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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Sep 04. 2019

사립초등학교

사립초 교사의, 사립초에 대한 첫 번째 글

학부모님께.


안녕하세요? 비 오는 수요일입니다.

4년 전 제가 당시 학부모님들께 이렇게 문자를 보냈더라고요.

그날 역시 비 오는 수요일이었네요.




우리 아이들,

오늘 바이올린까지 들고 오려면 힘들겠네요...


무궁무진하게 많은 일들을 처리하고 나면 또 끝이 보이지 않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네요.

학교도 또 하나의 조직이고 더 큰 조직에 속해있기에... 해야 할 일들이 참 많고 많습니다.

집에 계신 어머니들도 끊임없이 분주한 삶 살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오늘 아침은, "아이들만 생각하자. 아이들에게만 집중하자" 하고 다짐하니,

시작하는 마음이 한결 편안합니다.


학교가 하나의 기관이고 조직이기 이전에,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따뜻한 소통의 공간이길...

저는 보잘것없는 개인이지만, 이 소망 언제 어디에 있든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비 오는 아침이라 그런지 감수성 폭발!!ㅋㅋ 어머니들 힘내십시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부모님들께서 긍정적인 답변을 주셨던 것 같아요.

사실 비 오는 아침이라 감수성 폭발했다기보다는,

아이들 수업하는 것 이외의 일(학교 행사 준비나 기타 업무)로 지쳐있었던 것 같아요.

그날 아침에 쓴 일기에

'아이들도 나처럼 학교 가는 일이 언제나 즐겁지만은 않겠지'라고 썼더라고요.


저는 사립초등학교 교사입니다. 대학 졸업 후 쭉 사립에만 근무했어요.

(공립학교는 근무해보진 않았지만 지금도 공립학교 선생님들과 계속 연구 모임을 같이 하고 있기에

공립학교의 상황은 늘 접하고 가까이에서 듣고 있어요.)


서울 시내에 많은 사립초등학교가 있는데,

우리 반 부모님들은 어떤 마음으로 우리 학교를 선택하셨을까...

공립초냐 등록금을 내야 하는 사립초냐, 또 사립이라면 어느 학교냐, 이 고민이 참 많으셨을 텐데...

그런 고민 끝에 저희 학교와, 또 저와 닿았다는 것이 참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입학식 날 교사 소개를 하는데 제 소개와 함께 큰 박수소리가 나와서 깜짝 놀랐어요.

이제까지 입학식 중에 그렇게 큰 박수와 환호는 처음이었어요. 물론, 정말 기분이 좋았고요.


교사로서 사립에서 근무하는 장점은 무엇일까요?

1. 부모님들의 존중과 배려

공립초등학교와 다르게 전근이 없는 사립초등학교에서 근무하다 보니 이제는 '000 선생님'하면 부모님들께서 떠올리시는 이미지가 어느 정도 굳혀져 있을 것 같아요. 제가 가르쳤던 아이의 동생을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두 번째로 맡는 학년이 생기기도 하죠. 부모님들도 해당 담임교사의 스타일을 미리 아시고 존중해주시는 경우가 많아 참 감사해요. 부모님들의 존중과 배려, 신뢰를 받는다는 것은 담임으로선 정말 큰 힘이 되거든요.


2. 좋은 동료 교사들

현재 저희 학교 선생님들이 최강의 드림팀임을 자부합니다.

정말 다들 좋은 선생님들이고 열심히 일하셔요.

역시 전근이 없다 보니 학교에 대한 애착이 강해지고

동료 교사들은 어쩌면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라

서로 잘 지내기 위해 노력하며 관계에 공을 들이게 됩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갈등과 화해의 시간을 가볍게, 때론 또 무겁게 반복하다 보니

말없이도 자연스럽게 서로 맞춰주는 방향으로 관계가 흐르는 것 같아요.

요즘 없다고들 하는 '평생직장'에 제가 근무하고 있네요.



3. 지속 가능한 교육 활동

'지속가능성'

이 매력적인 단어로 사립초등학교를 표현할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공립초등학교의 경우 어떤 교육 활동이 잘 되면 교육청 지원도 받고 금방 확대되는 등 '뜰' 수 있지만

사립초등학교는 초등 전반으로 확대된다는 느낌보다는 학교만의 고유한 문화로 자리 잡아가는 것 같아요.

공립초등학교는 해당 교육 활동에 열심인 선생님이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시면

말 그대로 교육 활동의 생명력이 확 꺼지는대요,

사립초등학교는 전근 갈 일이 없으니 지속적으로 진행되며

시행착오를 거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내실 있게 발전하곤 해요.

일례로 많은 초등학교에서 실시하는 '존댓말 쓰기'도

제가 2011년에 시작한 것이 전교로 확대되어 지금까지 지속되어 오고 있어요.

이 교육활동의 진짜 의미를 살리고 제대로 실천하기 위해

'드림팀'선생님들과 계속 고민하며 논의하고 있고요.

저희 학교 오케스트라는 보통 공립 초등학교처럼 윈드나 스트링 앙상블이 아닌

정규 관현악 편성인데요,

이것 역시 한 선생님의 교육 경력과 맘먹는 22년이라는 역사를 가지고 있답니다.





제가 글의 분량을 줄이고 매일 조금씩이라도 쓰는 것이 목표인데

글을 쓰다 보니 자꾸 길어지네요.

현재 육아하랴(아이 셋의 끝없는 요청) 글 쓰랴 정말 정신이 없습니다. 글이 갈수록 다급해지고 있어요!


교사로서 사립학교에 근무하는 단점요? 당연히 있죠.

단점보다는... 한계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것 같아요.

물론 지금 쓸 시간도 없긴 하지만

그 한계를 생각하면 마음이 저릿해요.

조금 더 여유로운 상황에서 글로 정리해볼게요.


아무튼 4년 전 저 단체문자를 보는데,

'아... 내가 한계 속에서도 소망을 가지려고 정말 애썼던 순간이었구나' 싶어

과거의 나를 통해 오히려 힘을 얻는 기분이었어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따뜻한 소통의 공간

그 공간 속에서 자랐고 자라고 있고 앞으로도 만나게 될

'우리 반 아이들'


저는 여전히 보잘것없는 개인이지만

맡겨진 아이들이 있는,

저를 바라보는 초롱초롱한 눈빛을 늘 마주하는

담임. 담임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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