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일기
음식의 효용은 배만 부르게 하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
우울을 달래주기도 하고 슬픔을 덜어주기도 하고 갈등을 중재시키기도 하고 추억이나 기억을 공유하게 해 주고 언어를 초월해 서로의 마음을 이어주기도 한다.
어디 그뿐이랴만.
남편은 내가 힘들어 보이거나 우울하고 슬퍼 보이거나 기운 없이 축 늘어져 있는 걸 보면 대뜸 뭐가 먹고 싶은지 묻는다.
먹고 싶은 게 없다고 하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나씩 읊는다.
메밀냉면에 만둣국 어때?
(나는 100%로 메밀면을 따끈한 만둣국 국물에 적셔 먹는 걸 좋아한다)
살짝 매콤한 갈치조림은?
(근처에 갈치조림을 기가 막히게 하는 집이 있다.)
당신은 콩국수, 나는 콩비지 먹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
아님 회사 근처로 와서 대구탕 먹을래?
이쯤 되면 내 입에서 그 근처 유니짜장 잘하는 집 있는데… 등의 말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럼 내일 저녁 유니짜장 먹으러 회사 근처로 와.
응.
하는 순간 나에 대한 남편의 걱정은 끝난다.
만약 여전히 나의 반응이 없으면 그제야 남편은 심각해진다.
내 마누라가 먹는 것을 거부하다니!
남편은 자신의 부인이 맛있는 것을 먹고 잘 자고 잘 싸면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는다.
나를 세상 단순한 일차원적인 인간이라고 믿는 게 틀림없다.
슬프게도 남편의 믿음이 틀리는 경우는 많지 않다.
내가 일차원적인 인간인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종일 멍하니 있다가 눈이 반짝 떠진 것은 남편 때문이지 남편이 들고 온 음식 때문은 아니라고 우겨본다.
#그림일기#드로잉저널#드로잉#펜드로잉#drawing#pendrawing#drawingjournal#goodfood#happ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