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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순영 Sep 14. 2023

사소하지만 중요한

그림일기

화장실에 들어가면 열에 아홉 번은 앉는 부분의 변기커버가 올려져 있다.

우리 집은 2:1로 남자가 많다.

둘 다 커버를 올리고 볼일을 보고 그대로 나온다.

남편은 이유가 있다고 했다.

볼일을 보고 샤워기로 청소를 하고 나오는데 커버를 올려놓고 나와야 물기가 빨리 마르기 때문이란다.

납득했다.

시동생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쓰기 전에 커버를 내리는 일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일까?

중요한 것은 올려져 있는 것이 시각적으로 거슬린다는 점이다.

물을 마시고 뚜껑을 닫아 놓지 않았다거나 책꽂이에 책 한 권이 유독 삐뚤어져 있거나 할 때처럼 뭔가 시각적으로 거슬린다.


시동생과 우리 부부는 서로 쓰는 치약이 다르다.

치약 두 개와 칫솔꽂이 가글액, 그 밖의 다른 것들이 올려져 있는 세면대의 물기를 닦아야 할 때마다 일일이 들었다 놨다 해야 해서 불편하다.

치약 하나는 칫솔꽂이에 꽂아 두는데 항상 밖에 나와 있다.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치약을 꽂아 두면 칫솔을 빼 쓰기가 불편하다든가 하는.

그래도 청소할 때마다 조금 거슬린다.


신발을 벗고 들어오면서 가지런히 정돈해 놓으면 좋은데 그냥 들어오면 현관 앞이 어수선하다.

현관은 집의 얼굴인데 어수선하면 매우 거슬린다.


설거지는 바로바로 하는데 가끔 시동생 먹은 그릇이 설거지가 안 되어 있을 때가 있다.

설거지가 되어 있으면 수채통에 음식물 찌꺼기가 그대로 남아있는 식이다.

이건 매우, 아주 매우 거슬린다.


사소한 것들인데 거슬린다.

사소한 것들이 일상의 분란을 일으킨다.

일상의 평화를 위해 거슬리는 사람이 나뿐이라면 나만 괜찮으면 된다.

보통은 괜찮다.

가끔 유독 거슬린다고 느껴질 때는 상황이 아니라 내 마음에 변화가 생겼을 때이다.

기분이 좋지 않다거나 피곤하다거나 내 맘이 뾰족해졌다거나 하는.

거슬려하는 나를 가만 보고 있으면 정작 내 마음을 거슬리게 하는 것은 다른 데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다고 사소한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따지고 들어가면 내가 거슬리게 하는 것도 분명 일을 테니.

다만 우리 집 남자 두 명이 내게 말을 하고 있지 않을 뿐.

같이 산다는 것은 그래서 관찰과 배려가 매우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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