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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순영 Mar 10. 2021

엄마의 선물

여행 이야기- 인도


유년시절과 학창 시절을 다 더듬어봐도 엄마를 생각할 때 뭔가 따듯하고 애틋한 기억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큰 딸이고 첫 딸이었으니까 엄마와 특별하게 주고받은 기억이 하나쯤은 있었을 것 같은데 이상하게 떠오르는 것이 전혀 없다.
아빠와는 같이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봤던 거 라든가  음반점을 따라갔던 일, 친구를 만나는 자리에 따라가서 아빠가 막걸리에 설탕을 넣고 젓가락으로 휘휘 젓는 걸 보며 요구르트를 쪽쪽 빨아먹던 기억들이 아직도 그때의 느낌과 함께 남아 있는데 엄마하고는 그런 종류의 기억이 하나도 없다.


따지고 보면 엄마는 결혼하고 바로 나를 나으셨고 연년생으로 쌍둥이를 낳고 그 뒤로도 여동생 둘에 남동생까지 애들 여섯을 낳으셨으니 엄마의 시간에 나에게만 집중할 여유분이 있었을 것 같지 않다.

그래도 나는 동생들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했을 테니 기억은 없지만 억울할 것도 없다.


성인이 된 나는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거나 애정이 부족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섯 아이들을 낳고 기르는 것만으로도 엄마의 삶은 정신없이 바빴을 터다.
그럼에도 내 여동생들이 넘치게 자기 아이들에게 애정표현을 하고 스킨십도 하는 걸 보면 확실이 나의 엄마는 그러지 않았던 것만은 분명하다.
엄마에게 따듯하게 안겨 무슨 얘기를 듣거나 개인적인 위로나 격려를 받았던 기억도 없는 걸 보면.
아주 어렸을 때를 빼고 엄마가 나를 안았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다.
엄마가 내게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내 기억에만 없는 지도 모른다.
물론 내가 엄마보다 아빠를 더 좋아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늘 어린 동생들에게 관심을 빼앗기며 자랐을 테니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껴서 일수도 있다.
어쨌거나 그런 기억이 없다는 것은 슬프다거나 서운하다기보다 뭔가 모르게 쓸쓸하다.
내가 자주 대면하는 내 안의 우울은 그 쓸쓸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내가 느닷없이 엄마의 따듯함을 느낀 것은 두 번째 복강경 수술을 받고 퇴원하던 날 내 배낭을 메고 가던 엄마의 뒷모습을 봤을 때였다.
겨울이었고 추웠고 아팠지만 엄마의 살짝 굽은 등을 보는 내내 마음은 뜨거웠다.
그 장면이 내 마음에 처음으로 선명하게 새겨진 엄마에 대한 따듯한 기억이다.
그리고 그 장면은 내가 평생 가슴에 품고 가게 될 엄마에 대한 기억 한 조각이 될 것이다.
그 하나로도 나에 대한 온 생애를 관통하는 엄마의 사랑을 다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인도 여행 중 푸쉬카르에서 뜬금없이 엄마 생각을 하게 된 건 숄 때문이었다.
유럽 여행을 다녀온 후 엄마가 '이건 큰 딸 해라' 하면서 주신 숄이 있는데 그게 내 맘에 꼭 들었다.
엄마에게 뭔가 특별한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다.
그 후로 그 숄은 내 여행에서 빠지지 않는 아이템이 되었다.
옷으로 걸치기도 하고 추우면 둘러쓰고 이불 대신 깔기도 하고 베개에 둘둘 말고 자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낡고 헤지고 보플도 나기 시작해서 인도 여행 중에 예쁜 숄을 하나 새로 장만할 생각이었다.
푸쉬카르가 물가가 싸고 천으로 유명하단 말에 이번애는 하나 사야지 했는데 결국 실패했다.
엄마의 숄 때문이었다.
나는 같은 품목의 어떤 것을 새로 사면 그전에 가지고 있던 건 버리거나 필요한 사람에게 준다.
물건을 쌓아두고 사는 걸 못 견뎌하기도 하고 내게 필요 없게 된 것이거나 바라만 봐야 하는 것들을 쌓아두고 살만한 공간이 없는 집에서 오래 살며 생긴 버릇이기도 하다.
옷이 멀쩡해도 안 입을 것 같으면 미련 없이 버린다.
대충 그런 식이다.
처음에는 새 것을 하나 장만하고 엄마가 준 것은 버리고 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건 엄마가 준 것이 아닌가?
버릴 수가 없는 물건이다. 버리지 않을 거라면 계속 쓰면 된다. 굳이 새 것을 살 이유가 없다.
가만 보니 못 쓸 정도로 낡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엄마가 준 것보다 더 맘에 드는 숄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지금 하고 있는 게 가장 예쁘다.
그런 생각을 하며 엄마가 준 숄을 보는데 아! 왜 뜬금없이 눈물이 터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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