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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 우울했구나?

by omoiyaru

요즘 딱히 사는 게 무료하고 재미가 없었다. 딱히 인생의 목표도 없었고, 그렇게 사는 삶에 대해 큰 불만도 없었다. 과거의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들로 지금의 나는 그때에 비해 덜 노력하고도 어느 정도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의 수준에 도달했고, 그렇기에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당연시하며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고 있었다.


이는 배가 불렀다는 표현에 합당할 수 있다. 만약 내가 지금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면 혹은 언제 잘릴지 모르는 계약직의 입장이었다면, 아마 나는 이렇게 무료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는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예전처럼 바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기 급급한 사람으로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남들이 볼 때에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아무것도 없었던 과거에 비하면 원하던 것들을 많이 이루었고 많은 것들을 체득했고 그 모든 것들은 내 자산으로 고스란히 남아 나의 가치를 올려 주었다. 결국 그것들 덕분에 나는 지금 배부르게 살 수 있게 되었다. 또래에 비해 조금 앞서 있기에 남들이 봤을 때에는 참 좋아 보이는 인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많은 것을 가졌다고 자부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 오히려 삶의 이유와 목적을 잃은 사람으로 흐리멍덩한 눈을 갖고 살고 있었다.


왜일까?

요즘은 왜 인지 혼자 있을 수가 없었다.


혼자 있으면 많은 생각이 들어왔다. 과거를 자꾸 캐고 들어가기도 하고 벌어지지도 않은 미래를 생각하기도 했다. 현재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래서 혼자 있기가 싫어서 자꾸만 떠오르는 생각이라는 놈을 떨쳐 버리고 싶어서 나는 평소보다 더 많은 활동들에 참여하고 있다. 건강을 잃지 않기 위해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고, 식사도 과식과 과음을 하지 않기 위해 조절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과도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도통 문제라고는 찾을 수 없는 너무나 평범하고 안정적인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내가 느끼는 나는,

내 인생에 무언가가 빠져 있다는 느낌이 자꾸 들었다.


빠진 그 무언가를 채워 넣어야 한다는 생각에 또는 그냥 아무런 생각이 없이 살고 싶은 마음에 내 몸을 이리저리로 움직이고 있지만, 정신은 나사가 하나 빠진 사람과 같은 상태였다. 왠지 좀비와 비슷한 모습인 것 같다. 혼자 있으면 거대한 불안함이 몰려오지만, 사람들이 많은 공간에 속해 있을 땐 무언갈 크게 하지 않아도 소속감 속에 잠시나마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뭘 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만 진정으로 뭘 해야 하는지는 모르는 상황.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는 상황.

계속되는 반복.

무한 루프.

도돌이표.


그렇게 하루, 일주일, 한 달...

이렇게 좀비처럼 살던 내가 드디어 어제, 나를 깨워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지난주부터 새롭게 나의 PT를 담당해주시게 된 트레이너 선생님인데, 선생님이 해준 말들이 내 심장에 와서 꽂혔고, 따듯한 눈빛이 나를 깨워주었다.


"우울할 때에는 오메가 3을 먹는 게 좋으니 꼭 먹어"

"밥은 잘 챙겨 먹고 있어?"

"운동은 꾸준히 해야 해, 운동하면 우울한 거 다 사라져"

"평일에도 운동하러 나와서 개인훈련 꼭 해"


나는 한대 강하게 얻어맞은 느낌을 받았다.

내가 감추고 있던 우울함이 들킨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뻔한 힘내, 파이팅과 같은 말보다 더 큰 위로를 받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게 바로 내가 여태껏 찾아 헤매던, 어쩌면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고 느꼈다.

조금의 걱정과 조언 그리고 상대에 대한 배려가 담긴 진심이 담긴 말..


선생님의 말을 듣고 처음으로 들었던 생각이 '나 진짜 사람들 잘 속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들켰다...'였다.

처음에는 옷이 다 벗겨진 것처럼 창피해진 마음에 아니라고 반박을 하려 했으나, 너무나 정곡을 찌르는 말들에 이내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저 선생님이 너무 신기하고 대단했다.


나는 고통을 잘 참기도 하고, 꽤나 연기를 잘하는 편에 속해서 사람들을 잘 속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겉으로 드러내는 모습만을 보고 나를 보며 우울하다는 이미지로 연결 짓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오히려 마음이 어두워질수록 겉으로는 더 밝아 보이려 애를 쓰는 게 요즘의 나의 삶이었다. 그러다 보니 더욱더 우울함과의 연결점을 찾기가 어려울 터.


내 주변에는 이런 나의 내면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없기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항상 공허하다고 느껴지고 외롭다고 느껴지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사실 대부분 사람들이 타인에게 큰 관심이 없기 때문에 내가 꾸며낸 외향적인 모습만을 본다면 누가 봐도 나는 잘 먹고 잘 사는 애로 오해받을만하다. (나도 굳이 내 삶을 길게 설명하고 싶지 않으니 잘 사는 것처럼 보이게 더 편하기도 하고) 그렇지만 그렇게 덮어 씌우고 있던 내 내면은 썩고 곪아가고 있었던 것 같다.


심리 상담사도 아닌데 이런 내 상태를 단번에 정확하게 집어 주신 트레이너 선생님의 능력(?)은 경이로웠다.


그리고 나는 '이 사람을 닮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나도 더 큰 사람이 되어 상대가 감추고 있는 내면에 있는 연약한 마음도 알아볼 줄 알고, 그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배려하면서도 따듯한 말을 할 줄 아는, 무엇보다 따듯하고 강인한 눈빛을 갖고 있는 의지가 되는 사람, 그런 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 나는 느꼈다.

이 선생님을 믿고 가면 무언가 길이 보일 것 같다는 강한 느낌을.


좋은 선생님 덕분에 나는 오래 끌고 온 방황을 이제는 멈출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변화할 내 삶이 기대가 되기 시작한다.

우울함 따위는 쿨하게 안녕! 해버리자. 소중한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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