나를 일으켜주고 다독여줄 내 사람들과 함께 느리더라도 천천히 발걸음을 맞춰나가며 남들보다 화려하고 잘난 삶이 아닌 내 주변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서로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들과 함께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바로 그런 삶이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는 삶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