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배낭여행기
불행한 일은 아주 작은 틈만 있어도 벌어진다.
아홉 번 조심하다 한 번 방심한 틈에 사고가 나고 계속 긴장하다 잠깐 한숨 돌리는 사이에 일이 생긴다.
어떤 일은 그저 운이 없어서 단지 그 순간 그 자리에 있었단 이유만으로 벌어지기도 한다.
내게 생긴 일은 아마도 그 두 가지에 다 해당되리라.
이스탄불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블루 모스크를 느지막이 찾았다.
생애 첫 배낭여행지로 터키를 선택하고 이스탄불에 왔을 때 그 설렘을 아직도 기억한다.
블루모스크의 푸르고 아름다운 양탄자위에 앉아서 원형의 거대한 공간이 주는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에 빠져들던 순간을 기억한다.
아이가 없는 나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해 주던 여인의 따뜻한 손의 촉감을 기억한다.
블루모스크는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특별한 추억과 감흥을 일으키는 장소다.
잠시 감상에 젖었다 밖으로 나와 모스크가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깨에 메고 있던 배낭을 왼쪽 옆에 놓고 오른쪽에 드로잉북과 물을 내려놓고 정면을 잠깐 바라보다가 색연필을 꺼내려고 왼쪽을 돌아본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배낭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내 배낭이 감쪽같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오른쪽, 정면, 왼쪽으로 내 시야가 이동한 시간이 30초나 되었을까?
벌떡 일어나 사방을 둘러봐도 내 배낭 같은 걸 들고 움직이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너무 상황이 믿어지지 않아 현실 같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혹시 파란 배낭을 가지고 가는 사람을 봤냐고 물었지만 누구도 내 일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배낭 안에는 여권과 달러, 신용카드가 들어 있었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준비해 온 모든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다른 건 다 괜찮은데 여권이 문제였다.
물론 카드도 문제였다.
내 손에 남은 건 핸드폰과 트레블 체크카드 하나뿐이었다.
우선 두 장의 카드를 은행 앱으로 들어가 정지시켰다.
그다음 경찰을 찾아가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경찰은 나를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인계하면서 무려 3시간의 시간을 허비한 다음 경찰본부로 데리고 갔다.
여권 분실 서류 한 장을 받는 동안 그들은 차를 마시고 저녁을 먹고 수다를 떨었다.
나는 저녁도 못 먹고 기다리다 핸드폰 배터리가 끝나가서 커피를 마시며 충전을 부탁해야 했다.
보조배터리와 충전 케이블 역시 잃어버린 배낭 안에 있었다.
3시간 만에 서류를 받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서 충전 케이블부터 샀다. 늦은 시간에 문을 연 마트가 있어 다행이었다.
배터리가 거의 방전 직전이었던 것이다.
숙소에 오니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내일 영사관을 찾아가 바로 발급 가능한 단수여권을 받을 생각이었다.
모레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로 가는 버스표를 예매해 놓은 상태였고 그 후의 일정에 맞춰 숙소도 예약이 끝난 상황이었다.
하필 8월 초성수기에 여행을 나와 어쩔 수 없었다.
어쩌다 보니 이번 나의 여행은 혼자 하는 여행과 동행들을 만나 같이 하는 여행이 발칸과 중앙아시아로 연결된 아주 길고 복잡한 루트가 되어 있었다.
애초에 무리한 계획이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실감을 못하고 있었다.
단수여권으로 앞으로 가야 할 나라들 입출국이 가능한지 알아보니 규정상 가능하기는 했다.
일어나면 당장 영사관으로 뛰어가 단수여권 발급을 받으면 계획대로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권사진이 필요했다.
자려고 누웠다가 다시 검색을 시작했다.
근처 사진관을 찾아서 저장을 해 놓고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밤새 뒤척이다 설핏 선 잠을 자고 일어났다.
진짜 힘들었던 둘째 날 이야기는 다음 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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