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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소묘 Feb 10. 2023

2+2=5를 믿어라

1984_조지 오웰

 ‘빅 브라더(Big Brother)는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화창한 4월 어느 날 온통 회색빛인 도시가 있다.

 윈스턴은 회색 도시에 살고 있는 서른아홉 젊은 남자다. 사방이 무채색으로 둘러싸인 이 도시에서 색을 지닌 것은 빅 브라더의 초상이 유일하다. 그 포스터에는 ‘빅 브라더(Big Brother)는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라는 표제가 적혀있다. 집집마다 당국과 송수신이 가능한 ‘텔레스크린’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다. 당국에서 송신하는 내용이 쉴 새 없이 흘러나온다. 마찬가지로 시민들의 모습은 물론 작은 소리도 빠짐없이 흘러 들어가 감시국으로 전달된다. 텔레스크린은 소리를 낮출 수는 있지만 완전히 꺼버릴 수는 없다.

1984_조지오웰

윈스턴은 당국의 감시망을 벗어나고 싶어 텔레스크린을 등지고 앉아보지만 소용이 없다. 창문가까이로 헬기가 낮게 날아 주택내부를 훑어보고는 사라진다. 사상결찰이다. 이렇게 영사(영국사회주의)는 주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제어한다. 우울해진 윈스턴은 서랍에서 공책 한 권을 꺼낸다. 빨간색의 예쁜 노트를 보니 지난 기억이 떠오른다. 무엇이라도 써보고 싶어 진다. 그가 이제부터 하려는 일은 일기를 쓰는 것이다. 이 일은 발각된다면 사형을 받든 지 적어도 25년의 강제노역을 받을 것이 뻔하다.


그러나 윈스턴은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1984년 4월 4일


조지오웰의 소설 ‘1984’는 디스토피아적 미래사회를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두 개의 사상으로 갈라져있던 대혼란의 시기에 사상의 선전도구로 활용되기도 했다. 생각과 행동이 모두 통제된 전체주의 사회 속 인간의 무력함, 꼭두각시와 같은 천편일률적인 삶 속에서 인간의 본질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도구화된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질문을 던진다. 윈스턴은 일기를 쓴다. 일과를 떠올리고 기록한다. 스스로의 의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회 속에서 윈스턴은 글을 썼다. 윈스턴은 자신의 생각이 사멸하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해가 갈수록 낱말은 자꾸 그 수가 줄고 그러면서 의식의 범위도 계속 좁아지는 거지. 지금도 물론 사상죄를 범하는데 이유나 구실을 붙일 수 없어.
언어가 완성될 때 혁명은 완수될 걸세. 신어는 영사고, 영사는 비로 신어야.
늦어도 2050년까지 우리가 지금 나누는 대화를 알아들을 사람이 단 한 명 이라도 살아남아 있을 것 같은가.  p.69



사상통제는 모두가 서로의 스파이가 되어 서로를 감시하며, 고발을 통해 이루어진다. 심지어 어린이가 아버지의 잠꼬대를 고발하는 믿기 어려운 사건까지 생긴다. 또 한 가지는 언어통제다. ‘신어’를 만들어 사용하게 하고 전통적으로 사용해 온 언어인 ‘구어’를 사용금지 시킨다. 금지어를 만들고 생각의 폭을 좁히고 축소하려 한다. 그럼으로써 진실을 판단하고 추구하는 능력을 마비시키려는 것이 당국의 의도다. 과거를 날조하고 불리한 이야기는 숨긴다. 이중사고 훈련을 통해 과거의 기록 날조를 날조한다.


나는 어떻게 하는가는 이해한다. 그러나 왜 하는지는 모른다. P.101


 영사는 인간을 도구화한다. 사랑을 불허하고 아이를 생산하기 위한 도구로써, 노동자 생산의 도구로써 인간을 활용한다. 오로지 권력을 얻고 공고히 하기 위해 통제하려 한다.

 생각이 통제되고 자유사고가 불허된 사회 속에서 윈스턴은 진정한 사랑을 원한다. 위험한 도전을 감행한다. 윈스턴의 아슬아슬한 모험은 어떤 결말을 가져왔을지는 목이 메어 더 이상 말해줄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알게 된 것은 윈스턴의 몸부림이 아무리 미약하더라도, 단숨에 커다란 포말을 일으키는 파도가 되어 길을 내지 못하더라도 또 다른 윈스턴들의 작은 발걸음이 모인다면 바다로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용기와 응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1984_조지오웰
미디어가 휘두르는 횡포 속 나를 되돌아보았다. 아무래도 나에게 ‘빅 브라더’는 가짜뉴스이며 미디어가 만든 프레임의 폭격이다.


 미디어가 휘두르는 횡포 속 나를 되돌아보았다. 아무래도 나에게 ‘빅 브라더’는 가짜뉴스이며 미디어가 만든 프레임의 폭격이다.  그 폭력 속에 무방비로 서있다 보면 무한히 작아지는 나를 느끼게 된다. 나의 고유함이 퇴색됨을 느낀다. 자산으로 환산되지 못한 나의 가치를 내던지게 된다. 마침내는 초라한 모습으로 지저분한 도시의 길가에 위태로이 서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살아있는 나를 느끼며 작게나마 나로서 존재하기 위해 오늘도 나는 내 생각이 담긴 글을 쓰려 애쓴다.
소박한 저항법이다.
빅 브라더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가 되지 않는 힘을 기르려 한다.
그 힘이 글쓰기에 있음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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