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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순영 Jul 20. 2020

물건에 깃든 추억

사노라면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외출하고 돌아오니 철제 바구니가 재활용 통에 버려져 있었다.
그 철제 바구니는 며칠 전 내가 간장이나 올리브유 등과 같은 양념통을 담아 싱크대 아래 찬장에 넣어 두었던 것이다.
그전에는 안방에서 벗어 놓은 옷을 넣어두는 용도로 활용하고 있었다.
철제 바구니를 들고 안방으로 들어왔다.
시동생이 한 일이 분명했다.

나와 부엌일을 나눠하는 시동생은 이 철제 바구니가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
철제 바구니에서 양념통을 꺼내 쓰고 다시 끼워 넣는 일이 불편했을 수 있다.

그래 그럴 수 있다.

다른 날, 다른 일이었다면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일은 마음에 걸렸다.
몹시 기분이 나빴을 뿐만 아니라 마음이 아프기까지 했다.
내가 돌아온 후 시동생은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고민 끝에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이 문제를 꺼냈다.

“쓰기 불편하면 말을 하지 그랬니? 꼭 내가 쓰레기통에 버려진 느낌이었어.”

시동생은 그게 어떻게 편하냐며 짜증 섞인 말을 던지더니 묵묵히 밥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고로 밥상머리에서는 좋은 얘기만 해야 한다.
밥을 먹고 남편과 이 문제에 대해서 긴 대화를 나눴다. 시간을 두고 그날 왜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을 했을까? 고민했다.
철제 바구니, 그까짓 게 뭐라고.

결혼했을 때 사업을 하던 시댁이 부도를 당해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웠었다.
우리는 시어머님이 친척에게 빌린 돈으로 간신히 반지하 월세방을 얻어 신혼살림을 차렸다.

거기에 서울서 학교를 다니는 시동생 둘을 데리고 있어야 했다.
방 두 개에 거실도 없는 부엌이 딸린 작은 집이었다. 밥은 안방에 상을 펴고 먹었다.

그래도 좋았다.
그 당시 나는 인테리어가 뭔지도 몰랐고 그런 것에 크게 관심도 감각도 없어서 내 신혼집은 예쁜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물론 그럴 형편도 안 되었다.


어느 날 밖에 나갔다가 인테리어 매장을 구경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철제 바구니가 눈에 들어왔다.
매장의 철제 바구니에는 색이 곱고 도톰해 보이는 수건이 담겨 있거나  빨간 사과 같은 과일 등이 담겨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예뻐 보일 수없었다.
뭐랄까. 굉장히 감각적이고 세련돼 보였다고 할까?
그 바구니를 사서 나도 뭔가 담아 두면 내 집도 조금은 예쁘고 근사해 보일 것 같았다.

가격이 싸지 않았음에도 나는 큰 맘먹고 중간 크기의 철제 바구니를 하나 사 들고 집에 왔다.
부엌 한쪽에 철제 바구니를 놓고 어느 날은 감자를 어느 날은 양파를 어느 날은 사과를 담아 두었다.
남편도 시동생도 아무도 그 바구니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집에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오로지 나만 그 철제 바구니를 바라보며 혼자 미소 짓고는 했다.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면서 철제 바구니의 용도는 계속 바뀌었다.
아무것도 없이 비어있을 때도 많았다. 그래도 버리지 않았다. 버린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다가 싱크대 아래 자리를 잡았는데 시동생이 그걸 버린 것이다.


시동생이 버린 것은 단순히 철제 바구니 하나가 아니었다.

어려웠던 시절 철제 바구니를 사면서 꿈꾸었던 아름다운 집에 대한 로망을, 그 바구니를 바라보며 내가 느꼈던 소소한 행복을, 언젠가 내 집이 생기면 예쁘게 꾸미고 살리라 상상하고는 했던 즐거운 기억들을 같이 버린 것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해도 아마 이해하지 못하리라.

그게 뭐 그리 대수일까 의아해하리라.
그런 식으로 하면 버리지 못할 것이 집에 숱하게 많다. 사실 그래서 결혼하고 이제껏 내 옆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들이 아직도 많다.

그런 생각들을 하다가 문득 속에서 쓴맛이 올라왔다. 나는 지긋이 입술을 깨물었다.


시어머님이 치매 판정을 받은 후 시댁 집 정리를 해야했다.

나는 가차 없이 오래되고 쓸모없는 물건들을 찾아 버렸다.
가끔 그건 그냥 둬라 시아버님이 말씀하실 때 지금 나와 같은 심정이었을까?
나는 내가 버린 물건들을 곰곰 떠올려봤다.
옷장 위 박스 속에 담겨있던 커다란 전기 프라이팬.

그 프라이팬은 내가 결혼하고 시어머님이 집에 손님들을 부르셨을 때 딱 한 번 쓰고 무려 십몇 년을 보관만 하고 있던 거였다.
이제는 안 쓰는 아이스박스.

그 아이스박스에 음식을 바리바리 싸 들고 시부모님과 휴가도 가고 박달재 고개에서 찌개도 끓여 먹었었다.
낡아빠진 대바구니, 크고 작은 물통들, 접시며 그릇들, 냄비와 주전자, 그 밖에 셀 수도 없는 많은 것들이 버려졌다.
시어머님이 기억만 온전하셨어도 어쩌면 버리지 못하게 했을지 모르는 것들이 그 속에 얼마나 많았을까?
아까워서 끼고 사는 물건들과 어려웠던 시절 구하기 힘들었던 기억 때문에 버리지 못하는 것들과 소소한 추억이 있어 버리지 못하는 것들, 또 그 밖에 애틋한 사연을 안고 있는 물건들이 그 속에 얼마나 많았을까?
한동안 무척 마음이 쓰렸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시댁에 갔을 때 시어머님이 만들어 놓은 보따리 여러 개가 안방 구석에 놓여 있었다.
보따리를 펼쳐 보니 옷가지 몇 개, 수건, 보자기천, 휴지와 비닐봉지 등이 들어있었다.

나는 다시 곱게 싸서 있던 자리에 놓아두었다.
그 속에서 비닐봉지 하나 꺼내서 버릴 수가 없었다.

남편과 나는 물건을 쌓아두고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는 가지고 있는 모든 물건을 활용하고 필요 없는 것은 주저 없이 버리거나 필요한 사람에게 준다.
최근에야 여행 가서 벼룩시장에서 안고 지고 온 찻잔들이며 잔이며 그릇들이 생겼지만 그전까지는 사은품이나 선물로 받은 머그잔 몇 개가 전부였다. 더 필요하지도 않았다.
이런 나도 더 이상 쓸모없는데도 그 안에 깃든 사소한 기억 하나로 애틋한 사연 하나로 버리지 못하는 물건들이 있다.


철제 바구니에 책을 넣어 구석에 놓아두었다.

다시 보니 바닥 받침 하나도 빠져 달아나고 많이 낡았다.
아무래도 버려야 할 모양이다.

기억과 추억에도 다이어트가 필요한 법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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