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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순영 Jul 12. 2020

있는 그대로 살기로 했다

여행이야기- 러시아


오래전 내 오른쪽 눈 아래에는 밥알만 한 점이 있었다.
점은 어떤 미인의 얼굴에 있는 것처럼 눈꼬리 옆에 매력적으로 찍혀 있지 않고 오른쪽 광대뼈, 볼록한 부분에 밥풀떼기처럼 붙어 있었다.

처음엔 작았던 점이 나의 성장 속도에 맞춰 같이 커지더니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밥알만 해졌던 것이다.
딸아이의 얼굴에 있는 점이 신경 쓰이셨는지 많은 자식들을 키우면서도 좀처럼 병원은 가지 않던 친정 아빠가 어느 날 나를 데리고 피부과를 찾으셨다.
그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레이저 시술로 점을 빼는 기술이 없었던 때라 의사는 내 뺨에 부분마취를 한 후 말 그대로 내 점을 뜯어냈다.

마취를 했음에도 점이 뜯겨나갈 때의  느낌은 꽤 생생해서 지금도 떠올릴 수 있을 정도다.
점에도 뿌리가 있는지 나중에 한 번 더 점을 뜯어내는 시술을 받은 다음에야 내 뺨에 있던 커다란 점의 자취를 지울 수 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게 내 오른쪽 코 아래에 있는 점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볼록한 콧볼 아래에 있는 점은 처음에는 납작한 검은 점에 불과했는데 점점 도톰해지면서 커지더니 이제 점을 가장한 사마귀처럼 보일 정도다.
이게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사진 때문이었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그 점이 유독 눈에 거슬렸다.


몇 년 전 남편과 같이 얼굴에 있는 점을 제거하기 위해 피부과를 찾았었다.
그때 의사 선생님에게 코 아래에 있는 점도 같이 빼고 싶다고 했더니 그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두 분 다 코 아래 있는 점은 빼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코 아래에 있는 점은 복점이라나.

먹을 복이 있는 점이니 그냥 두란다.
수많은 점을 빼보았을 의사 선생님이 하는 말이라 뭔가 이유가 있나 보다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날 처음으로 남편에게도 나와 비슷한 위치에 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전까지는 매일 보면서도 잘 모르고 있었다.
그날  남편은 족히 50개가 넘는 점을 뺐고 나도 20개쯤 되는 크고 작은 점을 뺐지만 우리 둘 다 오른쪽 코 아래에 있는 점은 그대로 남겨 두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 점이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느냐? 하면 그건 아니어서 셀카를 찍을 때면 의도적으로 왼쪽 얼굴이 나오게 찍는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에르미타주 현대미술관에서 르누아르가 그린 '부채를 든 젊은 여인'이라는 그림을 보았을 때 내가 얼마나 반가웠는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으리라.
반가운 마음에 나는 속으로 이렇게 외쳤던 것이다.
'어머나 그대는, 왼쪽 코 옆에 근사한 점이 있군요?'
나는 그림 앞에서 몇 번을 실실거리며 웃었다.
 
마린스키 극장에서 공연을 기다리다 벽에 전시되어 있던 사진 속 여인을 발견했을 때는 반가운 정도가 아니라 너무나 기쁜 나머지 앞에 실제로 그녀가 있었다면 와락 껴안을 뻔했다.
거의 나랑 같은 위치에 나랑 같은 크기의 꽤 선명하고 부피가 느껴지는 검은 점이 있었던 것이다.
점이 없는 그녀의 얼굴을 상상하다가 점이 있는 편이 훨씬 매력적이라고 인정했다.
 
물론 나도 안다. 르누아르의 그림 속 여인이나 사진 속 여인은 예쁘다.
그녀들은 상당한 미인들이고 미인들 얼굴에 있는 점은 매력을 더할 뿐이다.
내 점도 그러하리라 믿으면 중국 고사에 나오는 찌푸린 표정마저 아름다웠던 미인 서시의 표정을 따라 하던 어떤 처자의 이야기나 다를 바 없겠다.

 그렇다고 뭐 그렇게까지 안 될 것은 또 없는 것 아니겠냐고 물론 나는 주장하고 싶은 것이나, 어찌 되었든 그날 코 아래 점을 빼지 않은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를 사랑하는 법, 뭐 특별한 방법이 있을까?

그저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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